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세운 ESS, 정부가 손실보전…속타는 업계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세종=권혜민 기자, 세종=유영호 기자 | 2019.05.02 20:11

ESS 화재원인 규명 또다시 불발…손실보전 약속했지만 수주 중단된 업계, 생존위기 호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다. 정부가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 원인 발표를 6월로 또다시 미뤘다. 정부 스스로 ESS에 대한 불신을 키워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배터리(2차전지)산업의 목줄을 죄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일 세종청사에서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중간 발표했다. 정부는 당초 3월 말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지만 이날도 화재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한 달 후인 다음 달 초에 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관련 업계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정부가 미적대는 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망라한 업계의 ESS 출고 건수가 ‘0’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ESS는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전력이 필요할 때 방출하는 설비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쓰려면 꼭 필요한 장치다. 정부는 에너지전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ESS 보급을 확대해 왔다.

하지만 2017년 8월 전북 고창전력시험센터에서 처음으로 ESS 화재가 보고된 후 현재까지 21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1300개 ESS 사업장 전체에 대해 정밀 안전진단을 시작했지만 이후에도 화재는 계속됐다. 특히 안전진단을 통과한 시설에서도 불이 나면서 우려가 커졌다.

정부는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올해 초 다중이용시설과 별도 건물에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공장용 ESS에 대해 가동중단을 요청했다. 현재 총 1490개 ESS 사업장 중 35%인 522개가 멈춰선 상태다. 나머지 사업장은 제조사별로 안전강화조치를 취한 뒤 가동 중이다.

정부는 이날 가동중지 권고를 받아들인 ESS 사업장에 보상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동을 중단한 기간 만큼 전기요금 특례제도를 이월하거나 REC(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가중치를 추가 지급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 ESS 신규 설치 발주가 이뤄질 리 없다. 올 들어 국내 ESS 발주는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ESS의 핵심 설비는 배터리다. LG화학과 삼성SDI 등이 ESS용 배터리를 공급한다. 모두 1분기 실적이 전년 대비 반토막 났다. 전기차용 배터리 수출 확대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가운데 실적을 받쳐줘야 할 ESS용 배터리 출하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정부가 사실상 ‘주홍글씨’를 새기고 있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한 대형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60여 차례나 관련 회의를 하고도 아직 화재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면 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냐”며 “잘못이 있으면 빨리 바로잡고 새로운 방향으로 생산을 재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배터리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한국산 배터리가 수출되는 모든 지역의 ESS에서 발화 사고가 발생하고,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서도 발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런 사례가 접수된 적 있느냐”며 “정확한 근거도 없이 정부가 배터리 업체들의 문제인 것 처럼 몰아가면서 해외 수출 물량도 뚝 끊겼다”고 주장했다.

ESS가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 시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정부의 무책임을 질책하는 목소리도 높다. 산업부에 따르면 국내에 설치된 1490개 ESS 중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용 ESS 비율은 52%인 777개에 달한다. 사실상 ESS 시장은 신재생에너지 시장과 동반 성장하는 관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화재 원인을 입증해놓고도 발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 정부에서 집중 육성해 온 신재생에너지 설비 업체들의 구조적 결함이 확인될 경우 에너지정책 전반의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대한 빨리 신뢰할만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으면 정부가 앞장서서 신성장동력의 불을 끄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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