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살' 국회, 이사만 십여번…여의도 안착까지 풍파

머니투데이 김평화 기자 | 2019.05.27 15:21

[the300]1948년 개원, 한국사 굴곡따라 '산전수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전경/사진=김평화 기자

27일 개원 71주년을 맞은 국회는 1948년 제헌국회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적 굴곡을 따라 적잖은 변화들을 겪었다. 한국전쟁과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며 부산극장, 경남도청에서 현재 서울 여의도까지 의사당은 이사만 십여차례나 다녔다.
군사정권 때는 '행정부의 시녀' 소리도 들었던 적이 있지만 민주화 이후 국회 위상은 점점 커졌다. 입법 주도권을 갖는 동시에 행정부에 견제·감시 역할도 강화됐다.

◇사용한 건물만 10여곳=국회의 '집',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된 건물은 총 13곳이다. 1948년 5월10일 남한에서 단독 총선거가 실시돼 제헌국회가 구성됐다. 제헌국회가 처음 자리잡은 곳은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 중앙홀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국회도 남쪽으로 옮겼다. 대구 문화극장과 부산 문화극장을 임시의사당으로 썼다. 이후 서울 수복과 1·4후퇴, 서울 환도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국회 터도 중앙청 중앙홀, 서울 태평로 시민회관 별관(현재 서울시의회), 부산극장, 경남도청 무덕전, 중앙청 중앙홀로 옮겼다.

전쟁 후 개원한 제3대 국회는 다시 태평로 시민회관 별관을 의사당으로 사용했다. 1954년부터 1975년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 '태평로 시대'가 이어졌다.

◇'국회=여의도' 공식은 1975년=1967년 12월27일 김종필 의장(당시 공화당)이 국회의사당 신축부지를 여의도로 결정짓겠다고 발표했다. 국회의사당건립위원회가 결성됐다. 위원회는 1968년 2월15일 건립지를 여의도로 최종확정했다. 총 공사비로는 76억원이 책정됐다.

공사는 곧 착수됐다. 6년여간 공사끝에 1975년 8월15일 현재 사용중인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준공됐다. 이때부터 국회는 여의도의 '랜드마크'가 됐다.


한글로 바뀌는 국회의원 배지 / 사진=뉴스1
◇'國'→'국회', 휘장의 역사=국회는 개원 이후 무궁화 무늬 안에 한자 '國'(국)을 형상화해 삽입한 것을 휘장으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한글이 아닌 한자를 국가 중요 기관 휘장으로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또 원형 테두리가 글자에 포함되지 않은 것처럼 보여 '國'이 아닌 '或'(혹)자처럼 보인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제2공화국 참의원은 휘장으로 한자 대신 한글 '국'을 넣기로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5·16 군사쿠데타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자 휘장 체제가 이어졌다.


1990년대 들어서도 같은 비판이 제기됐지만 국회 내부 합의에 실패했다. 현재 쓰이는 한글 '국회'를 넣은 휘장이 채택된 건 19대 국회 기간인 2014년이다.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 등이 국회 휘장과 깃발, 배지에 쓰이는 글자를 한글로 쓰자는 법안을 냈다.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한글 휘장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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