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나는 지독한 기업인이었습니다"

머니투데이 송기용 산업1부장 | 2019.05.31 04:30
"나는 착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정확히 말하면 지독한 기업인,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28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호텔. 4000여 명이 참석해 성황리에 열렸던 '소셜밸류커넥트 2019(Social Value Connect 2019, SOVAC)' 폐막을 앞둔 저녁 무렵.
어떤 계기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게 됐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회장 최태원'이 아닌 '자연인 최태원' 자격으로 말해도 되겠냐"며 담담한 고백을 이어갔다.

"22년 전, 선대 회장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고 제가 회장에 취임했을 때는 IMF 사태, 아시아 금융위기로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였다. 그때부터 저는 전쟁을 해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가슴은 텅 빈 것 같았는데, 그때 나와 아주 반대인 사람을 만났고, 그때부터 새로운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했다."

중요한 자리였다. 최 회장이 최근 수년간 제시해온 '사회적 가치'라는 경영 철학을 만인 앞에 공개하는 무대였다. SK 지원을 받은 수백 개 사회적 기업이 1000억원대 성과를 낸 것을 자축하는 파티장이기도 했다.

대단한 통찰력이나 시대적 담론을 제시할 줄 알았던 청중에게 한밤의 고백은 당혹감을 줬다. 최 회장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았지만 청중은 한사람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여론 반응 역시 그랬다.

하지만 '달을 가르킬 때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고 했다. 최 회장의 고백에서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과거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목표로 하는, 도달하고자 하는 '달'이 무엇인지가 좀 더 선명해졌다.

최 회장은 재계 리더다. 요즘 말로 핫한 '인싸(인사이더)'다. 말하는 것마다 화제고, 행동 하나하나가 주목거리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7·4제(7시 출근 4시 퇴근)' 등 신경영을 선언했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90년대 만큼이나 뜨겁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등 3세대 경영자가 전면에 나서는 요즈음, 3세대 맏형으로 재계 중심에 섰다. 하이닉스, 이노베이션 등의 돋보이는 경영성과도 그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배경이다. 최 회장 취임 당시 34조원이던 그룹 자산이 2017년에 192조원으로 6배 늘었다.

그런 최 회장의 지론인 사회적 가치 경영은 시대의 화두가 됐다. 단순히 불우이웃을 돕는 착한 기업이 되자는 것이 아니다. '환경·고용·세수 등 모든 면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만이 지속적으로 성장할수 있고, 그런 기업의 구성원 역시 행복할 수 있다는 경영철학이다.

단순한 '척'이 아니다. 계열사 및 CEO(최고경영자) 평가시 사회적 가치 비중을 50%로 정했다. 매출, 이익 등 실적만큼이나 사회적 가치에 비중을 뒀다. SK그룹 구성원에게 사회적 가치 실현은 발등의 불이다.

직원과의 행복토크 등 최근 최 회장 모습을 보면서 재계 총수보다는 철학자 같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많다. 한 SK 관계자는 "행복을 말하는 최 회장을 한가한 얘기한다고 비판할수도 있지만 옆에서 보면 굉장한 절박감이 느껴진다"며 "자신의 철학을 추구하는 구도자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를 향해가는 최 회장의 구도 여정이 성공적이기를 바란다. 최소한 SK 직원들은 행복할 수 있을 것이고, '화'가 가득한 이 사회에도 숨구멍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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