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렬의 Echo]‘방콕’을 강제하는 규제사회

머니투데이 송정렬 산업2부장 | 2019.04.02 06:00
#“봄 세일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미츠코시백화점 건물 바깥에 펄럭거린다. 할인 판매를 노린 경성의 여인들이 꾸역꾸역 몰려든다.(중략) 백화점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경성에서 보낸 하루’ 중)

1930년대 만주와 조선을 통틀어 최대 규모를 자랑한 미츠코시백화점 경성점의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위치한 바로 그곳이다. 당시 한껏 화려함을 뽐낸 백화점은 단순한 눈요기 대상을 넘어 근대의 상징이며 신세상이었다. 어느 시대에나 소비의 중심지는 당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

지금 대한민국 쇼핑의 대세는 복합쇼핑몰이다. 백화점은 지고 스타필드하남이나 잠실 롯데월드몰 등 복합쇼핑몰이 뜨고 있다. 복합쇼핑몰에서 쇼핑, 외식, 휴식, 문화생활, 영화관람 등을 즐기는 이른바 ‘몰링’(malling) 문화도 확산하고 있다. ‘몰캉스’(쇼핑몰+바캉스의 합성어) ‘몰링맘’(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복합쇼핑몰을 방문하는 주부 고객들) 등의 신조어들은 이 시대의 삶과 문화와 조응한다.

극심한 내수침체에도 그나마 복합쇼핑몰은 다른 오프라인 유통점과 달리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의 덫이 복합쇼핑몰을 덮칠 기세다. 현재 국회에는 대형마트와 SSM(기업형 슈퍼마켓)에 적용 중인 영업시간 제한과 월 2회 의무휴업 규제를 복합쇼핑몰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다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정부와 여당은 개정안 처리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복합쇼핑몰 규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골목상권 보호”라는 절절한 구호 앞에서 “침체에 빠진 유통산업의 신성장동력”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등의 주장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한번 짚어보자. 2012년부터 강제로 대형마트의 문을 닫게 했다. 과연 그 덕에 보란듯이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이 살아났는가. 거창한 규제 명분에 걸맞은 그간의 도입 효과를 명확히 보여주는 조사결과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복합쇼핑몰 규제라는 또다른 규제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정말 정치권은 복합쇼핑몰 문을 닫으면 몰캉스족이나 몰링맘들이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복합쇼핑몰 매장의 대다수를 임차한 소상공인들이 입을 피해는 어쩔 것인가.


마트규제 경험칙상 복합쇼핑몰 영업을 규제할 경우 소비자들은 구매를 미루거나 쇼핑횟수를 줄일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 선택권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영업규제가 소비를 위축시키고 시장을 죽이는 악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설령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도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들의 자생력이나 경쟁력 강화를 직접 지원하는 정책들이 그나마 시장에는 덜 해롭다.

사실 e커머스 확산에 오프라인 대형 유통업체들마저 줄줄이 적자의 늪에 빠졌다. 아직도 ‘골목상권 vs 대형 유통업체’라는 구시대적인 오프라인 중심의 유통시장 프레임에 갇혀 있는 정치권의 규제 논의는 그래서 시대착오적이다. 혹여 골목상권 살리기를 명분으로 e커머스 영업도 규제하자는 발칙한 상상력을 펼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최악의 미세먼지가 연일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야외활동을 피해 복합쇼핑몰로 몰려든다. 이런 마당에 복합쇼핑몰 규제는 미세먼지로 갈 곳 잃은 국민들에게 사실상 ‘방콕’(방에 틀어박혀 있음)을 강제하는 것이다. “주말에 복합쇼핑몰마저 문을 닫는다면 이 미세먼지 구덩이 속에서 어디를 가란 말인가.” 뿔난 국민들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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