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경찰, 인권 수호자의 길에 나서다

머니투데이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 청장 | 2019.03.25 05:00
"여자들이 성폭행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매춘부'’처럼 옷을 입고 다니지 않아야 한다"

2011년 캐나다 한 대학의 성범죄 예방 교육 중에 한 경찰관이 던진 말이다. 범죄 원인을 피해여성에게 돌리는 발언에 많은 여성이 반발했다. 이후 노출이 심한 복장으로 길거리를 행진하는 전세계적 여성운동으로 번졌다. 전형적인 '피해자 탓하기' 관점이 만든 사건이다. 수많은 여성대상 범죄를 처리해야 하는 우리 경찰에게도 시사점이 크다.

경찰은 대표적인 법집행기관이자 '거리의 판사'로 불린다. 범죄와 사고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는 책무를 수행하고, 그 근본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

그런데 법집행 과정엔 물리력 행사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경찰은 국민의 일상에서 인권을 가장 확실하게 보호하는 주체인 동시에 언제라도 인권을 크게 제약할 수 있는 숙명을 안고 있다. 경찰은 늘 인권 보호와 침해의 경계선상에 서 있다.

사회 발전과 함께 인권의 새로운 영역들이 부각되며 경찰의 역할은 더욱 어려워졌다.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강력사건은 신속하고 철저히 수사해야 하지만 피의자 방어권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집회·시위의 자유만큼이나 시민의 평온한 일상 확보도 중요하다.

경찰에게 인권은 당연하고 익숙한 가치이면서도 어렵고 민감한 주제다. 그럼에도 이제 경찰은 인권을 법집행의 기본원리로 확립해야 한다.


"국가가 씨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어째 씨알이 국가를 위해 있다 하겠나"라는 함석헌 선생의 말처럼 정부와 경찰의 기본적 역할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을 오롯이 지켜내는 데 있다.

변화는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에서 시작한다. 지난해 경찰은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사과하고, 인권탄압의 장소였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꿔 시민에 돌려줬다. 1948년 내란 혐의로 군경에 연행돼 22일만에 사형을 선고받은 '여순사건' 민간인 사망자에 대한 재심 결정도 있었다.

지금 경찰은 인권영향평가제 도입, 체포·구속제도 및 조사·구금시설 개선 등 제도와 환경을 인권의 관점에서 재설계하고 있다. 꾸준한 교육과 함께 경찰 내부부터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 인권감수성을 높여갈 계획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가장 만족하는 분야로 치안을 꼽는다. 경찰로선 고마운 일이지만 그를 넘어 새 길로 나서야 한다. 수많은 시민에게 '경찰하면 인권, 인권하면 경찰'이라는 상징으로 보답하는 날을 간절히 그려본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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