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북적북적…BOOK세권을 아시나요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 2019.06.11 03:24
사진 왼쪽은 아크앤북의 아치형 책터널, 오른쪽은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전경

“거기 가 보셨나요? 을지로에 책으로 된 벌레형 터널이 있는 서점 있잖아요.”

지난해 연말 을지로 부영빌딩(옛 삼성화재 빌딩) 지하에 생긴 아크앤북 얘기다. 책과 생활을 다양한 방식으로 묶은 새로운 형태의 신세대 서점으로 꼽히면서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점 안 카페나 음식점 같은 곳에 갈 때 책을 서가에 놔두고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익숙한 이들을 고려해 인스타그램 등에 사진을 올릴 수 있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 공간도 준비해놨다. 출입구의 책 터널 아이디어도 기발하다. 특징적인 책 구조물인 '아치형 책 터널'은 책 안에 자석을 넣어 자력을 이용해 로마의 판테온 또는 석굴암의 아치 형상을 책으로 만들어냈다.

물론 이것 때문에 기겁을 하는 이들도 있다. 책을 온전히 보존한 상태에서는 둥글게 꾸밀 수 없으니 책 어딘가에 파손(자석을 넣으려고 책을 파낸)이 있을 거라는 추측이었는데 그것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한 출판인은 “책이 장식물로만 쓰이는 걸 보고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이었죠. 누구는 좋다고도 하지만 그냥 나와버렸어요”라고 했다.

서점의 의미를 바꾼 것은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도 마찬가지다. 복합쇼핑몰 테마상가 등은 앞다퉈 대형 서점을 모셔가는데 이들 서점이 유동인구를 모으는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교보문고나 영풍문고한테는 임대료는 안 받는 셈 칠 테니 들어와만 달라고 하는 건물주들도 많다”며 “입점 후 건물 안이나 인근 점포 매출이 15~20% 정도 늘어나는 것은 보통이어서 골라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이 서울 강남 코엑스몰에 선보인 ‘별마당 도서관’도 5월말 개관 2년째를 맞아 집객 효과와 전체 쇼핑몰의 매출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경우로 꼽힌다. 약 2800㎡ 크기의 넓은 공간을 서점으로 꾸며 개관 두해 동안 4500만명(첫해 2100만명, 둘째해 2400만명)이 찾았다. 도서관의 인기에 힘입어 개관 이전 7%에 달하던 공실률이 0%로 떨어졌고 전체 코엑스몰 상권도 살아났다는 평가다.


이처럼 서점이 커지고 방문객도 많아지면 독서인구도 늘어난 걸까. 너도나도 서점을 우대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독자들은 책을 사거나 빌려가기보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사진 한 방으로 모든 걸 해결한다. 또 그걸 SNS나 유튜브에 올려 자랑하는데도 책은 해를 거듭할수록 편식 현상이 심해진다. 학생들은 수험서에, 대학생과 20 ~ 30대는 스펙쌓기와 어학책, 성인들은 깃털같은 자기계발서와 재테크책에 탐닉한다.

동네 서점은 찾아보기 어렵고 한때 대학가에 명물로 자리잡았던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전야’(서울대), ‘녹두’(동국대), ‘서강인’(서강대), ‘오늘의 책’(연세대) 등은 사라진지 오래고 성균관대 앞 ‘풀무질’ 정도가 주인이 바뀌며 명맥을 이어가는 정도다.

일본의 탐사전문기자로 책이 가득찬 고양이빌딩을 소유한 장서가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통해 “나의 분노와 고뇌가 책과 함께 있었음을 떠올린다. (책을) 버리기 힘든 것은 그 책을 되풀이해서 읽고 줄을 긋거나 메모를 했던 추억이 거기에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사진으로 채워진 스마트폰과 SNS가 책에 묻어나는 분노와 고뇌를 대신할 수 있을까. 벽돌처럼 뚫리거나 구겨지는 것은 터널을 꾸미는 책들만이 아니다.

배성민 문화부장 겸 국제부장 /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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