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취지를 뒷받침한 건 형식이었다. 논쟁을 즐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이 1박 2일 동안 끝장토론을 벌이도록 했다. 각 부문 대표인 부처 장관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전투를 벌였다. 재원 필요성을 잘 설득해 더 많은 예산을 얻는 부처가 있는 반면 패자도 분명한 제로섬게임이었다.
참여정부를 계승한 문재인정부가 지난 16일 집권 후 세 번째 국가재정전략회의(옛 국가재원배분회의)를 개최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부 예산을 전년 대비 10% 넘게 늘리라는 요구가 나왔다. 여권발이었다.
논의는 거기까지였다. 고령화, 대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복지나 통일·국방 예산을 어떻게 조정할지 토론은 부족했다. 경기 하강·저성장 국면을 대응할 방향도 잘 보이지 않았다. 기획재정부가 보고한 국가채무비율 40% 마지노선도 "근거가 무엇이냐"는 문 대통령 답변에서 더 나가지 못했다. 회의 사정을 잘 아는 관료는 "장관들이 민감한 얘긴 꺼내지 않고 서로 듣기 좋은 말만 하고 끝낸 게 사실"이라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참여정부 당시에도 재원배분회의가 도입 취지대로 굴러가진 않았다. 부처 반발이 있었다. 예산이 깎여 패장이 된 장관의 조직 장악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점 때문이었다. 일부 부처는 의제에서 벗어난 발언으로 분위기를 흐렸다.
그렇다고 국가재원배분회의 정신까지 폐기할 이유는 없다. 각 부문에 예산을 얼마나 투입할지 '결과'는 내지 못하더라도 격론이든 싸움이든 그 '과정'은 밀도가 높아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이 국가채무비율 40% 마지노선 보고를 받았다면 이렇게 반응하지 않았을까. "계급장 떼고 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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