[기고]그림자를 걷어내자

머니투데이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 2019.07.08 04:00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만나는 게 직업이다 보니, 인적 역량과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우리나라는 훌륭한 스타트업 창업자가 많다. 세계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유니콘 스타트업(기업가치가 1조2000억원이 넘는 비상장 기업)이 10개 이상 나올 것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불과 2년 전 2곳이었는데 지금은 벌써 9곳이다. 미국, 중국, 영국, 인도에 이어 세계 5위다. 내가 접한 유니콘 스타트업은 모두 뛰어난 창업자가 있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가 있는 곳이었다.

스타트업이 아니더라도 우수한 인재와 창의성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는 많다. 대표적인 분야가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한 방탄소년단(BTS) 등 엔터테인먼트다. K팝을 포함한 모든 콘텐츠 수출의 절반 이상을 꾸준히 담당해 온 게임산업도 세계적 게임기업을 여럿 배출하며 한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인적 역량과 창의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인재들이 창의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조건은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 ‘2018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규제부담이 140여개국 중 78위다. 아산나눔재단이 발간한 ‘2017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는 세계 100대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한국 법률을 적용하면 불과 30% 정도만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여러 규제 중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소위 ‘그림자 규제’다. 법령에 명시적 규정이 없음에도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서 정부와 국회도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발뺌하기 쉽다 보니 규제로 인식되지 않기도 한다. 말 그대로 기업과 산업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다.


그런데 최근 이런 그림자 중 하나가 사라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PC온라인게임의 성인 결제한도가 그것이다. 2003년부터 드리워진 이 그림자는 법령상 아무 근거가 없는데도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자체 등급 심의 규제로 작동돼 왔다. 결제한도를 설정하지 않은 게임에는 등급 분류를 해주지 않는 방법으로 ‘그림자 규제’가 이뤄졌다. 영화 등 다른 콘텐츠 분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규제다. 멀티 플랫폼 환경, 글로벌한 게임 유통환경과도 동떨어진 갈라파고스 규제다. 당연히 게임업계와 전문가들의 지속적 개선 요구가 있었으나 16년 넘게 이어졌고 지난달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규정을 개정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늦은 감이 있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게임업계도 이용자가 게임 소비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한다고 하니 합리적 게임문화와 함께 더욱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림자 규제’의 가장 큰 문제는 법으로는 규제할 수 없는 것을 ‘자율’과 ‘관행’으로 포장해 법률보다 더 엄격하게 규제한다는 점이다. 기업과 시민의 자율적 역량도 무시한다. “게임은 나쁘다”, “게임은 사행 산업”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바탕에 두고 초법적 규제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고 뛰어난 인재도 모이지 않는다.

‘성인 결제한도’라는 그림자 하나를 걷어냈지만 게임산업에는 질병코드 지정이라는 더 큰 그림자가 드리울지 모르는 상황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게임산업뿐 아니라 사회 모든 영역에서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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