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돌봐 줄 사람들"…사회복지사, 처우개선 해법은?

머니투데이 조해람 인턴기자 | 2019.03.30 06:20

[복지사도 아프다-②] "'좋은 임금님' 필요 없다"…사회서비스원, 고용 구조적 문제 해결로 나아가야

문재인 대통령이 2월19일 오후 서울 노원구 월계문화복지센터에서 포용국가 사회정책 대국민 보고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보육과 어르신 돌봄 등 사회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제공하는 기반을 마련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사회서비스공단 설치'를 내걸었다. 기존 민간 시설의 매입 및 장기임대를 중심으로 한 국·공립시설 확충, 사회서비스 제공 인력 직접고용 등을 골자로 했다. 그러나 이행은 계속 늦어졌고, 사회서비스공단은 사회서비스원으로 축소됐다.

사회서비스원은 지난 6일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대구, 경기, 경남 4개 시도에서 2022년까지 국공립 시설 170개소와 종합재가센터 70개소를 운영하고, 서비스 제공인력 1만1000명을 고용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사업의 범위와 규모가 당초 계획보다 많이 후퇴했고, 현장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고충을 덜기엔 부족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적 대책 절실한데...'범위'도 좁다
사회서비스원은 새로 생기는 국·공립시설을 우선 위탁받는다. 신규 국·공립 어린이집과 요양시설은 필수적으로 운영하게 되며, 위법 및 불법행위로 문제가 된 국·공립시설도 위탁받게 된다. 그러나 사회복지시설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간 위탁시설에 대한 직접운영 대책은 미비하다. 민간 시설에 대한 지원은 회계·노무·법률 등에 대한 상담·자문, 대체인력 파견 및 시설 안전점검 지원에 그쳐 있다.

'문제의 본질'로 지적되는 위·수탁의 역사는 길다. 한국의 사회복지서비스는 기아문제가 심각했던 전후부터 양극화가 심해진 70년대를 거쳐 지금까지, 민간 부문에 정부가 역할을 '위임'하면서 발전해 왔다. 시설을 운영하는 거대 법인은 강력한 운영권을 바탕으로 전횡을 부릴 수 있게 됐다. 종사자들만 피해자가 됐다. 이들이 부조리를 호소할 책임 소재는 불분명해졌다. 양혜정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교육국장은 "감정노동이나 노동권 침해를 구조적으로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종사자들은 알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지역아동센터 예산사태 해결을 위한 추경쟁취연대 회원들이 1월15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지역아동센터 예산사태 해결을 위한 추경 쟁취 궐기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스1
국·공립어린이집과 재가복지서비스에 국한된 좁은 사업 범위도 문제다. 대표적으로 취약계층 아동의 복지를 대부분 담당하는 지역아동센터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은 "사실상 최저임금만 받고 일하는 종사자들의 공공성과 일자리 안정성이 보장되었을 텐데 아쉽다"며 "정부가 최소한 일자리 정책이라는 측면에서라도 고민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좋은 임금님'을 기다리지 않는다"
사회복지시설의 위·수탁 구조는 종사자들이 인권 침해를 당할 때, 책임 소재를 떠넘기기 좋게 만든다.

김기홍 마천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가 대표적 사례다. 김씨는 이전 법인인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있던 시절 사회복지사가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부조리를 경험했다. 매일 새벽에 출근해서 막차를 타고 퇴근했지만 연장근무수당은 대부분 인정되지 않았다. 종교행사 강요도 있었다. 매년 3000배, 발원문 낭독, 봉축행사 등에 동원되며 조기출근 및 주말출근을 했다. 이 역시 근무시간에서 제외됐다.


김씨는 현재 전 재단과 소송 진행 중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모두 책임을 돌리고 있다. 구청은 전 법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전 법인과 현 법인은 책임을 서로 미루는 중이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은 '겨울 수련이라 나갈 수 없다' '총무원장 스님의 소재가 불분명하다'며 둘러대고 있다.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기에 가능한 '핑계'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우리는 '좋은 임금님'을 기다리지 않는다." 김씨는 기관에 '좋은 법인'이 들어오는 걸 넘어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현재 소송은) 돈을 보고 하는 일이 아니다. 이 구조 자체가 변화해 사회복지 종사자 전반의 처우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지금 구조에서는 법인이나 기관장이 복지관을 사유화하기 편하다. 종사자에게도 이용자에게도 좋을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사회복지사들은 정부가 나서주길 기다리고 있다. 2018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사회복지사들 중 69.6%가 중앙정부가 처우개선을 책임져야 한다고 답했다. 지방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19.9%로 나타났다. 최병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사회복지종사자의 인권보호 강화는 이용자의 복지서비스 질 제고와 직결되는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개선을 촉구했다.

◇'좋은 취지' 더 넓게 실현할 사업 확대 절실
사회복지 관계자들은 사회서비스원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데 입을 모았다. 추주형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정책팀장은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사회서비스진흥원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내용"이라며 "매우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종사자들의 불안정한 임금·지위 문제를 해결하고,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을 막는 돌파구로 기능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회복지의 공공성을 보장하는 인프라 구축의 첫걸음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청에서 열린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창립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다만 전문가들은 정책이 좀 더 많은 복지현장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추주형 한사협 정책팀장은 "국가직접책임을 강화하는 정책이 더 많은 영역에서, 더 많은 지역에서 다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태숙 전지협 정책위원장도 "서비스원에 고용되면 종사자들은 부당한 처우에 대해 공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민간위탁에 따른 고용 불안정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사업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복지 관련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2018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중은 11.1%로 OECD 평균인 20%에 훨씬 못 미친다. 게다가 2019년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전년대비 1조2000억원 감액됐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위원장은 "복지재정 확대는 포퓰리즘이 아니다. 사회복지서비스는 결국 우리에게 혜택이 돌아오게 된다"며 "인프라를 확충하고 공공화하기 위한 지출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늙고 병들 국민들을 돌봐 줄 이들의 처우 개선은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란 지적이다. 오 위원장은 "복지는 사람이 행하는 서비스다.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상황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사회서비스 종사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를 받으며 고되게 일한다. 그에 합당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고, 처우 개선은 서비스 질의 개선으로 바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수혜자로서 좋은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종사자 처우 개선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처우에 관심을 가져 주길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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