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2020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이하 편성지침)'을 의결했다. 편성지침은 기획재정부가 매년 각 부처에 보내는 '가이드라인'이다. 각 부처는 편성지침을 토대로 짠 이듬해 예산안을 5월 말까지 기재부에 제출해야 한다.
정부가 밝힌 내년 재정 운용 기조는 △경기 대응 △소득재분배 △혁신성장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경기 대응이다. 집권 후 편성지침을 세 번째 내놓은 문재인정부가 경기 대응을 강조한 적은 처음이다. 그만큼 경기가 가라앉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정부 내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편성지침은 '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렵다(21일 국회 대정부질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기 인식과도 맞닿아있다.
기재부는 대내외 경제 모두 불확실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수출 부진은 국내 경제를 발목 잡는 요인이다. 지난해 바닥을 긴 고용, 분배도 단기간 내 개선이 쉽지 않다고 봤다.
세계 경제는 예상보다 뒤처질 전망이다. 미-중 무역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중국의 경기 둔화 가능성 등은 세계 경제 하방 리스크다.
정부는 경기 대응을 위해 국민편의 증진 인프라에 중점 투자하겠다고 했다. 예시로는 생활밀착형 SOC(사회간접자본), 노후 SOC 안전투자, 신기술을 접목한 SOC를 언급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줄곧 이어진 SOC 예산 감축 기조가 반대로 돌아설지 주목된다.
정부 예산안 편성 시점을 기준으로 2018년도, 2019년도 SOC 예산은 각각 전년 대비 20%, 2.3% 줄었다. 안일환 기재부 예산실장은 "도로, 철도 등 전통적 의미의 SOC 투자를 대규모로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SOC 예산 증액 또는 감액 여부를 말할 단계는 아직이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편성지침 기조로 소득재분배를 제시했다. 2019년도 편성지침 기본방향이었던 소득주도성장을 대신했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계층 위주로 소득을 늘리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데 재정 우선순위를 둘 계획이다.
정부는 저소득층 소득 확충 방안으로 기초연금 확대, 기초생활보장 강화 등을 언급했다. 고령층이 빈곤 가구에 몰려 있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25만원씩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오는 4월부터 소득 하위 20%를 대상으로 30만원까지 오른다. 월 30만원씩 받는 기초연금 대상은 2021년 소득 하위 70%로 확대된다.
기초연금 대상을 기존 계획보다 더 빨리 확대할 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박준호 기재부 예산정책과장은 "소관 부처(보건복지부)가 제출하는 예산안을 보고 판단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실업부조 도입, 실업급여 보장성 강화, 직업훈련 혁신 등 일할 능력이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고용안전망도 두텁게 다지겠다고 했다.
다른 편성지침 기조 중 하나인 혁신성장은 문재인정부 집권 내내 강조된 개념이다. 정부는 4대 플랫폼 산업(수소·데이터·인공지능·5G) 등 신산업 육성, 주력산업·서비스업 신기술 발굴에 투자를 늘릴 예정이다.
정부는 미세먼지 예산도 확대할 방침이다. 노후경유차 폐차 지원, 수소차 등 친환경차 보급 확대, 중국과 공동 협력 추진 등 미세먼지를 줄이는 사업에 나랏돈을 쏟겠다고 했다.
정부는 재정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각 부처에 재량지출을 10% 이상 줄여달라고 했다. 성과 및 집행 부진 사업, 국회·감사원 지적 사업 등이 1차 칼질 대상이다. 재량지출은 정부가 정책 선호에 따라 줄이고 늘릴 수 있는 사업이다. 반면 복지예산이 다수인 의무지출은 정부 마음대로 깎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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