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혁신을 대하는 비혁신적 자세

머니투데이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 2019.03.25 04:30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경제(35회)였다. 집권 후 내리막길을 걷는 경제부문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였다. 경제 다음으로 많이 등장한 단어는 성장(29회)과 혁신(21회)이다. 모두 연장선에 있는 키워드지만 핵심은 혁신이다.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경제를 가꾸고 성장을 이루는 방법은 혁신에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역시 “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추격형 경제를 선도형 경제로 바꾸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새로운 시장을 이끄는 경제는 바로 혁신에서 나온다”며 “혁신으로 기존 산업을 부흥시키고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신산업을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모빌리티와 바이오업계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정부가 혁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산업 혁신의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고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하기는커녕 혁신기업간 갈등만 부추겨서다.

지난 7일 사회적 대타협기구의 카풀(승차공유) 합의안 발표 후 모빌리티업계는 택시업계와 갈등을 넘어 사실상 카카오와 반카카오 진영으로 갈라섰다. 사회적 대타협기구에 참여하지 못한 풀러스, 위모빌리티, 위츠모빌리티 등 카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은 이번 합의안이 “모빌리티 혁신생태계의 싹을 자르는 대기업(카카오)과 기득권(택시업계)끼리의 합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혁신성장의 실마리를 기대한 다른 공유경제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이번 카풀 합의안에 대해 “모빌리티계의 기해늑약 ”이라며 혀를 찼다. 소비자와 당사자(카풀 스타트업)를 무시한 정치적 합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아름다운 선례”라며 자화자찬에 바쁘다. ‘플랫폼기술은 자가용이 아닌 택시와 결합’ ‘평일 하루 4시간만 허용(출근 오전 7시~9시, 퇴근 오후 6시~8시)’ 등 옥상옥 합의안으로 손발을 묶어놓고 “카풀업계는 다양한 서비스 개발에 노력하길 바란다”는 궤변까지 늘어놓는다.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판에 4시간만으로 어떻게 혁신을 이루라는 말인가. 빠르게 변화하는 혁신생태계를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묻고 싶다.


바이오업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소비자직접의뢰(DTC) 유전자검사 ‘규제 샌드박스’ 선정 문제를 놓고 최근 유전자기업협의회(유기협)는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업계가 공동으로 보건복지부와 유전자검사 항목 규제완화를 협의하던 중 회장사이자 선두업체인 마크로젠이 지난 11일 단독으로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 샌드박스를 따내자 회원사들이 들고 일어난 것. 회장사가 업계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자리를 자기 이익에 활용했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일부에선 회장사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격앙된 반응까지 나왔다.

유기협의 내홍 역시 원인제공자는 정부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규제완화에 대한 복지부의 복지부동과 줄세우기식 규제 샌드박스 운영이 만든 ‘자중지란’이라는 것이다. 같은 물건을 파는 상인들에게 한쪽은 장사를 못 하게 막고, 다른 한쪽은 줄부터 세우니 특혜시비 등 문제가 터진다는 얘기다. 규제 샌드박스가 진짜 ‘혁신 놀이터’가 되려면 같은 영역의 플레이어 모두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기회가 공평하고 과정이 공정해야 혁신의 결과도 정의로울 것 아닌가.

혁신은 본질적으로 파괴적이다. 기존 기득권과의 갈등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그 갈등과 대면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조정·해결해야 한다. 지금처럼 갈등을 회피하거나 방관해서는 혁신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혁신성장을 위해선 혁신을 대하는 정부의 자세부터 혁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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