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통상임금 사건에 신의칙 함부로 적용하지 말라"

머니투데이 최민경 , 황국상 기자 | 2019.05.03 12:00

[the L] 대법, 통상임금·퇴직금 재산정 사건서 노동자 측 승소취지 파기환송… "노조청구액, 매출·자본금 등에 비해 과도하지 않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동자 측의 청구를 기각하기 위해 쓰여왔던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을 함부로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또 나왔다.

신의칙은 권리의 행사나 의무의 이행이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리는 방식으로 행사되면 위법하다는 원칙이다. 그간 노조가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기업은 노조의 청구가 '신의칙 위반'이라고 항변해왔지만 법원은 이 기준을 점차 세밀하게 만들어가는 모습이다. 기업이 '신의칙 위반'을 이유로 노조 측의 주장을 배제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예산교통 버스 운전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재산정한 통산임금을 기준으로 퇴직금을 추가로 지급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패소 부분을 다시 판단하라는, 원고 승소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통상임금은 시급·일급·월급 등 그 명칭과 무관하게, 근로자들이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노동의 대가로 받는 금액을 일컫는 법적 용어다. 통상임금은 퇴직금뿐 아니라 해고예고수당, 휴업수당,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수당,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 등 각종 수당의 기준치로 활용된다. 통상임금 관련 규정은 강행규정이다. 노사 합의로 임의로 통상임금에 포함되거나 배제할 항목을 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예산교통이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근거로 퇴직금 산정기준으로 통상임금이 아닌 '평균임금'을 택했다는 점에서 발생했다. 평균임금은 휴업·요양보상이나 노동자 장의비 등을 책정할 때 쓰이는 기준치로 쓰이는데 통상임금과 달리 '산정시점 기준으로 직전 3개월치 임금의 평균'으로 계산된다. 대개 평균임금은 통상임금보다 낮다. 이 때문에 예산교통 노동자들은 퇴직금을 법정기준보다 낮게 받아왔다.


예산교통은 또 통상임금을 산정할 때도 상여금이나 승무수당, 근속수당, 일비 등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간 노동자들에게 이같은 금액이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1,2심에서는 예산교통이 통상임금이 아닌 평균임금을 기초로 퇴직금을 산정해 노동자들이 적법한 기준에 비해 적은 퇴직금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해 이를 바로잡으라고 판결했다. 또 예산교통이 통상임금 산정과정에서 제외한 근속수당, 승무수당도 통상임금에 산정시켜 퇴직금을 올려줄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다만 상여금과 일비를 통상임금에 다시 포함시켜 퇴직금을 올려달라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른바 노동자들의 요구가 '신의칙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원심은 "상여금을 포함해 계산한 통상임금에 의해 퇴직금을 지급하게 된다면 회사가 커다란 재정적 부담을 지게 돼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청구는) 신의칙에 위반돼 무효"라고 봤다.


대법원에서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배제하도록 한 원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상여금이든 일비든 그간 예산교통이 노동자들에게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해 왔으니 마땅히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함에도 원심이 이를 배제한 것은 잘못이니 다시 심리해서 판결하라는 얘기다.


아울러 노조의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되는지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킴으로써 추가 퇴직금 등을 지급한다고 해서 예산교통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할 수 없다"며 노조의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근거로 대법원은 △예산교통이 추가로 부담할 퇴직금 규모에 대해 아무런 증명을 하지 못한 채 노동자 주장이 신의칙 위반이라고만 한다는 점 △노동자 측의 추가 퇴직금 청구액(3600만원)은 예산교통 연 매출액(약 40억원)의 0.9%, 예산교통 자본금(5억3000만원)의 6.7%에 불과한 점 △수년간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 상태였음에도 손실액 상당의 보조금을 받아온 점 등을 들었다.


한편 지난 2월14일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도 인천 시영운수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동자의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노동자 측 청구액이 연간 매출액의 2~4%, 총 인건비의 5~10%에 불과하고 △회사 측이 그간 적립한 이익잉여금에 비해 노조 청구액이 과다하다고 볼 수 없으며 △회사가 5년 연속으로 흑자경영을 지속해 노조 청구를 받아들일 여력이 있다는 점을 든 바 있다.


같은 달 기아차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의 항소심에서도 서울고법 민사1부(부장판사 윤승은)는 "기아차가 추산한 미지급 법정수당의 규모에 따르더라도 피고 회사의 당기순이익, 매출액, 동원 가능한 자금의 규모(부채비율, 유동비율), 보유하는 현금과 금융상품의 정도, 기업의 계속성과 수익성에 비추어 볼 때 근로자들의 청구로 피고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노조 측 손을 들어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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