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카르텔│‘손절’하는 남자들

이마루 (‘엘르' 피처 에디터) ize 기자 | 2019.03.28 09:15
함께 찍은 사진, 전화 연결, 아슬아슬한 폭로에 가까웠던 예능에서의 친분 과시……. 마치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라는 19년 전 영화 포스터를 보는 것처럼 전시하듯 내걸었던 ‘싸나이’ 우정에 이렇게 발목이 잡힐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역시, 인생은 실전이다.

버닝썬 게이트가 활짝 열린 지 한 달. 과거의 ‘브라더’와 ‘절친’은 금세 연락을 주고 받은 지도 오래인 사이로 탈바꿈했다. 이상한 일이다. 여자들의 우정과 달리 남자들의 우정은 시간의 흐름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집까지 가서 ‘포켓몬 도감 같은 황금폰’을 봤다던 지코는 왜 정준영과 연락도 안 하는 사이가 된 걸까? 방송에서 언급한 연락처를 보는 것까지만 좋았던 걸까? 혹시 불법 촬영 사실을 알고 “형, 이건 아니지!”라고 충고했다가 멀어졌나? 3월 23일 공개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승리 역시 대화창에 기록만 없을 뿐 직접 만났을 때는 “너 그러다 큰일난다”라며 정준영을 말리기도 했다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아, 정준영이 진작 친구들의 진심 어린 조언에 귀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21세기답게 사건 이후 대처와 반응은 SNS를 통해 재빠르게 이뤄졌다. 3월 11일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은퇴를 선언한 승리를 시작으로 ‘정준영과 사적으로 연락한 지 오래이며, 루머에 강경대응하겠다’는 입장을 1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표명한 지코, 11일에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는 글을 올렸던 용준형은 며칠 뒤인 14일 사죄의 글과 함께 하이라이트 탈퇴 의사를 밝혔다.(지코는 1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정준영과 사적으로 연락한 지 오래이며, 루머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용준형은 11일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는 글을 올린 뒤 14일에 사죄의 글과 함께 하이라이트 탈퇴 의사를 밝혔다.) 글에는 2016년 말부터는 정준영과 서로의 안부를 간간히 물어보는 정도의 관계만 유지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FT아일랜드의 최종훈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입장문을 올렸고, 씨앤블루의 이종현은 3월 15일 오전 모든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삭제했다. 각자가 올린 게시글의 무게와 고민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궁금하긴 하다. 언제부터 인스타그램이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곳이 됐는지, 이게 그들이 보일 수 있는 가장 책임감 있는 행동인 건지 말이다.

사건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이들도 마찬가지로 바빴다. ‘정준영과 승리를 언팔한 연예인 리스트’가 만들어졌고 누가 누구와 같이 찍은 사진을 삭제했는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글로벌한 인맥만큼이나 ‘손절'은 국경을 넘었다.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 운영자인 조쉬는 10년지기 친구, 정준영의 동영상을 자신의 채널에서 삭제했다. 언팔과 삭제 버튼을 누르는 것을 제외하면 남성 유명인들이 대체로 잠잠한 가운데, 몇몇 여성 연예인들은 사건에 대해 암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지난 13일, “너네들 자만이 타인을 희롱하는 즐거움에서 나오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호화를 그딴 식으로 누리냐 동료들을 상대로”라는 내용으로 올라온 장재인의 글은 비교적 명확하다. 반면 11일 설리가 셀피와 함께 올린 ‘내가 누누이 말했찌’라는 내용이나, 지코의 인스타 스토리가 올라온 13일, 태연이 ‘지랄지랄 지랄코랄’이라고 쓴 것에 대해서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만약 저격이라면 역대 ‘쇼미더머니’ 출연자들을 제치고 2019 최고의 스웨그 상은 태연의 것이 될 테지만!


10년째 잡지 피처 에디터로 일하며 꽤 많은 유명인들을 인터뷰했다. 기껏해야 한 시간, 암묵적인 선을 지키며 하는 대화를 통해 상대의 본질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인간적으로 호감 가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잘 안다. 미디어가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관련 의혹이 제기되는 젊은 남자 연예인들을 그간 어떤 방식으로 전시해 왔는지. 전시 방식 또한 다채롭다. 보기보다 생각 깊은 엔터테이너, 팬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인격자, 능력 있는 아티스트, 의외로 소소한 취미를 즐기는 건실한 청년……. 그래서 참담하다. 어떤 순간에는 분명 반짝였던, 젊고 유망해 보이던 20-30대 청년들의 문화가 결국은 한국식 룸살롱 문화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았다는 게. 서로가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보이며 연대의식을 공유하는 룸살롱 문화. 남성들의 결속을 위해 여성을 도구화하는 그 문화 말이다. 수많은 여성 스태프, 동료 여성들과 함께 일했고, 여성 팬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인지도를 쌓아온 이들에게 성 접대로 호출되거나 영상에 촬영된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연예인의 사업이면 이름과 얼굴만 빌려주는 줄 아는데 저는 직접 다 한다”라며 유능한 젊은 CEO 이미지를 내세우던 승리는 이제 “나는 일개 연예인일 뿐, 정치와 엮어 완전히 다른 프레임을 만드니 무섭다.”, “친구들끼리 허풍 떤 것”이라며 이제 막 OT에 다녀온 대학교 새내기처럼 군다. 아, “준영이는 명확한 증거가 있지만 나는 대화 내역 때문에 이미지 실추된 것”이라고 말했을 때는 노련미가 보이기도 했다. 그토록 찾고 외치던 ‘힙’과 ‘멋'은 커녕 사회 생활을 해온 성인 남자라고 보기 힘든 지질한 대처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말 끔찍한 건 진짜로 이들의 행동을 ‘치기 어린 장난’, ‘연예인이라 재수없이 걸린 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아닐까? 그래서 공항에서 머리채가 잡힌 정준영의 ‘입국 짤’을 보면서도 웃을 수가 없다. 현실의 비참함은 그 이상이며, 여전히 수많은 이들은 침묵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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