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데님데이인 이유, 성폭행 때문이라는데…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 2019.04.24 14:26

1992년 이탈리아 대법원의 '청바지 성폭행 불가론'에 항의하는 캠페인… 해외 인식 많이 바뀌었지만 한국은 제자리

데님데이 /사진=인스타그램
오늘(24일)은 성폭행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자는 의미에서 청바지를 입는 '데님데이'(Denim Day)다.

24일 데님 데이를 맞아 미국,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등 전세계에서는 청바지를 입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성폭행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고, 성폭행 가해자들에게 "성폭행에 변명이 있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데님 데이는 매년 4월24일로, 1992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이뤄진 성폭행 판결 항의 운동에서 유래됐다.

1992년 로마의 한 운전 강사(45)는 운전 강습을 받으러 온 소녀(18)를 성폭행하고, 이 사실을 발설할 경우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소녀는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운전 강사를 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운전 강사는 징역 2년10개월의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에 항소했다. 소녀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며 자의적으로 청바지를 벗었기 때문에 성폭행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1998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운전 강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청바지는 단단하기 때문에 입은 사람의 도움 없이 벗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기존의 판결을 뒤집고 운전 강사의 손을 들어줬다.

곧바로 이탈리아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청바지를 입고 있다고 '온전한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청바지에는 지퍼가 붙어 있어 벗기기 쉽다", "청바지를 입은 여자라도 상대가 위협해 옷을 벗길 수 있다" 등의 항의가 쏟아졌다. 이탈리아 여성 의원들은 청바지를 입고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후 로스앤젤레스(LA) 여성폭력위원회의 패트리카 기간스가 데님데이를 행사화하면서 매년 4월24일 전세계에서 청바지를 입고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운동이 벌어지게 됐다.


데님데이 캠페인이 매년 지속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성범죄 재판에서 성폭행이라는 실체적 진실과 연관이 없는 여성의 '행실'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처음 캠페인이 촉발된 이탈리아에서도 기존 판례를 뒤엎는 판결이 나왔다.

이탈리아 파두아 법원은 2005년 5월 여자친구의 16세 딸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37세 남성에게 징역 1년형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기존 '청바지 성폭행 불가론'을 뒤집는 판결이었다. 남성은 1998년 이탈리아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여성이 청바지를 입고 있어 억지로 벗길 수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파두아 법원은 "청바지는 순결벨트가 아니다"라며 징역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인식은 제자리다. 성폭행 가해자 측이 '청바지 성폭행 불가론'을 들고 나와 피해 여성에게 판결이 불리하게 나도록 유도하거나, '청바지 성폭행 불가론'으로 피해 여성을 2차 가해하는 일이 빈번하게 행해진다.

지난달 '징역 8년'의 실형 판결을 받은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67) 측 역시 '청바지 성폭행 불가론'을 들고 나왔다.

이 전 감독 변호인은 결심공판 최종변론에서 이 전 감독의 강제추행 행위에 대한 피해자 진술에 모순이 있다며 피해자가 입은 '청바지'를 문제 삼았다. 변호인은 "피해자가 입은 청바지는 헐렁하지 않았다. 바지 안으로 손가락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만약 그랬다면 벨트를 하지 않는 이상 흘러내릴 바지였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지난해 한국기원도 '청바지 성폭행 불가론'에 의거해 2차 가해성 질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국기원은 2009년 김성룡 전 9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헝가리인 코세기 디아나 기사를 향해 "청바지는 본인 의사에 반해 벗기가 쉽지 않은 옷 아니냐"는 등 2차 가해성 질문을 했다.
데님데이 /사진=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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