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20세기 'X재팬', 그리고 21세기 'X메이드인 재팬'

머니투데이 장시복 기자 | 2019.07.02 15:34
#.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 1세대 아이돌 스타 H.O.T.나 젝스키스 등이 TV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음지'에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또 다른 우상이 있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파는 밀수입 일본 소니 CD플레이어에는 일본 록그룹 X-재팬 등 '왜색'짙은 J팝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뿐만아니라 일본 영화·게임 등 불법 복제물들이 세운상가에서 암암리에 호황을 누렸다. 금주령 시대처럼 제재는 역설적으로 호기심을 더 자극했다.

어른들은 일본에 출장·여행을 갔다가 '코끼리 밥솥'을 보따리에 메고 들어왔다. 한국에선 귀한, 대표 필수 아이템이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일본 대중문화와 전자제품이 전면 개방됐다. 세계화 시대 흐름에 거스를 수 없는 조치였다. 외교·역사 문제와 실물 경제는 분리돼야 한다는 냉철한 판단도 기저에 깔렸다.

처음엔 내부 반발도 거셌다. 빗장이 풀리면 한국 시장이 잠식될 거란 우려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별 게 없었다. 그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컸던 것이다. 그때 그 한국 젊은이들은 다양한 문화·기술을 자양분 삼아 이제 K팝 한류를 이끄는 프로듀서, 글로벌 초일류 기업을 이끄는 연구원들로 컸다. 위기가 기회였다.

##.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본 아베 정부가 다분히 시대 역행적이고 감정을 우선한 결정을 내렸다.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 자국 핵심 소재 3종 수출을 제한키로 한 것이다. 사실상 경제 보복이다. 현지 매체조차 "올해 G20 의장국으로 '자유롭고 공정하며 차별없는 무역원칙'을 강조해 놓곤, 이틀 만에 뒤집은 셈"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한국 산업계에 공포가 엄습했다. 당장도 문제지만 제2, 제3의 급소를 찌를지 모른다는 우려다. 격분한 일부 시민들은 '메이드 인 재팬' 불매 운동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부나 국민들도 차분하고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한다. 그런 뒤 적극적 대응이 요구된다.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방관해서도 안된다.

이번에도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부위정경'(扶危定傾)의 자세가 요구된다. 그간 한국 기업들이 응용제품 양산 기술엔 뛰어나지만, 원천 소재·기술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이번에 우리 산업 전반에 취약한 부분이 없는지 점검해보자. 해외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기술 투자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이럴 때 정부의 역할론이 돋보이게 마련이다. 정신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는 대외 변수에 놓인 기업들의 기 살리기 정책도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기업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겠다"고 취임 후 공언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시험대에 섰다.

베스트 클릭

  1. 1 "나랑 안 닮았어" 아이 분유 먹이던 남편의 촉…혼인 취소한 충격 사연
  2. 2 "역시 싸고 좋아" 중국산으로 부활한 쏘나타…출시하자마자 판매 '쑥'
  3. 3 "파리 반값, 화장품 너무 싸"…중국인 북적대던 명동, 확 달라졌다[르포]
  4. 4 "이대로면 수도권도 소멸"…저출산 계속되면 10년 뒤 벌어질 일
  5. 5 김정은 위해 매년 숫처녀 25명 선발… 탈북자 폭로한 '기쁨조' 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