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 5년만에 다시 붙였더니…"빵빵!!"[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19.06.01 06:30

교통사고 목격 후, 2주 동안 '운전 습관' 다시 들이기…운전대 앞 초조했던 마음 편안해져

편집자주 |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5년만에 다시 붙인, '초보운전' 스티커. 글자 '전' 위에 있는 하트가 포인트다. 초보운전자 맘으로, 운전 습관 다시 들이잔 맘으로, 꾹꾹 눌러 붙였다./사진=남형도 기자
마포대교는 맑은 날씨처럼 시원스레 뚫려 있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차(車)들은 정신 없이 내달렸다. 너나 할 것 없이 바삐 가는 와중에, 내 차만 '엉금엉금' 가는 듯 했다. 계기판 속도를 보니 시속 57km, 실은 정해진 교통법규(시속 60km 제한)를 정확히 지키고 있었다. 뒤따라 오던 검은색 차량 한 대가 룸미러에 비췄다. 스킨십하듯 부담스레 바짝 붙더니, 토라진 듯 '쌩' 하고 앞질러 달아나 버렸다. '깜빡이(방향지시등)'도 안 켜고, 차선을 바꿔 휙 하고 들어왔다.


브레이크에 올렸던 오른발을, 나도 모르게 엑셀로 바꿨다. 그대로 밟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속도 내지마." 안달하는 게 느껴졌는지, 아내가 옆에서 나지막이 달래듯 말했다. 뒤이어 다른 차량도, 또 다른 차량도, 내 차를 앞질러갔다. 문득 다시 보니, 그 모습이 어쩐지 낯이 익었다. 차량만 다를 뿐, 평소 내가 운전하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냉정하게 보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리 생각하니 초조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평정심(平靜心)을 되찾았다.

마치 '초보운전자(者)'가 된 기분이었다. 그 마음으로 돌아가, 주행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운전면허를 처음 딴 건 5년 전인 2014년. 그 땐 이렇게 교통법규를 잘 지키며 다녔었다. 통나무처럼 몸이 굳은 채, 전방만 주시하기 바빴다. 아내와 안면도를 가느라 처음 고속도로에 나간 날(아마도 세번째 주행), 시속 100km를 처음 밟았다가 "아이, 무서워"하며 속도를 줄였던 기억. 가까운 길을 기꺼이 멀리 돌아가는 매직을 선보여 놓고, "내비게이션이 왜 이래?"하며 탓했었던 시간들.

그렇게 벌벌 떨던 날들이 지났다. 어느새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를 자유자재로 볼만큼 시야는 넓어졌다. 몸에 힘도 자연스레 빠졌다. 심지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알아서 길을 잘 찾아가는 단계에 이르렀다. 5년 간 다행히 무(無)사고 운전을 달성했고, 접촉사고 한 번 없었다.

그런데 사실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건, 어쩌면 '운이 좋아서' 괜찮았다는 걸.

그리 고백하는 이유는, 운전 습관이 점점 더러워지고 있어서. 솔직한 자기 성찰(省察)이다. 양손으로 꼭 잡던 운전대엔 왼손 하나만 올렸다. 차선변경은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하다가, 어느 순간 휙휙 껴들고 있었다. 초록불에서 노란불로 바뀌면 멈추기보단, 밟아서 지나가는 걸 주로 택했다. 규정 속도는 '과속 단속 신호기' 앞에서만 대부분 지켰다. 종합해서 보니, 초보운전 때 내가 욕하던 운전자들이 돼 있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몰랐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든 계기가 있었다. 어느 평범한 출근길, 광화문 사거리에서 교통 사고가 난 걸 봤다. 택시와 일반 승용차 간 충돌 사고였는데, 꽤 크게 난 것 같았다. 택시는 차량 앞 부분이 절반 정도 다 부서져 있었고, 승용차는 조수석 쪽 문이 완전이 찌그러져 있었다. 사고 경위는 자세히 몰랐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저 차량 운전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그 순간 사랑하는 아내가 떠올랐다.

이런 이유로 운전 습관을 다시 들이기로 결심했다. 너무 늦어서 후회하기 전에. '초보운전'을 하는 마음으로, 안전운전을 위한 법규들을 잘 지켜보기로 했다. 그대로 좋은 습관이 들 수 있도록. 지난달 20일부터 30일까지 약 2주 동안 체험을 했다.



꾸깃꾸깃한 '초보운전' 스티커, 다시 붙였다




룸미러에 비친 '초보운전' 스티커. 정신 똑띠 차리자./사진=남형도 기자

일단 내 평소 운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반어법),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 평소 살펴본 적 없는 블랙박스 화면을 보기로 했다.

그러니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땐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이중 자주 반복되는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적었다. 주로 △과속운전(스피드를 즐긴다면서) △급한 차선 변경 △무리한 끼어들기 △추월차로 주행 △정지선 위반 △황색 신호시 쌩 건너가기 등 조급한 마음에, 어떻게든 빨리 가려고 유발되는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가끔씩, 화를 내며 경적을 울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아이X, 운전 똑바로 안 해?", "저런 X들은 면허를 뺏어야지 아주 그냥" 등의 말들이었다. 이어폰을 꽂고 그걸 듣고 있자니 부끄러워졌다. 운전할 당시엔 다 상대 운전자 잘못인 것 같았는데, 3인칭 시점에서 보니 그렇지 만도 않았다. '빨리빨리' 가려 하지 않았다면 괜찮았을 것들도 있었다.

그래서 '초보운전' 스티커부터 다시 붙이기로 했다. "살 빼겠다"고 다이어트 선언을 하듯, "앞으로 운전 똑바로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공언(公言)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 초보운전자들이 겪는 고충도 살펴보고 싶었다.

차 앞쪽 수납함을 뒤적이니, 반으로 꾸깃꾸깃 접힌 스티커가 보였다. 하얀색 바탕에 검고 귀여운 글씨로, '초보운전'이라 적혀 있었다. 위쪽엔 조그만 하트도 그려져 있었다. 찢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뗀 뒤, 뒤쪽 창문 먼지를 털어내고 붙였다. 다행히 아직 접착력이 남아 있어 잘 붙었다. 스티커를 꾹꾹 누르며, '정말 운전 똑바로 하자'란 다짐을 한 번 더 했다.



"아, 답답해"…'습관'이란 게 참 무섭더라




초보운전자 맘으로, 운전대에 양팔을 가지런히 올리고 전방을 성실히 주시하고 있다. 턱살이 안 접히게 고개를 최대한 들었는데, 역시나 접혀서 그냥 블러 처리를 해버렸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20일 오전 6시30분. 집에서 서울 중구 광화문까지, 평소 출근길을 운전해 가보기로 했다. 자동차로 가면 50분 남짓한 거리다. 크게 막히지 않으면, 출근 시간(오전 7시30분)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나갈 때부터 맘이 요동쳤다. 단지 내 도로 노면에 표시된 규정 속도는 시속 20km. 이에 맞춰 정속(정속주행해 봤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천천히 가는 게 느껴졌다. '이게 이렇게 느린 속도였나' 싶을 정도였다. 사실 반대로 생각하면, 평소 제멋대로 달렸단 뜻일터. 아마 속도가 2배 정도는 빨랐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엔 빨리 가고 싶다는 마음 밖에 안 들었다.

차도로 나오니 답답한 상황이 더 많았다. 아직 출근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앞이 뻥 뚫려 있었다. 그럼에도 제한 속도인 시속 60km를 지키려니 고역이었다. 속도를 많이 안 냈다 여겨도, 시속 80km를 훌쩍 넘어갔다. 그러면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였다. 나도 모르게 가속 패달에 힘을 줬다가, 다시 브레이크를 밟는 일이 반복됐다. 내 차를 앞질러 나가는 다른 차들을 보며 '달리고 싶다', '추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조바심이 나서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차선 변경도 마찬가지였다. 2차선에서 3차선으로 바꾸려 '깜빡이'를 미리 켰다. 5초 정도 켜놓고, 서서히 차선을 바꾸려는데, 뒤에서 다른 차가 한 대 휙 지나갔다. 그 뒤를 따라가려는데, 또 다른 차가 꽁무니를 쫓아오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렇게 3대쯤 보내고 난 뒤, 울컥하는 마음에 급하게 끼어들어 버렸다. 뒷차가 항의하는 뜻으로 '빵빵' 거렸다. 내가 잘못한 터라 '비상등'을 두 번 깜빡여 미안하단 뜻을 전했다. 그럼에도 괜시리 부아가 치밀었다.

그 밖의 것들도 맘 먹은 것처럼 쉬이 지켜지지 않았다. 강변북로를 달릴 땐 '과속 단속기' 앞에 와서야, 제한 속도(시속 80km)로 급히 줄였다. 서울시청 인근에선 신호가 황색으로 바뀔 때쯤에 속도를 '부앙' 하고 올려 급하게 통과했다. 정지선을 지나고 나서야 '내가 대체 뭐가 급해서 이러지?'란 생각이 들어 자책했다. 속도를 제대로 못 지키니 정지선을 넘기는 것도 일쑤였고, 때때로 횡단보도를 살짝 침범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일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새 대부분 벌어졌다는 것. 그만큼 잘못 들인 '습관'이란 게 무서웠다.



'빵빵빵빵'…'교통법규' 지켰을 뿐인데




횡단보도를 아예 점유하고 서버린 한 시내버스. 이렇듯 자연스레 신호를 어기고, 속도를 안 지키고, 그런 광경이 너무 흔했다./사진=남형도 기자

'나인 듯, 내가 아닌 듯', 그렇게 자아가 혼란스런 시간들이 지났다. 하루 운전을 하고, 블랙박스 화면을 보면서 다시 돌아보고. 그렇게 3일 정도 운전을 하고 나니, 그제서야 변화가 감지됐다. 일주일이 지난 26일쯤 됐을 땐, 운전하며 늘 조급했던 습관들이 상당히 바로 잡혔다.

그러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교통 법규를 어렵사리 지켰더니, 다른 운전자들이 '좌시(坐視)'하지 않았다.

28일 오후 신촌 현대백화점 쪽에서 동교동 삼거리로 넘어가는 길. 시속 60km를 준수해서 달리고 있는데, 룸미러로 보니 뒷차가 꽁무니를 바짝 쫓아왔다. 한 번 '빵' 하고 경적을 울리더니, '빵빵빵빵' 하고 연달아 울리더니, 차를 좌우로 왔다갔다 하더니, 차선을 바꿔 '쌩' 하고 앞질러 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저 교통 법규를 지켜 달렸을 뿐인데. 그렇다고 다른 차와 크게 속도 차이가 나는 것도 아녔다.


17일 저녁 동네 초등학교 인근에선 '어린이 보호구역'이라 시속 30km로 달렸다. 룸미러를 보니까 뒤따라오던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가 안달이 났다. 바짝 붙었다 떨어졌다, 또 붙었다 떨어졌다. 조금 더 지켜보자니, 상향등 깜빡이를 깜빡깜빡했다(빨리 가라는 뜻). 왕복 2차선이라 추월도 못하겠고, 어지간히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속도 그대로 갔다, 속으로 '난 법(法)을 준엄하게 지키고 있는 중이야. 이 위법자야'하고 비웃으면서.

그들과 똑같이 달렸을 땐, 몰랐던 것들이 새삼 잘 보였다. 그걸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어떤 모습으로 운전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내 운전 습관이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도 기억이 났다. 정상적으로 달렸다간, 손해보기 일쑤에, 화가 날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럼에도 그게 옳은 건 아니지만.

다시 그 모습을 보니, 그냥 운이 좋았던 것 뿐이었다. 그동안 사고가 안 났던 건. 그리고 깨달았다. 그 운이 다하면, 내 삶이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초보운전 향한, 무언(無言)의 무시들




서울 마포대교서 깜빡이도 안 켜고 차선을 급하게 변경하는 한 차량./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운전 습관을 고치는 것과는 별개로, 또 하나 공감(共感)했던 게 있었다. '초보운전자'들의 마음이었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4년 정도 떼고 다녔으니, 다시 붙였을 때 달라진 게 분명히 느껴졌다. "너 초보야? 빨리 비켜"하는 무언(無言)의 무시이자, 베테랑이라며 으스대는 비뚤어진 자부심이었다.

29일 저녁 강남역 사거리. 차선을 바꾸려 오른쪽 사이드 미러를 보니, 뒷차와의 거리가 넉넉했다. 그래서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겠단 뜻을 밝혔다. 그러자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오던 차가, 갑자기 속도를 붙여 '미친X'처럼 달려왔다. 초면에 비속어를 쓰면 안 되지만, 딱 그 표현이 적합했다. "더러워서 네 앞에선 안 바꾼다"고 혼잣말을 한 뒤, 그 차가 지나가고 천천히 차선을 바꿨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야 '베스트 드라이버(자칭 BD)'라 당황하지 않았지만, 초보운전자라면 충분히 긴장할 상황이었다. 자칫하면 그런 으름장이 사고를 부를 수 있다. '3시간째 직진 중'이란 초보운전 스티커도 있지 않던가. 그만큼 도로 위 모든 상황이 불안한 시기다. 초보운전 스티커는, '아직 미숙하니 배려하고 보호해달라'는 뜻에서 붙이는 건데, 그게 오히려 역효과란 생각이 들었다.

더한 일도 있었다. 26일 오후 목동 인근 사거리에선, 직진과 우회전이 동시에 되는 차로 위에 있었다. 빨간불이라 잠자코 기다리는데, 뒤에서 비키라고 '빵빵' 거리며 경적을 울렸다. 뒷차를 배려한답시고 비켰다가는 신호 위반이 되는 상황. 무시하고 있으니 다시 '빠아앙' 했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차를 멈춰놓고 '모범 운전자' 표정으로 위풍당당하게 나갔다. 뒷차로 향하니 해당 운전자는 외려 "여기 우회전 차선인데 서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따졌다. 아마 초보운전이니 뭘 잘 모르겠지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여기 직우(직진·우회전 가능) 차선이고, 정지선 넘으면 범칙금 내야 하는데 당신이 낼 거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운전자는 "급한데 배려해달라는 말"이라며 꼬릴 내렸다.



조급했던 '맘'이 편해졌다




느긋하게 맘 먹고 주행을 하니, 한 건물 외벽에 붙은, 이렇게 좋은 글귀도 눈에 들어왔다. 이해인 수녀의 '수국을 보며'란 제목의 시(詩)./사진=남형도 기자

우여곡절 많은 2주가 그리 지났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은 이랬다. 꼭 남겨 놓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아직도 도로를 폭주하는 많은 운전자들을 위해.

운전대만 잡으면 초조했던 맘이 편해졌다. 급한 일이 없을 때에도 빨리 가느라 바빴었다. 첨엔 잘 안 됐다. 느긋하게 맘 먹으려 해도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 연습하니 달라졌다. 2주 가까이 되니 좋은 습관이 서서히 들었다. 정해진 속도를 봤고, 계기판을 의식하며 이를 지켰다. 앞서 달리는 차들을 보면 쫓아가고 싶었는데, 뒤에서 바라보며 천천히 가는 게 좋아졌다. 정지 신호에 걸리면 사람 구경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하늘을 봤다.

문득 공덕역 인근 사거리서 신호를 기다리며 봤던, 이해인 수녀의 '수국을 보며'란 제목의 시(詩)가 생각난다. '혼자서 여름을 앓던 내 안에도 오늘은 푸르디푸른 한 다발의 희망이 피네.'

그러니 운전 피로가 훨씬 덜했다. 한 시간만 운전해도 눈이 뻑뻑하고 어깨가 뻐근했었다. 그 시간에 화(火)를 평균 3~4회씩 냈었다. 같은 거리를 같은 시간 주행했음에도, 분노하지 않게 됐다. 천천히 움직이고, 양보하고, 신호를 지켰다. 급출발도 사라지고, 급정거도 없어졌다. 그러니 몸으로 느끼는 피로가 훨씬 덜했다. 조수석에서 늘상 손잡이를 붙잡던 아내는, 자주 스르르 졸았다. "편안해서 좋다"며.

운전 시간도 별 차이가 안 났다. 평일 출근 시간 기준(오전 6시30분~7시30분), 최대한 급하게 내달렸을 때 집에서 광화문까지 40분 걸렸다. 근데 정해진 속도와 신호를 모두 지키면서 가니 46분 걸렸다. 고작 6분 밖에 차이가 안 났다. 체감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시간이었다. 6분을 빨리 가기 위해, 내 위험을 걸 필요는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시간을 보고 나니 더 그랬다.



그리고 '지켜낸 것'들


안전 운전을 했을 때 지킬 수 있는 많은 상황들. 사진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사진=남형도 기자

안전운전을 하며 지킨 건, 단지 교통 법규 뿐만이 아녔다.

동네서 운전을 할 때, 갑자기 말티즈 한 마리가 차도로 뛰어 나왔다. 이를 인지하고, 천천히 멈춰섰다. 시속 15km로 달리니, 그럴 시간이 충분했다. 이 구간은 평소엔 빠르게 올랐었다. 말티즈 견주가 꾸벅 인사를 하고 갔다.

아내와 퇴근하던 길, 뒤쪽에서 승용차 한 대가 '칼치기(불쑥 차선을 바꿔 끼어드는 것)'를 했다. 천천히 달리고 있었음에도 가까스로 멈췄다. 조금만 속도를 더 냈으면 박을 뻔했다. 다칠 뻔한 상황과, 망칠 뻔한 기분을 지킬 수 있었다.

좁다란 골목길, 직진하던 도중 오른쪽 도로에서 자전거 한 대가 불쑥 튀어나왔다.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르게.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남자 아이였다. 다행히 살렸다. 저 아이도, 혹시나 다쳤음 애끓었을 부모 마음도. 그리고 나도 함께 살았다.

마지막으로 지킨 건, 내 소중한 엉덩이다. 늘 조급하게 과속방지턱을 넘느라 꼬리뼈가 부서질 듯 했었다. 이젠 천천히, 기분 좋게, 부드럽게 넘어간다. 아마도, 탄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사실 별 관계 없음).
아내가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운전대 왼편에 붙여 놓았다. 이 모습 오래 보려면, 운전 똑바로 하잔 맘으로./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귀한 사진을 한 장 뽑았다. 니트를 입은 아내 모습이 예쁘게 담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옷이었다. 그 사진 한 장을, 운전대 왼편에 붙였다. 아주 잘 보이는 곳에. 혹시나 운전하다가 맘이 바빠지면, 그 사진을 애써 보려고. 내가 지켜야 할 사랑하는 사람을. 또 내가 사고를 당해 다치거나 최악의 경우 생명을 잃으면, 아마도 가장 슬퍼할 이를.

또 다른 의미도 있다. 혹여나 내가 운전을 잘못해서 사고를 낸다면 벌어질 일 말이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가족사진 한 장을, 거기에 담긴 행복을, 갈갈이 찢어버리게 될 거라는 것. 그 무섭고 슬픈 사실도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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