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늬의 정치스탯]황교안, 태극기부대에 탬퍼링중?

머니투데이 김하늬 기자 | 2019.04.23 14:40

[the300] 태극기 부대에 '합치자'는 말 빼고 다 보여준 20일 집회

지난 20일 오전 11시40분쯤.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 중앙 무대 전광판이 태극기를 큼지막하게 띄워두고 있다. 한국당은 공식 집회 시작시간인 오후 1시30분 전까지 줄곧 태극기 이미지를 띄워뒀다./사진=김하늬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태극기부대'와의 탬퍼링(tampering, 사전접촉)을 하고 있다.

프로야구에서 자유계약선수와의 협상기간이 시작 되기 전 은밀히 접촉하는 용어인 템퍼링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 직간접적으로 만나 영입의사를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탬퍼링은 프로스포츠에서는 불법이다. 정치권은 해당사항이 없다. '정치의 다이내믹스'와 '국민의 요구'로 모든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정치 지형은 상상력으로 완성된다는 오랜 말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황 대표의 탬퍼링은 공개적이고 적극적이다.

지난 20일, 광화문 광장에 선 황 대표는 그야말로 태극기부대 구애 작전을 방불케 했다. 집회 명분은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에 따른 반박이었지만 현장은 '종북' 프레임과 '좌파' 색깔론의 되풀이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정권 규탄집회에 참석했다./사진=김하늬 기자
#태극기 모여라



자유한국당은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세종문화회관 앞에 무대와 전광판을 설치했다. 흥겨운 음악을 연신 틀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가장 눈길을 끈 건 전광판을 가득 채운 태극기 사진. 한국당은 행사 시작 전까지 태극기 이미지를 주로 띄워놨다. 소위 '태극기 집회'와 혼동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전광판에 화답하듯 한국당 집회장소를 중심으로 태극기를 판매하는 간이 부스도 쉽게 눈에 띄었다. 손에 흔드는 태극기와 태극기 셔츠, 태극기 배지를 파는 사람들과 사는 사람들이 삼삼 오오 모여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엔 ‘5·18 망언’이 나왔던 토론회 주최 등으로 당 징계위에 회부됐다가 ‘경고’ 에 그친 김진태 의원도 참석했다.

#세종문화회관

광화문 사거리에서 200미터 가량 떨어진 세종문화회관은 태극기부대와 물리적으로 가깝다. 매주 극우 보수단체 서너곳이 광화문 사거리, 동화면세점 인근, 덕수궁 입구, 시청앞 광장 등에서 무리를 지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은 사전 안내대로 붉은 복장을 하고 '문재인 STOP', '문재인 STOP 국민심판' 등이 적힌 붉은색 피켓을 들었다. 집회 한켠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단체가 합류해 장사진을 이뤘다.

무대 바로 앞쪽은 황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해 당 소속 의원들과 당직자들, 지지자들이 제각각 지역구 피켓을 들고 '붉은 물결'을 이뤘다.


하지만 약 100여미터 뒤 광화문 KT건물 부터 세종문화회관 빌딩 앞쪽은 태극기와 성조기가 꽉 채운 상태였다. 일부는 태극기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을 합성한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집회에 참가한 태극기 부대 일부는 여전히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꺼내지 않는 황 대표를 원망하는 발언을 가감없이 했다.

개인 스마트폰으로 한국당 현장을 생중계하던 한 60대 여성은 "지금 서청대(서울구치소 청와대)에 계신 대통령님은 신경도 안쓰고 여기서 뭐하는 짓들이냐"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또 다른 집회 참가자는 "보수통합 필요한거 아는데 이대로는 못한다"며 "자한당(자유한국당을 의미하는 듯)이 이렇게 문재인 정권을 비판해도, 탄핵을 인정하면 함께 할 수 없다"고 언성을 높이며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정권 규탄집회에 참석했다./사진=김하늬 기자


#"여러분 청와대로 갑시다"

공안검사 출신 당대표가 무대에 서서 "여러분 청와대로 갑시다"고 선동하는 장면은 박근혜 탄핵 이후 똘똘 뭉친 태극기부대와의 교감이 절정을 이룬 순간이었다.

황 대표는 "문 정권은 한결같이 좌파 독재의 길을 걸어왔다"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문(文)주주의 정권에 우리가 기필코 맞서서 싸워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연설 마지막에 황 대표는 "좌파독재가 끝날 때까지 결코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 제가 선봉에 서겠다"며 감정을 끌어올렸다. 이어 그는 "애국 시민여러분도 함께 해주십시오. 모두 청와대로 갑시다"며 양 손을 들어 올렸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황교안', '황교안'을 외치며 화답했다.

아이러니 한 장면은 불과 반년 전, 같은 장소에서 '이석기 의원 석방 콘서트'가 열렸고, 그들도 "청와대로 갑시다"며 효자동을 향해 가두시위를 벌인 점과 오버랩됐다. 이념의 스팩트럼 양 극단에 있는 두 정치단체가 같은 곳에서 같은 구호를 외친 뒤 같은 방향으로 가두 시위를 해서다.

작년 12월, 이석기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단체가 청와대 방향 효자동으로 가두시위를 할 때 'Free 이석기' 피켓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지난 20일, 황 대표와 한국당 지도부가 집회를 마치고 효자동으로 항의성 가두행진을 할 때 'Free 박근혜' 피켓을 든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20일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심판합니다' 규탄집회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참가한 '태극기 부대' 사진. 메인 무대로부터 약 100~150미터 뒤는 태극기부대가 가득했다 /사진=김하늬 기자

#한국당 의원들..."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어렴풋하게나마 눈치채기 시작한듯 하다. 총선을 위해 태극기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을.

시작은 지난 2월 전당대회였다.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하자 이번엔 ‘태극기부대’가 소동을 일으켰다. 첫 합동연설회가 열린 대전 한밭운동장은 수백명의 태극기 부대의 조직적인 호응과 야유로 분위기를 압도당했다. 특히 대구 합동연설회에선 김병준 비대위원장을 향해 욕설과 야유를 퍼부었고, 다른 후보가 연설을 할 때도 “김진태”만을 환호했다

황 대표가 선거 유세 일정에 박정희 생가를 넣은 것도 이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됐다. 한국당의 지지율이 예상보다 빨리 30%대까지 오른 것도 '박정희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한 태극기의 영향력이라고 내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당 의원들은 "태극기 부대 내에서도 일부는 박근혜 대통령 무죄를 주장하는 극단적인 성향이 있지만, 또 일부는 보수 재건을 바라는 '결'이 다른 사람들도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또 다른 한국당 의원은 "문재인 정권 심판의 프레임에 태극기 끌어안기를 포함시키는 건 위험하다"며 "중도 보수의 표를 얻기위한 노력이 차라리 더 생산적이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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