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내 손으론 못 죽인다"…낙태 거부권 달라는 의사들

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 2019.05.09 18:05

[낙태죄 그 후 한달]② "낙태 원하는 의사에게만 교육하고 시술하도록 해야"

편집자주 |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지 11일로 한달째다. 정국경색으로 내년 말까지 만들어야 할 대체입법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그 사이 현장에선 의사들도, 임신여성들도, 하물며 행정처분을 해야 하는 보건복지부도 혼란에 빠져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한달을 점검했다.

/삽화=이지혜 디자인 기자
"낙태 시술을 하라고 한다면, 저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지난달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산부인과 의사라고 밝힌 글쓴이가 올린 청원 내용이다.

그는 "신비롭게 형성된 태아의 생명을 제 손으로 지울 수 없다"며 "낙태가 합법화되고 산부인과 의사라면 당연해 해야 하는 시술이 된다면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접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에게도 낙태 시술에 대한 진료거부권을 달라는 청원이다. 이 청원은 9일 현재 3만 5000여명이 지지했다.

낙태죄 처벌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대체입법 논의를 시작한 가운데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은 낙태 거부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생명인 태아를 죽일 수 없다는 개인적·종교적 신념이 주된 이유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센터장은 낙태가 산모의 건강에 해롭다는 신념을 설명했다. 산모 건강에 위험한 상황, 즉 의학적 낙태는 허용해야 하지만 사회·경제적 이유 같은 비의학적 낙태는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최 센터장은 "비의학적 낙태는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비의학적 낙태에 대해 거부권이 없으면) 낙태를 하고 싶지 않은 의사들은 산부인과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엔 완전히 대가 끊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사 개인에게 비의학적 낙태 시술 책임을 지워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낙태 시술을 원하는 의사에게만 따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게 최 센터장의 주장이다. 낙태가 가능한 병원이나 의사를 소개하는 일은 의사가 아닌 국가의 몫이라고도 말했다.

/그래픽=김지영 디자인 기자

대한산부인과의사회도 최근 상임이사회를 열고 낙태 진료거부권 요구방침을 세웠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지금도 산부인과 전문의 중 70%가 개인적 신념에 따라 낙태를 하고 있지 않다"며 "낙태가 국민의 기본 권리가 아닌 이상 의사 개인의 신념도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부권이 없으면 '낙태가 합법화됐는데 왜 안 해주느냐'며 고발하는 환자도 생길 것"이라며 "따라서 진료 거부권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의사의 진료거부 시 대체 병원을 안내할 의무를 규정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산부인과 전문의는 "헌재 결정으로 낙태가 필수적인 진료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며 "의사 개인이 신념에 따라 시술을 거부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 서비스가 열악한 곳에서도 의사가 낙태 시술을 거부할 경우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지원하고 안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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