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10년 만에 탄생한 '해외여행자보호법'…구호 비용은 누가?

머니투데이 백지수 기자 | 2019.05.13 17:51

[the300]지난해 말 국회 통과 '재외국민보호 영사조력법'…서아프리카 피랍 구출 한국인에게는 미적용

편집자주 | 해외여행 3000만명, 재외동포 300만명 시대가 코앞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국력 신장을 보여주는 지표지만 분쟁 지역 확대로 재외국민의 안전 우려도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자국민 보호는 국가와 정부의 존재 이유다. 이에 앞서 개개인이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여행을 간 한국인 A씨. 여행지에서 테러 피해를 당했다. 정부는 '법에 따라' 구호 책임을 져야 할까? 2019년 5월 현 시점에서 답은 '아니다'다.

2년 후 2021년 1월16일부터 답이 바뀐다. 지난해 마지막 국회 본회의(2018년 12월27일)를 통과해 지난 1월 공포된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이하 '재외국민보호 영사조력법')'이 2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시행되기 때문이다.

◇국가는 '무조건' 책임진다? NO!=재외국민보호 영사조력법은 이민이나 해외 파견 거주·해외여행·출장 등으로 출국했다가 해외에서 각종 재난에 휘말린 대한민국 국적의 '재외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이를 위한 정부(외교부)가 재외국민의 신체·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를 명시하는 한편 적용될 수 있는 '영사업무'의 범위를 구체화했다.

다만 국민들이 정부의 영사 서비스를 '무조건'적 의무로 간주하고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도 마련됐다. 국민이 영사 조력을 남용하거나 공무원들에 대한 폭행·협박 등을 할 경우 정부가 먼저 영사 조력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은 영사조력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기본적으로 재외국민 본인이 부담하게 했다. 다만 재외국민이 정말 지불 능력이 없거나 정부가 재외국민을 강제로 대피시킬 경우 발생하는 비용 등에 한해서만 정부가 부담하도록 명문화했다.

이번 서아프리카 한국인 피랍 구출 사건이나 지난해 말 미국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년 사고 당시 '귀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지만 앞으로 법이 시행되면 관련 법 조항에 따라 판단할 근거가 생긴다.

◇'영사콜센터'는 있는데 법이 없었다= 법이 이제 막 만들어졌지만 외교부는 그동안 헌법에서 규정한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지키기 위해 영사 서비스를 해왔다. 지금도 해외에 도착한 우리 국민에게는 외교부 영사콜센터에서 안전여행 안내 문자가 도착한다.

여권 분실부터 질병·부상, 재해 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당하거나 긴급 상황이 닥쳤을 때에도 영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모두 외교부 행정규칙('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업무 지침')에 따른 행정 서비스다. 영사콜센터가 2004년 이라크 무장단체의 한국인 피살 사건(김선일 사건) 이후 세워져 운영된지 올해로 15년째인데 법 제정이 미뤄진 탓이다. 이를 두고 ‘위헌’이라는 지적이 10년 넘게 이어졌다. 헌법 제2조 2항이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했지만 정작 이 의무를 규정한 ‘법’이 없어서다.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정부로서도 관련 예산 확보나 영사조력 업무 확대에 어려움이 뒤따랐다. 2017년 3월13일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록 중 김완중 당시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장의 발언에서 애로사항이 읽힌다.

김 당시 국장은 "각 공관 1명 또는 0.5명의 영사 인력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제한된 정부 예산과 인력을 활용해야 하는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한편으로는 법이 제정될 경우에도 난색을 나타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문재인 정부에서도 영사조력 업무에 필요한 예산이나 인력·인프라 확보가 미진할 경우 위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첫 등장' 14년 만에 국회 문턱 넘은 법= 이런 우려 속 관련법 제정은 계속 미뤄졌다. 첫 발의부터 통과까지 14년이 걸렸다. 17대 국회 초기인 2004년 8월 이성권 한나라당 의원이 '재외국민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의한 후 17대 국회에서 권영길(민주노동당)·김성곤(민주당)·김정훈(한나라당) 등 의원이 여야 없이 법 제정을 제안했다. 이후 19대까지 재외국민보호법이 매 국회마다 여러 건 발의됐지만 임기만료 폐기됐다.

이중 김정훈 의원은 18~20대까지 매번 같은 법을 발의하다 20대 국회 후반기에 와서야 법 통과를 볼 수 있었다. 국회를 통과한 재외국민보호 영사조력법은 김 의원안과 설훈·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안 등 3건이 합쳐진 대안이다. 이중 이석현 의원이 '재외국민보호법'을 철회하고 '재외국민보호 영사조력법'으로 재발의한 뒤 기존 두 개 안과 병합심사된 결과물이다.

재외국민보호법이 좀 더 정부의 의무와 책임을 더 강하게 담고 있던 반면 '영사조력법'으로 법안 명칭이 바뀌며 법 성격이 실제 영사조력 업무에 대한 근거 규정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영사조력 거부권이나 국민의 영사비용 상환 의무 등을 인정한 부분이 그 예다.

이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당시 기존 법안에 대해 외교부가 '인프라 구축이나 인원을 더 써야 해서 예산이 많이 들지 않겠느냐'고 난색을 표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정부 측과 조율해 법안을 내면서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법 시행까지 2년이 남은 가운데 국회에는 벌써 '개정안'이 등장했다. 기존 안에서 담지 못한 영사협력원제도(재외공관이 없는 지역의 민간인에게 영사 업무를 돕도록 하는 제도)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 대표발의 개정안이 지난달 발의돼 계류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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