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독전' 마약공장이 풍력발전 메카

머니투데이 영광(전남)=권혜민 기자 | 2019.04.06 11:00

영광풍력발전단지 준공식 가보니…영농형 풍력단지로 주민과 상생·관광객 유입 기대, 소음 등 주민수용성 제고는 과제

4일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 일원 영광풍력발전단지에서 풍력발전기가 가동되고 있다./사진=권혜민 기자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전라남도 영광군을 향해 3시간30분 남짓 이동하면 어느새 푸른빛 바다와 맞닿은 길을 만나게 된다. 영광백수해안도로를 따라 바다를 끼고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다보니 저멀리 빙글빙글 돌아가는 흰색 바람개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안도로를 지나 연녹색으로 물든 논과 밭 사이를 내달리자 점점 더 많은 바람개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3개의 거대한 날개(블레이드)를 가진 풍력발전기가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제각각 회전하고 있었다.

지난 4일 찾은 전남 영광군 백수읍과 염산면 일대에는 이런 풍력발전기 66기가 들어서 있었다. 총 설비용량은 140㎿(메가와트)로 국내 최대 규모다. 이 지역에선 서해안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이용해 연간 26만㎿h(메가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한다. 이는 약 7만2000가구가 이용 가능한 양이다. 친환경 발전으로 11만1000톤의 이산화탄소도 저감하고 있다. 소나무 4000만그루를 심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내는 것이다.

한국동서발전은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을 25%로 확대하는 '재생에너지 3025' 달성을 위해 풍력발전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영광풍력발전사업은 핵심 추진 과제 중 하나다. 먼저 1·2단계로 호남풍력(20㎿급), 백수풍력(40㎿급)이 2014년 2월, 2015년 5월 각각 가동에 들어갔다. 마침내 올해 1월 3단계 79.6㎿급 영광풍력이 준공되면서 '서해안 윈드팜'(Wind Farm)의 최종 조성이 끝났다.

4일 오후 전남 영광군 염산면 풍력 종합운영센터에서 열린 영광풍력발전설비 준공식에서 풍력발전 드론 점검 시연이 진행되고 있다. 2019.4.4/사진=뉴스1

◇지역과 상생 '영농형 풍력단지'…농작물·전기 생산 동시에=풍력발전기로 가까이 다가가자 거대한 발전기가 논밭 바로 옆에 위치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발전기가 서 있는 정사각형 부지를 둘러싼 울타리 너머로 초록빛 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자라고 있었다. 주민들은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논밭 사이사이를 오갔다. 한적한 바다나 산지에 들어선 풍력발전소와는 다른 모양새다.

영광풍력은 국내 첫 '영농형 풍력단지'로 개발됐다. 경작농지 일부에 풍력 발전설비를 설치해 농작물 재배와 친환경 발전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이다. 지역주민은 농지 일부를 풍력발전 부지로 제공해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2314㎡(700평) 규모 논에서 벼농사만 할 경우 연 수익은 약 110만원이다. 하지만 이중 1322㎡(400평)을 풍력 발전 부지로 제공하면 임대수익 800만원에 나머지 땅에서 농사를 지어 번 47만원 더해 847만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이전보다 연간 수익이 7.7배 증가하는 셈이다.

또 발전소 건설·운영인력을 지역인재로 채용하고, 건설공사 시공업체를 지역기업으로 활용하는 등 지역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된다. 영광풍력 1·2·3단계 사업을 통틀어 총사업비 4097억원이 투자되고, 직접고용만 45명, 총 4200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기대된다.

동서발전 관계자는 "영광풍력은 지역주민과 상생하고 이익을 나누는 국내 최초의 영농형 풍력단지"라며 "주민과의 공생을 위해 임대수익 외에도 20년간 약 31억원을 지원하는 등 풍력발전의 일정 수익을 지역발전을 위해 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독전' 스틸컷/사진제공=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

◇영화 '독전' 촬영지로 활약…관광객 유입 기대=전남도와 영광군에서 또 하나 기대하는 것이 관광 활성화다. 대규모 풍력단지가 지역의 랜드마크로 떠오르면 관광객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원자력, 석탄화력, 태양광 등 다른 발전과 달리 풍력발전은 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파란 하늘을 뒤로 하고 바람에 맞춰 부드럽게 돌아가는 새하얀 풍력발전기는 사진 배경으로 쓰기에도 제격이다.


이미 영광의 풍력발전기는 매스컴을 탔다. 지난해 5월 개봉해 5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독전'은 백수풍력 단지를 배경으로 촬영했다. 영화 속 벙어리 남매가 마약을 제조하던 소금공장이 위치한 곳이 바로 영광 백수읍의 염전이다. 마약공장이 극중 주요 무대 중 하나였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뒤로 풍력발전기가 도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4일 오후 전남 영광군 염산면 풍력 종합운영센터에서 열린 영광풍력발전설비 준공식 행사를 마친 뒤 군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9.4.4/사진=뉴스1

◇'영광 스타' 총리 등장에 환호…'소음·전자파' 우려도 여전=이날 오후 열린 '영광풍력 발전설비 준공식'은 마을 잔치와 같은 분위기로 진행됐다. 주인공은 당연 이낙연 국무총리였다. 영광 출신 현역 정치인으로 내각 수반에 오른 이 총리가 고향을 찾자 행사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지역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이 총리는 축사를 통해 "재생에너지 산업이 발전하면 좋은 일자리가 늘어날 뿐 아니라 기후변화와 공기오염 등에서 국민을 보호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 자연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특히 "전남은 재생에너지 생산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며 산업 육성 의지를 밝히자 주민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일부 주민이 행사가 끝난 뒤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이 총리도 밝게 웃으며 요청에 응했다.

준공식에서 만난 지역주민들은 국내 최대 규모 풍력발전 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많은 주민들이 행사용으로 설치된 색색의 바람개비와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발전설비 점검에 사용되는 드론(무인기)를 살펴보는 등 적극적으로 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에너지사업 추진의 핵심 요소인 '주민 수용성'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전자파와 소음 발생 등 거주지와 농지 인근에 세워진 풍력발전기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씻기지 않은 듯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떠들썩한 행사 탓에 발전기 소음을 듣기는 어려웠지만 주민들은 조용할 때, 특히 밤 시간대에 소음 피해가 있다고 호소했다.

백수읍에 사는 김금단씨(63)는 "바람으로 깨끗한 전기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매일 논에 다니다 보니 전자파가 나오지 않을지 걱정된다"며 "풍력발전기가 들어섰으니 우리 지역에 전기를 싸게 판매하는 등 추가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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