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지주사 한진칼의 최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휘두를 순 있겠지만 타의로, 그것도 '국민'(연금)의 이름으로 선대 회장이 세운 회사에서 물러났다는 점은 한국 재계사(史)에서도 파격적 사건이다.
두 딸의 '땅콩회항'·'물컵갑질' 사태부터 촉발된 오너 일가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불신이 주주총회에서 표로 표출된 셈이다. '자본시장의 촛불혁명'이란 평가까지 나온 이유다.
그 직후 이어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퇴진도 '재계 2세 시대'의 클라이맥스를 찍었다. 박 회장은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스스로 물러났다. 마치 드라마처럼 두 '항공 라이벌'은 같은 날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 일련의 사태는 자의든 타의든 오너 리스크에 대한 경종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는 사이 한 편에선 약물에 취한 일부 재계 3~4세들의 일탈이 또다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들은 잊을 만하면 사회면을 장식하며 반기업 정서를 부추겼다.
1970~80년대 이후 '한국형 오너 경영'에는 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해왔다. 짙은 음영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결과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의 외형을 성장시킨 공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과연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영미식 전문경영인 시스템이었다면 대한민국 반도체·자동차 신화가 나올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특히 많은 재계 2세들은 창업주 가까이서 배워 뚝심있고 선굵은 투자로 내수 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공을 인정받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대다수 재계 3~4세가 시장 플레이어로 나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갖추고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지에 따라 기업, 더 나아가 국가 경제의 생사가 갈려왔다.
선배 경영인의 공과(功過)를 철저히 분석한 뒤 전략을 세워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시대 정신이 급변하고 있다. 성역은 없다. 사회·문화적 환경변화 뿐 아니라 산업 패러다임도 '5G'급 속도로 바뀌고 있다.
이제 이윤을 남기는 경영 능력은 기본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도덕적 기준도 필수조건이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가 오더라도 여전히 '오너의 사회적 품격'은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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