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선고' 단어 법에서 없앤다"

머니투데이 백인성 (변호사) 기자 | 2019.05.10 05:00

[the L][인터뷰] 정형식 신임 서울회생법원장 "회생법원 조정제도, 전문법관제도 도입 필요"

정형식 서울회생법원장 /사진=김창현 기자 chmt@

"파산선고를 받으면 '전통 소싸움'에도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 아십니까?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이 '소 주인'이 되는 걸 막는 법률 때문이예요. 채무자회생법은 파산을 이유로 불이익을 가하는 걸 막고 있는데, 정작 '파산선고'를 조건으로 불이익을 가하고 있는 현행 법률이 200개가 넘습니다. 고쳐야 돼요."

최근 국내 유일의 회생·파산 전문법원인 서울회생법원의 두 번째 법원장으로 취임한 정형식 서울회생법원장(58·사법연수원 17기)을 만났다.

회생법원에 오기 전 정 법원장은 법조계에서 형사재판 전문가로 통했다. 지난해 서울고등법원에서 부장판사로 근무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공여 사건의 항소심을 맡았다. 그는 이 부회장에게 실형을 내렸던 1심을 뒤집고 "기업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요구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항소심과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항소심도 그가 맡았다. 서울 출신의 사법연수원 17기로 서울대 법대를 나와 수원지법 성남지원 판사로 법원 생활을 시작해 2015년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더엘(theL)과 만난 정 법원장은 회생법원에 오기 전과 온 후의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민법총칙을 처음 배우면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법언을 배운다. 저도 회생법원에 오기 전엔 회생제도에 대해 '일부만 갚고 면책을 받는 게 과연 맞는가'라고 생각했고, 법학을 공부해 온 법률가 입장에서 계약상 의무를 위반하는 채무자 편에 서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채무자들에게 채무재조정 등으로 재출발의 기회를 주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 추후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의 지출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지난해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기업은 807곳, 회생을 신청한 기업은 980곳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3년 연속 감소하던 개인 도산 사건도 지난해 13만4602건으로 다시 증가세다.


정 법원장은 개인회생절차상 '파산선고'라는 단어로 인한 불이익이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산선고'는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돈을 지급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원이 내리는 결정이다.

채권자들 입장에서 보면 회생제도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경제적 실패를 한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에게 재출발의 기회를 주는 회생제도는 꼭 필요한 제도라는 게 정 법원장의 설명이다.

수백 개 법률에서 불이익을 가하는 사유로 파산선고를 규정하고 있던데, 이를 한꺼번에 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법무부와 논의해 아예 ‘파산선고’라는 단어를 채무자회생법에서 지우고 '파산절차 개시, 종결'이라는 단어로 바꾸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고 말했다.

실제 교원·변호사·회계사·법무사 등은 파산선고를 받으면 각 개별법에 따라 직업 결격사유에 해당돼 당연퇴직된다. 정 법원장은 이를 두고 '징벌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누구나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다. '미국기업회생법'의 첫 문장도 '기업은 실패하기도 한다(Businesses fail)'로 시작한다. 회생은 창피한 일이 아니라,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를 겪는 것 뿐이다. 숨길 필요 없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나선다면 방법이 있다는 점을 국민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형식 서울회생법원장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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