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3일 서울의 모 법정. 담당 판사의 속사포 랩이 쏟아졌다. 그렇다고 유명 래퍼처럼 '귀에 쏙 들어오지'도 않는다. 선고가 끝나고 노트북 화면에 남은 건 토막난 단어뿐. '어떻게 기사를 쓰지?' 현기증이 이는 와중에 옆자리 중년 남성이 말을 걸었다.
"제 판결이 끝난 것 같은데… 잘못 들어서 결론이?…". 이날 듣기평가는 모두 낙제점이었다. 기자도, 원고도, 피고도.
이튿날 같은 법원의 다른 법정에서도 랩은 이어졌다.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 비용 중 2분의 1을 원고가 부담한다." 한줄 선고에도 대부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한 줄 문장으로 판결이 끝난 것을 판사 외에는 아무도 몰라서다.
이날 선고는 장애인들이 지하철에 위험한 리프트 대신 안전한 승강기를 설치해달라며 서울교통공사에 제기한 소송과 관련된 것이었다. 아침 7시 집을 나서 휠체어로 힘들게 법정을 찾은 한 장애인은 "선고에 15초도 안 걸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을 대리한 이주언 변호사는 "누가 봐도 당사자(장애인)로 보이는 이들이 법정에 있었는데 판사님이 원고가 출석했는지 묻고 눈을 맞추면서 선고를 하셨다면, 설령 기각이란 결론이 바뀌지 않았어도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형사재판과 달리 민사재판은 판사가 주문을 낭독하면서 선고의 요지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 보통 7일 내 판결문이 당사자에게 송부된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선고 당일 법정을 찾는다. 일생일대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판사 한 사람당 맡은 업무가 과중하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사포 랩을 하거나 작게 웅얼거리는 옹알이 선고를 하는 일부 재판부의 부족한 배려가 아쉽다. 법정 안 모든 이는 판사 입장 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방청객이 다리를 꼬면 바르게 앉으란 지적을 받는다. 신성한 법정을 위한 예의와 배려가 일방이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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