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 무풍지대 한국, 갑자기 소란스러워 진 이유는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 2019.05.03 05:00

[the L][인터뷰] 신희택 국제중재센터 의장 "정책의 극적변경시, 외국인 투자자 충격 감안 필요"

신희택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 의장 / 사진=이기범 기자



"정부가 바뀌면서 정책이 급격히 바뀔 때 투자자가 전(前) 정부와의 약속이 파기됐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정책 변경 전에 국내외 투자자에게 어떤 영향이 갈지 고려하고 가급적 민간 기업의 손해가 미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중재 권위자로 꼽히는 신희택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 의장(67·사법연수원 7기)의 지적이다. 신 의장은 최근 머니투데이 더엘(the L)과의 인터뷰에서 "론스타, 엘리엇, 메이슨 등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S(투자자·국가 분쟁, Investor-State Dipute Settlement) 사건이 최근 눈에 띄고 있는데 굉장히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미국계 헤지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투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매각 승인 절차를 지연시키는 등 한국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5조원대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 2012년 11월이다. 론스타가 제기한 ISDS는 한국정부가 피소된 최초, 최대 규모의 ISDS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어 이란 다야니가문이 대우일렉트로닉스 지분매입을 시도했다가 불발로 끝난 데 대해 한국정부를 상대로 2015년 9월 900억여원대의 ISDS를 제기해 한국정부가 졌다. 지난해에는 엘리엇·메이슨 등 헤지펀드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손해를 입었다며 또 ISDS를 제기했다.

신 의장은 "국내에서는 한국·미국 FTA(자유무역협정)의 ISDS 조항이 독소조항이라는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론스타 ISD는 정작 한미 FTA가 아니라 벨기에·룩셈부르크와 체결한 조약에 따른 것이었음에도 이같은 비판이 거셌다"며 "사실은 한·미 FTA에 앞서 체결된 80여개의 양자간 투자보장 협정에서도 ISDS 조항이 있었지만 그 조항을 쓸 일이 없었다. 한국 행정부가 굉장히 잘 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신 의장에 따르면 ISDS는 주로 자원개발 관련 사건에서 초래됐다. 어느 나라가 외국 투자자에게 자원 탐사권·개발권을 줬다가 자국내에서 자원 민족주의와 같은 움직임이 거세지면 다시 해당 사업을 국유화하는 등 조치를 취할 때 발생했다는 얘기다. 1990년대 초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했다가 2000년대 초반 자국내 외환위기를 빌미로 외국인 투자자에게 과격한 조치를 취한 아르헨티나도 수십 건의 ISDS에 시달린 적이 있다.


국내에서도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도 ISDS의 위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 의장은 "특히 지방자치단체가 ISDS 위험이 높다는 얘기를 수년 전부터 해왔다"며 "외국인 투자자 유치를 위해서 세제 등 각 부문의 혜택을 약속했다가 지자체장 임기가 종료된 후 계획이 바뀌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투자를 위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했다가 갑자기 계획이 틀어지게 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책 변경시 투자자 충격을 감안하지 않아서 생긴 분쟁의 사례로 스웨덴 기업이 독일 연방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S가 꼽힌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 노후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기로 했던 독일 정부가 대지진 이후 원전 조기폐쇄 방침으로 급선회하면서 손해를 입게 된 스웨덴 회사가 제기한 건이었다. 독일이 갑자기 탈원전 정책으로 급선회한 것은 알겠지만 원전 수명연장을 기대하고 장기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을 진행한 과정에서 입은 손해는 배상해달라는 취지였다. 독일기업들은 같은 취지이지만 ISDS가 아니라 독일 헌법재판소에 이 문제를 제기해 독일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확인한 바 있다. 스웨덴 기업이 제기한 ISDS사건은 현재 ICSID(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신 의장은 "독일의 ISDS 사건은 주권국가에 정책을 변경할 권리가 있음에도 정책 변경으로 인한 민간기업의 손해는 배상해줘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 점에서 상징적"이라며 "경우에 따라 배상액이 커질 수 있어서 정부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플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ISDS에 대해 과도하게 방어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신 의장은 "과거에는 개개 투자자와 국가 사이의 분쟁이 발생하면 국가 대 국가 구도의 정치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며 "이를 정치문제로 비화시키지 말고 당사자끼리 해결하라고 도입된 장치가 ISDS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센 나라에서 온 투자자라도 ISDS 절차가 개시되면 자국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예전이었다면 미국 투자자가 한국에서 엄청난 손해를 봤다면 미국 정부가 개입을 했을 것"이라며 "피소국의 국민들도 정책 불확실성 경감으로 장기적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투자중재가 반드시 피소국 국민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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