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과 김희영, 그날 그들의 '45분'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 2019.05.30 08:53

45분 한공간 머물고도 눈 한번 못 마주쳐…최태원 한밤의 격정 고백으로 지위 공식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5월 28일 열린 SOV
AC2019 행사에서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 주최 세션 참석 직전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대화 상대방의 이름 옆에 하트가 선명했다./사진=우경희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조용히 들어섰다. 지난 28일 17시 45분, SOVAC2019 마지막 세션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주제는 티앤씨(T&C)재단의 운영 철학이었다. 최 회장은 강연장 의자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빈 자리에 앉았다. 취재진과 직원들 외에는 아무도 그의 등장을 알아채지 못했다. 왼쪽 자리 남성도 오른쪽 자리 여성도 최 회장을 알아보는데 한참이 걸렸다.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은 이미 강연장에 들어와 있었다. 맨 앞줄 가운데서 재단 소개를 조용히 지켜봤다. 최 회장(T : 태원)이 김 이사장(C : 영문명 Chloe)에게 선물한 장학재단이다. SOVAC도 최 회장이 제안해 만들었다. 수천명이 몰린 사회적가치 콘퍼런스의 마지막을 이 재단이 장식했고 두 사람은 한 공간에 있었다. 앞뒤로 7칸 거리였다.

김 이사장의 참석이 예고되면서 언론의 관심은 온통 이 세션에 집중됐다. 최 회장이 올지 여부가 최고 관건이었다. 새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둔 두 사람이지만 최 회장의 '과거'는 전혀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세간의 시선은 차갑다. 게다가 그는 재계 2위를 다투는 SK의 총수다. 공식 석상의 접촉은 많은 것에 대한 공식화를 의미한다. 두 사람의 동선에 그룹 전체가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였다.

긴장감 속에 세션이 마무리됐다. SK그룹 관계자들은 김 이사장을 철저하게 보호하며 언론의 접촉을 차단했다. 그녀가 앞 문으로 얼른 빠져나갔다. 문 바깥엔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다. 한 사람만을 위해 미리 만든 비밀 통로다. 도망치듯 나가는 김 이사장을 최 회장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18시30분이었다.


좀 이따 집에 가면 만날 사이다. 욕 먹을걸 알면서도, 주변이 만류해도 결국 갔다. 어깨를 두드려주거나 손을 잡아주는 '바깥양반'의 역할까지 보여주려 고민했을 법도 하다. 거기까진 못했지만 그래도 할 만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한 공간에서 말 한 마디 못붙인 45분이 그의 마음속 결심을 굳혔다.

이날 최 회장에게 같은 질문이 두 번 나왔다. 점심 무렵 기자들이 대체 왜 사회적 가치에 '올인'하느냐고 묻자 '회장 최태원'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고, 돈을 얼마나 버느냐보다 그런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45분' 이후인 그날 저녁, 한 대학 교수가 무대에 선 그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자연인 최태원'으로 대답해도 되느냐고 되물은 그가 내놓은 답은 전혀 달랐다.

"공감능력 제로(0)였던 내가 나와는 아주 반대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을 보면 내가 잘못 살아온 것 같았고, 새로운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그 사람의 공감능력을 보며 나는 세상과 사람에 다가가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따뜻한 감정의 형태를 전해받고 사회적 기업이란 무엇인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게 나에게 새로운 계기였고 이런 행사까지 만들어내는 힘이 됐다."

한 밤의 깜짝 고백이었다. 최 회장의 발언이 전해지며 연이틀 여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예상 대로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고백의 함의는 명확하다. 언론과 수백여 청중 앞에서 본인의 전혀 새로운 경영관과 인생관이 한 사람에게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사회적가치는 최 회장 개인의 철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SK그룹의 경영철학이 된 내용이다. 최 회장의 이날 발언은 곧 김 이사장에 대한 관계와 지위의 공식화였다.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8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소셜밸류커넥트 2019(Social Value Connect 2019·SOVAC)'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9.5.28/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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