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0여명, '난민 취급' 받는 아빠와 아이들

머니투데이 권성진 인턴기자 | 2019.04.07 06:20

출생신고 하려 1년씩 들이고도 수백만원 날려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1997년 데뷔한 배우 김승현은 당대 최고 스타였다. KBS 뮤직뱅크 MC로 활약했고, 드라마 '나 어때', '흐린 날에 쓴 편지', 영화 '질주', '주글래살래' 등에 출연했다. 무명시절 한번 겪은 적 없던 그는 2003년 자신이 '미혼부'라는 사실을 고백함과 동시에 모든 방송 활동이 중단됐고 오랜 기간 단역과 조연을 전전해야 했다.

2015년 '사랑이법' 개정으로 미혼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됐지만 여전히 아이 출생신고를 못하는 등 미혼부가 아이와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짙다. 한국 사회 곳곳에 있는 미혼부는 2017년 통계청 기준 8424명으로 미혼모(2만2000여명)보다는 수가 적은 편이다.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미혼부들 이야기를 담아봤다.

◇" 내 자식인데 출생신고를 못한다고?"
사진제공=뉴스1
미혼모는 출생 증명서가 있으면 출생신고가 가능하지만, 미혼부는 출생증명서 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미혼부인 박정호(가명)씨는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박정호씨는 돌이 다가오는 딸의 출생신고를 아직 하지 못했다. 그는 이혼 소송 중인 전 여자친구와 만나 딸을 가졌다. 여자친구는 이혼 소송의 진척이 없었고 그는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다. 그러나 박정호씨 홀로 아이를 키우기에 제도의 문턱은 여전히 높았다. 법원은 이혼한 뒤 '300일이 지나지 않아 전 남편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과 '왜 생모와 같이 살 수 없는지'에 관한 증명을 요구했다. A씨는 출생신고를 위해 진행한 유전자 검사까지 거쳤지만 가정법원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법규상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각했다. 그는 출생신고를 위해 가정법원을 오가며 1년을 버렸고 수 백 만원을 변호사 선임에 지불했다.

A씨가 아이를 출생신고하지 못해 겪는 어려움은 일상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는 이런 어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 아이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의료 시설을 이용할 때와 교육 기관을 방문할 때 느낀다고 했다. 그는 "딸이 감기를 심하게 앓아 병원에 입원했는데 2일 입원하고 병원비가 70만원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보육료도 받을 수가 없다. 그는 "맞벌이를 위해 신생아 어린이집을 알아봤는데 한 달 보육료만 50만원 수준이라 포기했다"고 말했다.

◇ 초등학교 중퇴인데 법원을 가라고?

사진제공=뉴스1

미혼부가 저소득층일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방의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다을이 아빠(가명·43세)에게는 5개월 된 남자아이가 있다. 당시 여자 친구는 출산 뒤 행방이 묘연했고 그는 아이를 혼자서 돌보게 됐다. 출생 증명서가 없어 그는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2015년 서영교 의원 대표 발의로 미혼부의 출생신고를 가능하게 하는 '사랑이법'이 통과됐다. 하지만 출생신고를 위해서 가정법원을 방문해야 한다. 초등학교 중퇴인 그에게 가정법원을 출석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에게는 아이가 매달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이 부담이다. 공과금이 밀린 상태에서 저렴한 예방접종이 2만원 수준이고 비싸면 10만원이 넘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가 새벽에 아프거나 주말에 아프면 응급실 가기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입양도 생각했지만 입양도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남은 방법은 ‘베이비 박스’뿐이었지만 그는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다.

이런 상황을 보며 2015년 '사랑이법'의 주인공 '사랑이 아빠'는 "사랑이법이 뿌리부터 잘못됐다"고 했다. 미혼부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3~4년 걸리던 현실이 3~4개월로 바뀐 것은 분명한 성과지만 법의 한계가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는 "여전히 법의 문턱은 높고 법의 초점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잘잘못을 가리려는 것에 있다"고 했다. 사랑이법이 개선된 이후에도 대략적인 출생신고 인용률이 절반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제 주변 미혼부 중 저소득층이 많고 그들 중 상당수가 학력이 낮아 문장력이 없다. 당연히 가정법원에서 기각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미혼부에 대한 지원은 열악하다. 미혼부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 (부자 보호 시설·공동 생활 가정)은 현재 전국을 다해 3곳뿐이다. 불교(서울 선재누리)·개신교(인천 아담채)·구세군(서울 한아름)에서 운영하는 종교 재단이 전부다. 이곳들마저도 '미혼부를 위한 전문 시설'은 아니다. 미혼모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59 곳, 미혼모자 시설·미혼모자 공동생활 가정)과 비교해도 역부족이다.

◇ 전문가 “출생신고 제도 문턱 낮추고 복지 사각지대 없애야”

전문가들 역시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지적했다. 한국 미혼모 지원 네트워크의 유미숙 팀장은 "미혼모보다 미혼부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긴급 생계비 지원이 생겼지만 출생신고가 안 되어 있다면 이런 지원 조차 받을 수 없다"며 "이들은 매 순간 생존을 위협받는다"고 했다. 또한 그는 "한국 사회에서 미혼모를 향한 사회 시선과 다르게 미혼부에 대한 시선은 차가워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사진제공=뉴시스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출생신고 간소화를 언급했다. 그는 "저출산을 극복하겠다고 정책 기조를 내세우지만 미혼부와 아이가 복지사각지대에 처하는 것은 모순이다"고 했다. 이어 "2015년 사랑이법이 개정돼 전보다 미혼부의 출생신고가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법원에서 요구하는 진술서가 엄격해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미국, 뉴질랜드와 같은 선진국에서는 출생과 동시에 의료기관에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출생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도 아이의 출생등록을 우선시 하고 부나 모를 모르는 경우는 추후에 확인하는 제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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