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렬의 Echo]옐로스톤과 유커

머니투데이 송정렬 산업2부장 | 2019.05.29 05:00
미국이 자랑하는 59개 국립공원 중에서도 '갑'으로 꼽히는 옐로스톤 국립공원. 지난해 주변 지인들의 압도적인 추천으로 특파원 시절의 마지막 여름휴가지로 선택한 곳이었다. 와이오밍주, 몬태나주, 아이다호주 등 3개주에 걸쳐 있는 이 광활한 국립공원은 미국 내에서도 오지 중 오지다. 말그대로 비행기를 타고 렌터카를 달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도착한 이 곳에서 두가지의 커다란 충격을 맞닥뜨렸다.

첫 번째 충격은 어느 정도 예견하고 기대했던 바였다. 일정 시간마다 수십미터의 뜨거운 물기둥을 뿜어내는 간헐천을 비롯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자연현상과 경관들이었다. 생전 처음 마주하는 자연의 경이로움은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두 번째 충격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전혀 상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바로 깃발을 앞세운 중국단체관광객, 이른바 유커였다. 머니투데이 본사 앞 청계천 광장에서 늘 봐왔던 그 모습을 그 머나먼 미국땅 오지에서 다시 목격할 줄이야. 수십대의 관광버스들은 쉴새없이 유커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주요 2개국)로 성장한 중국의 경제력과 중국인들의 두툼해진 지갑을 고려하면 옐로스톤과 유커의 조합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미국에선 오래전부터 유커를 '걸어다니는 돈주머니'로 불렀다. 그만큼 태평양 건너 중국인 관광객들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 공항에서 영어 안내방송 이후에는 곧바로 중국어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주요 관광지엔 중국어 안내책자들이 빠짐없어 구비돼있다. 우드버리 등 주요 대형아웃렛의 매장에는 대부분 중국어가 가능한 직원들이 상주한다. 옐로스톤을 활보하는 유커는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미국 관광산업의 오랜 투자와 노력의 결실이다.

중국과 이웃한 한국 관광산업의 중국 의존도는 가히 절대적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관광객 1535만명 중에서 중국인은 479만명에 달했다. 무려 31%의 비중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유커들은 한국 면세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끈 주역이다. 중국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이후 유커가 급감했지만, 그 자리를 따이궁(대리구매자)들이 메웠다. 한국 면세시장 규모는 지난해 19조원에 육박했다. 세계 최대 규모다. 이중 73%의 매출을 중국인들이 올렸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사실상 한국 관광산업을 먹여살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작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한국의 관광인프라나 콘텐츠 투자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중국인 쇼핑객들이 몰리는 명동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서울시내 거리에서 중국어 교통안내판 하나를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 정부가 유커들의 한국 방문을 금지한 이른바 ‘한한령’을 풀어도 과연 한국이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계속 붙잡을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거리가 가깝다는 이점을 제외하면 우리의 관광인프라나 콘텐츠가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낫다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바로 중국인 관광객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변화다. 중국인 관광객하면 으레 시끄럽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진상'으로 보는 선입견이 아직도 팽배하다. 한해 14조원 어치의 면세품을 사가는 큰손 따이궁을 여전히 보따리상이라고 낮춰본다. 이런 마인드에서 제대로된 관광서비스를 기대하긴 어렵다. 식당 주인에게 가장 무서운 고객은 ‘진상’ 고객이 아니라 ‘오지 않는’ 고객이다. 올해 외국인 관광객 1800만명을 목표로 잡고 있는 한국 관광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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