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신한금융이 넘어야 할 산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 2019.04.15 04:42
‘함께 같은 길을 가더라도 함께 세우고 창업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함께 세울 수는 있어도 권력을 줄 수 없는 사람이 있다.’(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 ‘논어’ 자한 편에 나오는 말이다. 이런 말을 한 것을 보면 공자는 결코 세상물정 모르는 백면서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권력의 생리를 너무도 잘 아는 고도의 책략가였다.
 
공자의 말처럼 정치영역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에서도 함께 세울 수는 있어도 권력을 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신한금융그룹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신한금융 라응찬 전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장은 신한은행과 신한금융을 국내 1등으로 키워낸 주역이다. 그렇지만 라응찬 전 회장은 신상훈 전 사장에게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그를 내치고 말았다. 라 전회장은 신 전사장을 권력을 나눠줄 수 없는 사람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게 2010년 일어난 ‘신한사태’의 본질이다.
 
조용병 회장과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의 관계도 서로 권력을 나눌 수 없는 사이로 끝나고 말았다. 두 사람은 신한사태를 수습하면서 들어선 한동우 회장이 후임 회장과 은행장으로 임명했고 2년간 호흡을 맞췄지만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조용병 회장은 임기만료를 앞둔 위성호 행장을 물러나게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대교체를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남산 3억원 의혹사건’ 연루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조용병 회장에 대한 검찰의 채용비리 수사 과정에서 서로의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한동우 전 회장이 평소 잠재적 경쟁관계였던 두 사람을 회장과 은행장으로 임명한 게 잘못이었다. 두 사람은 오랜 조직생활 중 연배나 경력 측면에서 수평관계였지 상하관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 전회장은 탕평을 명분으로 두 사람을 나란히 발탁했고, 이게 결국 분란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지난 연말 조용병 회장은 위성호 행장을 비롯한 계열사 사장단을 대부분 경질하고 진옥동 행장을 선임했다. 계열사 사장단 중에서는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만 유임시켰다. 조용병은 진옥동과 임영진 두 사람만 일단 나중에 권력을 나눠줄 수 있는 후계자로 지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9년 전 신한사태 이래 수시로 흔들리는 신한금융의 지배구조는 안정을 되찾은 것일까. KB금융그룹 윤종규 회장이나 하나금융그룹 김정태 회장 체제처럼 말이다.
 
몇 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무엇보다 조용병 회장 본인의 채용비리 관련 재판이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의 실형선고와 법정구속이 보여주듯이 주변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조 회장은 어떻게든 ‘리걸 리스크’(legal risk)를 극복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신한금융이 다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조용병 회장이 지난번 정기주총을 전후로 계열사 사장단과 경영진을 재편하고 이사회를 새롭게 짜는 과정에서 부상한 두 세력이 있다. 바로 신한금융 사외이사로 선임된 이윤재·변양호씨로 상징되는 ‘이헌재사단’과 신상훈 전 사장 계열의 세력이다. 이들은 지금은 조용병체제의 우군이지만 언제든 위협세력으로 돌변할 수 있다. 이 두 그룹을 어떻게 관리·통제하느냐가 큰 과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산이 있다. 신한금융은 외견상으론 지난해 KB금융을 물리치고 리딩뱅크 자리를 되찾았지만 금융계에서는 이제 누구도 신한금융을 확고한 1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신한금융이 지배구조 측면에선 경쟁사들보다 더 불안하기 때문이다. 신한맨들은 앞으로 1년여 동안 ‘원 신한(One Shinhan)’으로 뭉쳐 조직을 지켜야 한다. 행여 ‘2차 신한사태’가 일어난다면 신한금융은 다시 일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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