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불신만 남은 리디노미네이션

머니투데이 한고은 기자 | 2019.05.31 04:00
"과거 화폐개혁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불안을 이용해 장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장사하는 사람이 문제인가, 그 불안감 가진 사람을 자극하는 게 문제인가. 참 답답하다."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전문가의 관전평이다.

지난 3월 "리디노미네이션을 논의를 한번 할 때가 됐다고 생각은 한다"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발언으로 시작된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은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장점 못지않게 단점도 많아 조심스럽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단서는 가볍게 무시됐다. '부동산폭등설', '기습추진설' 각종 설들이 생겨났다.

국회 토론회에서 "언젠가는 리디노미네이션을 해야 한다"는 한국은행 관계자 발언이 나오면서 논란은 확산됐다. 원론적 말이었다지만, 누군가 '정말 할 생각이 있나 보네'하고 받아들였대도 할 말은 없다. 이 총재는 몇 번이나 "검토한 적도, 추진할 계획도 없다"며 해명해야 했다.

논란을 끌어온 힘은 오해와 불신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1953년, 1962년 정치적 결정으로 이뤄진 화폐개혁과 다르다. 가치 변동 없이 1000원을 10원으로 또는 1원으로 화폐단위만 바꾸는 것이다. 거래 효율성이 오르고, 대외 위상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화폐단위 변경과 화폐개혁을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다. 앞선 전문가는 "정부도 한은도 안 하겠다고 하지 않느냐고 해도 결국 '금이냐, 달러냐'고 묻는다. 골드바 판매가 늘고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는 게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을 위한 건설적 논의는 사라졌고, 현실은 불안과 불신의 힘으로 움직였다.

'원론적인 말'이라는 해명이 경험적으로 작동하는 방어기제 앞에 얼마나 설득력 있는 답이었는지, 경제주체들의 불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내놓은 말이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정치권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회 토론회에서 여야 의원 일부는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한 이유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댔다. '그것 봐라' 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리디노미네이션이 정말 언젠가 가야 할 길이라면, 쌓여있는 오해와 불신을 설득할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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