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세계 최고 복지국가 된다

머니투데이 양영권 경제부장 | 2019.03.29 04:00
서울시 공무원 박대근이 차도블록 까는 것을 배우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 일본 블록 포장 전문가에게 현장을 소개시켜 달라고 하니 24년, 26년 전 준공된 곳을 소개해 주더란다. 최근에 시공된 깔끔한 곳도 보고 싶다고 하자 그런 현장은 별로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토건 예산이 복지예산으로 흘러가 예전이라면 블록을 깔았을 곳에, 이제는 좀 더 값싼 아스팔트를 깐다는 것이었다. (박대근 <보도블록은 죄가 없다>)

일본은 2005년 65세 노령 인구가 20%를 돌파했고, 2024년에는 3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다. 이미 1963년 노인복지법을 제정하는 등 고령화에 대비해 왔다. 1973년에는 노인 의료비 무료화를 실시했다.

모두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노인인구 증가로 복지 지출은 급속도로 증가했다.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은 1990년 10.9%에서 2015년 21.9%로 상승했고, 보도블록 깔 돈까지 끌어와 노인들을 위해 써야 하는 나라가 됐다. 갈수록 짐은 무거워진다. 일본 후생성은 고령화로 연금과 의료, 요양 등을 위한 사회보장비가 매년 1조엔(10조3290원) 규모로 증가할 것으로 본다.

우리도 곧 닥칠 일이다. 한국은 유소년 인구 대비 노인 인구 비율을 뜻하는 노령화지수가 세계1위인 나라다. 통계청 전망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17년 13.8%에서 2025년 20%를 돌파하고, 2036년엔 30%를 넘는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것도 그렇지만, 기초연금 인상, 치매국가책임제 도입 등으로 들어갈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인 나라인데 복지를 강화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한국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은 11% 정도이지만, 일본처럼 20%대로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다. 세금 걷어 대부분 복지에만 쓰게 된다. 가만히 있어도 노령화 때문에 저절로 복지국가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노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를 만든다. 지금은 무분별한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이 비판을 많이 받지만, 그 때는 진짜 해야 할 투자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달갑지 않은 복지국가'를 하루라도 늦추려면 준비를 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에 노령화의 원인인 저출산을 막을 대책은 기대도 않는다. 저출산에 대해 심각하다고는 떠들지만, 저출산을 막을 정책은 당장 효과가 나는 대책이 아니기 때문에 시급성에서 차순위다.

그렇다면 노인 기준이라도 올려야 하는데 그마저도 눈치만 본다. 이미 대법원은 육체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나이를 기존 60세에서 65세로 높였다. 당연히 정년 연장 논의가 뒤따라야 했다. 하지만 취업 기회를 잃게 되는 청년들 표가 날아갈까 걱정이다.

고갈 시점이 뻔히 보이는 국민연금 역시 수급개시 연령을 상향해야 하지만 관련 기사에 달릴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악플이 두렵다.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도 높여야 하지만 노인 표가 날아갈 수 있다는 우려에 정치권과 관련 부처는 입에 담기조차 금기시한다.

모두 미래 세대가 혜택을 볼 대책들이지만, 정치인들은 현재에 살고 투표권은 기성세대에 있다. 그래서 선지자가 동시대 사람에게 인정받기 쉽지 않다고 했나 보다. 인기 없는 대책을 국민에 설득해 동의를 받아내고 밀어붙일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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