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켜주세요" vs "추우니까 꺼주세요"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19.06.28 06:10

무더위 일상화…켜달라", "꺼달라" 대중교통·카페·음식점 등 에어컨 두고 신경전(戰)

서울 한 시내버스 내부 모습. 에어컨 바람은 매년 더위가 찾아올 때마다 시민들 간 신경전을 벌이게 하는 문제다./사진=남형도 기자
25일 밤 10시쯤, 서울 한 시내버스 안. '딸깍' 소리와 함께, 에어컨 구멍이 막혔다. 그 밑에 앉아 있던 승객 고모씨(51)였다. 에어컨 바람만 맞으면 머리가 아픈 고씨는, 그러고도 추운지 몸을 움츠렸다. 약 5분 뒤 다른 승객이 탔고, 고씨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막 탑승해서 더운지 아까 닫아뒀던 에어컨을 다시 열었다. 이에 최씨가 "추운데 좀 끄면 안되느냐"고 하자, 그는 "지금 바깥이 얼마나 더운지 아느냐"고 따졌다. 결국 고씨가 다른 자리로 가며 신경전이 끝났다.

무더위에 '에어컨 전쟁'이 본격 시작됐다. 대중교통이나 카페·음식점 등에서 시민들이 에어컨을 두고 벌이는 신경전(戰)을 이르는 말이다. 추위를 쉽게 느끼는 이들이 에어컨을 끄거나 꺼달라 요청하면, 더운 승객들이 다시 켜거나 켜달라고 하는 상황. 이에 버스 기사나 지하철 기관사, 점주들은 "매년 겪는 이런 상황이 피로하다"며 호소하기도 한다. 심하면 시민들 간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이모씨(37)는 지난 17일 낮 시내버스를 탔다가 다른 승객과 말다툼을 했다. 당시 기온은 섭씨 30도를 웃돌았는데, 버스엔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지 않았다. 이에 이씨가 "에어컨 좀 틀어달라"고 하자, 긴 팔을 입은 한 승객이 "추우니 틀지 말아달라"고 한 것. 이에 이씨가 "더워 죽겠는데 혼자만 춥다고 하면 다냐"며 "추우면 옷을 더 입어라"라고 해 싸움이 됐다. 결국 버스기사가 에어컨을 틀고, 승객이 내리는 걸로 마무리 됐다. 이씨는 "계절이 여름이라 더운 게 당연한데, 춥다고 혼자만 생각하면 되느냐"고 꼬집었다.

서울 중구 거주 직장인 최모씨(44)는 지난 12일 낮 시내버스를 탄 뒤, 좌석 위 에어컨 스위치를 돌려 나오지 않게 껐다. 평소 추위를 많이타는 터라 에어컨 바람이 싫었던 것. 그러자 그의 옆자리 승객이 "더운데 왜 에어컨을 잠그느냐"고 항의하며, 신경질적으로 스위치를 다시 열었다. 최씨는 "싸움을 벌이기 싫어 그냥 참고 말았다"며 "누군가 더우면, 누군가는 추운건데 서로 좀 배려하면 안되느냐"고 따졌다.


대중교통을 운전하는 이들은 이 같은 상황이 곤혹스럽다. 서울 시내버스 기사 김모씨(49)는 "덥다고 성화를 부려 에어컨을 켜면, 또 다른 승객들이 타서 춥다고 좀 줄여달라 한다"며 "매년 이걸로 전쟁인데, 도무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심지어 어떤 손님은 '돈 아끼려고 에어컨 안 트느냐'고 항의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하철 기관사도 "어느 칸은 춥다, 어느 칸은 덥다며 승객들이 저마다 문자를 보내고 난리"라고 했다.


이는 대중교통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카페·음식점 등 가게도 마찬가지. 서울 마포구 소재 카페 점주 송모씨(41)는 "카페는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손님들이 좀 있다보니, 춥다고 꺼달라고 하는 이들이 반드시 있다"며 "자리를 옮겨달라고 하면 짜증을 내기도 한다"고 했다. 서울 중구에 있는 식당 주인 황모씨(39)도 "여름이라 에어컨을 켜는 게 당연한 건데, 꺼달라고 하면 참 난처해진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거리서 만난 대다수 시민들은 추운 사람이 에어컨에서 먼 곳으로 피하거나, 겉옷을 챙기는 게 맞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이성호씨(34)는 "여름엔 냉방, 겨울엔 난방을 하는 게 자연스런 것"이라며 "이게 싫거나 체질상 안 맞는 사람이 배려하는 게 맞다"고 했다. 대학생 성모씨(21)도 "추우면 겉옷을 입으면 되지만, 더우면 더 벗지도 못하고 방법이 없다"며 "서로 배려가 필요한 건 맞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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