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을, 폭력과 고독…현대철학의 문제, 춤이 다룬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9.05.08 03:30

국내 최장수 현대무용축제 ‘2019 모다페’ 16~30일 대학로 일대서…융합과 공존 화두, 첫 해외진출 협업작 선봬

키부츠 현대무용단의 개막작 '피난처'. _ⓒEyal Hirsch

무용은 무언(無言)이지만 시대적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는 은유적 서사의 보고(寶庫)다. 1개의 춤이 보여주는 예술은 어떤 10마디 말보다 우리 뇌에 깊이 각인된다. 그 춤은 때론 시대를 뛰어넘는 예지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때론 지금 순간을 면밀히 묘사하는 관찰이 되기도 한다.

해마다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민감하고 복잡한 일을 ‘춤’으로 해석해 온 국내 최장수 현대무용축제 ‘모다페’(Modern Dance Festival, 38회)는 올해 갑과 을의 불편한 권력관계, 속도와 관계 부적응에 대한 현대인의 고민 등 가볍지 않은 문제를 화두로 내세웠다.

현대 철학이 해야 할 진지한 성찰의 문제들을 이 축제는 조용히, 그러나 깊은 울림으로 시나브로 다가간다. 오는 16일부터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 마로니에 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이 축제에 세계 13개국 27개 예술단체 134명이 참가한다.

축제 주제는 ‘위아 히어 투게더 포 코엑시스댄스’(we’re here together for coexisDance). 이질적인 것들의 융합(convergence)과 공존(coexistence)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내세웠다.

우선 눈에 띄는 화제작은 정진아·전미라 안무가의 ‘보시’(bossy, 우두머리 행세)다.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상황들을 군무와 솔로의 대립적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끊임없이 부조리를 저지르는 갑과 그들에게 당하며 점점 존재감을 상실하는 을의 모습을 ‘(몸을) 던지고’(throw), ‘흔들고’(shake), ‘얽매이고’(bound), ‘억압하는’(suppressive)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지난 2015년 초연된 이 작품에 대해 문애령 평론가는 “회전과 도약 기교가 좋은 출연자들의 단단하고 열정적인 춤사위 활용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전미라 안무가의 ‘신성한 캐노피’는 아이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부모와 그 속에서 고통받는 아이의 아우성을 그렸다.

전미라의 '신성한 캐노피'_ⓒ이미지트리
개인의 고독과 우울, 고립이 일상화한 사회에 속도나 관계, ‘내려놓음’ 같은 가치를 다시 모색해보는 프로그램도 만날 수 있다.

권혁 안무가의 ‘질주-RUSH’에선 삶의 속도가 개인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고 개인의 가치가 삶의 속도를 결정하는 테마로, 속도에 대한 감각들을 여러 ‘대비’를 통해 증명한다. 이 작품은 2017년 ‘제5회 인천국제현대무용제’에서 최우수 안무가상을 받았다.


조인호 안무가는 ‘마음 내려놓고 편히 가지라’는 뜻의 불교용어 ‘방하착’을 준비했다. 절벽에 매달린 장님이 땅을 바로 아래 두고도 꽉 쥔 손을 놓지 못한 일화를 바탕으로 욕심을 본질을 탐색한다.

‘나의 존재’를 묻고 해석하고 돌아보는 자리는 이동하 안무가의 ‘엠프티 히어로’(Empty hero)에서,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인간 본능의 폭력성은 박순호 안무가의 ‘유도 2.0’에서 각각 만날 수 있다.

세계 최정상 무용단의 개막작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한국인 3명이 소속된 이스라엘 키부츠현대무용단의 개막작 ‘피난처’가 그것. 라미베에르 예술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유대 가족의 정체성, 이질성에 오는 감정들을 춤으로 표현한다.

아시아댄스의 안애순 안무가 작품 'Here There'_ⓒ필름에이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댄스커뮤니티 안애순 안무가의 ‘히어 데어’(Here There)도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은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대만, 라오스, 베트남, 인도, 한국 8개국 17명의 여성 무용수를 선발해 아시아에 퍼져 있는 원무 중 하나인 ‘강강술래’를 차용해 만들어졌다. 아시아 각국의 서로 다른 문화를 몸이라는 매개체로 전통과 현재, 다양성을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해외 진출용으로 제작한 모다페의 첫 투자작 ‘모다페 프로젝트 2019 호모루덴스’도 시선이 집중된다. 영국 프랭키 존슨의 픽업그룹과 언플러그드바디즈의 김경신, 툇마루무용단의 김형남 안무가 등 3개 단체의 협업 안무로 탄생한 이 작품은 인간의 유희와 놀이에 대한 원초적 욕구를 건드린다. 인간의 본성과 본능에 대한 ‘호모’(Homo)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권혁의 '질주'_(c)인천무용협회

이밖에 시민과의 접점을 넓히는 ‘모다페 오프 스테이지’(MOS·모스), 일반인 100명이 참여하는 워크숍 ‘100인의 마로니에 댄스’ 등 일반인의 참여를 넓히는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됐다.

김혜정 모다페 회장은 “올해 모다페 프로그램에선 개인의 감정부터 사회적 관계까지 춤으로 맛보는 여러 문제 의식들을 만날 수 있다”며 “특히 해외에 진출할 실험적 협업 작품은 국내 안무가들의 또 다른 도전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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