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시체 보러 가는 男, "늘 엔딩을 준비하는 삶이 중요"

머니투데이 이해진 기자 | 2019.03.27 17:00

[피플]법의학자 유성호 서울대의대 교수 "난, 누군가의 삶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카메오"

이달 25일 법의학자 유성호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과대학 연구실에서 인터뷰 했다./사진=홍봉진 기자
#. 모월 모일 월요일 아침 7시30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과대학 부검실에선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가 한 안타까운 주검을 마주했다.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아온 한 여성. 온 집안에 피를 토하며 숨을 거뒀다. 심장을 열어보니 여태껏 버틴 게 기적이라 할 만했다. 부검을 의뢰한 담당 형사는 고인이 며칠 전까지도 저축을 했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간절했던 하루를 머릿 속에 다시 그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메스를 든다.

유 교수는 매주 부검으로 한 주를 연다. 최근 펴낸 책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제목 그대로다. 우울한 한주의 시작 같다고 하자 "오히려 경건해진다"고 했다.

유 교수는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재구성하다보면 생전 삶을 상상해보기 마련"이라며 "생명의 소중함, 삶에 대한 애착이 커지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20여년 전 한국사회 상류층에 오르는 '티켓'인 의대 졸업장을 쥐고도 그는 비주류의 삶을 택했다. 임상의는 병을 고치면 '고맙다'는 말을 듣지만, 그가 마주하는 망자는 말이 없다. 사위를 걱정한 장모는 그에게 소금을 뿌려주시곤 했다고 한다.

이름과 주소까지 불린 뒤 법의학자로 법정 증인대에 설 때면 살인범의 형형한 눈길도 감내해야 한다. 억울한 죽음이 밝혀질 땐 비로소 보람차지만 유 교수는 "저는 어디까지나 그분들 엔딩에 등장하는 시민2, 카메오"라고 말했다.

물론 그가 엔딩을 바꾼 사례도 있다. 2014년 발생한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이 대표적이다. 군은 당초 식도에 음식물이 발견됐다며 질식사라 결론을 냈지만 유 교수는 외상성 쇼크사라는 의견을 냈다.


사람이 사망하면 원래 근육이 이완되며 위장에 있던 음식물이 역류하기도 한다. 식도에 음식물이 있어 질실사라는 주장을 뒤집었고, 결국 윤 일병이 폭행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 교수는 "그럴 때조차 저는 비중 있는 조연, 씬스틸러에 불과하다"며 수사기관에 공을 돌렸다. 유 교수는 "법의학자란 직업이 교만했던 우등생을 겸손한 인간으로 성숙시켜 줬다"며 웃었다.

법의학자로서 유 교수가 대중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죽음을 미리 준비하자는 것이다. 유 교수는 "내 인생 스토리는 스스로 종결할 수 있어야 한다"며 "대개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데 그렇기에 더욱 죽음을 두려운 일, 먼 일로 치부하지 말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위암 말기 통보를 받고 3년 전 미리 인세를 받았던 동시집 원고를 서둘러 완성한 소설가 이문구 선생을 예로 들었다.

유 교수는 "죽음 앞에 서늘할 정도로 이성적이었던 선생이야말로 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끝까지 챙기고 간 분"이라며 "품격 있는 죽음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부검이 끝난 후 혼자 맞는 점심시간이면 그는 늘 부검실에서 만났던 마지막 인연들에게 명복을 빈다. 그리고 자신의 삶도 되돌아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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