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예술이 되고, 예술에서 사상을 엿본다. 현대무용이 지닌 이런 묵직한 정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쓸모없는 대중성 같지만, 때론 ‘나’의 존재를 되짚고 확인하는 불가피한 절차 같기도 하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새로운 시간의 축’이란 작품을 선보인 한국 현대무용 집단 LDP(Laboratory Dance Project)는 그 ‘행위’로 전 세계 찬사의 중심에 섰지만, 실은 그 ‘존재’만으로 한국 예술의 기술과 철학을 읽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한류 상품이다.
올해 창단 19주년을 맞은 LDP가 지금까지 선보인 작품 중 가장 공들인 작품을 ‘전설’의 안무가와 ‘신인 스타’ 안무가의 협연으로 준비하고 있다. 오는 4월 5~7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리는 ‘LDP 제19회 정기공연’이 그것.
이 무대를 책임지는 주인공은 LDP 제2대 대표를 지내고 15년 만에 LDP와 다시 손잡은 객원 안무가 정지윤(48)과 25세 때 서울국제무용콩쿠르에서 남자 부문 1위를 수상하고 ‘댄싱9’ 등에서 활약한 스타 현대무용수 윤나라(30)다.
한때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이들은 이번 무대에서 ‘안무가’라는 이름으로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은 작품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구현하는 가장 본질적인 사상, ‘정답이나 진실은 없다’를 화두로 내세웠다. 명확한 해답을 찾기보다 정(正)과 반(反)이 뒤섞인 상태에서의 의미나 느낌 그 자체에 집중하는 식이다.
정 안무가는 ‘사이<間>’를 작품명으로 내걸고 인간관계에서의 불완전성에 대해 얘기한다.
“지난 삶을 겪어보니, 변곡점이 많았던 인생이었어요.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있었다고 할까요? 늘 빈틈과 실수투성이였는데, 완성해 놓고 보면 그게 완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무너지기도 했고, 불안한 과정의 연속은 또 그 나름대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어요. 삶의 세계는 그렇게 ‘사이사이’가 모여서 이뤄진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죠.”
그의 안무는 균형을 잡기 위한 불균형의 움직임, 한 장면에서의 온전한 메시지보다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끊긴 필름의 연속성 등을 그린다.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 없는 것들 같은 ‘경계에 선 상황’이 내밀하게 전달되기도 한다.
윤 안무가가 선보이는 작품은 ‘녹녹’(Knock Knock). ‘문을 두드리다’는 의미로, 인간관계에 대한 정의를 되짚어보는 계기를 포착했다.
“그간 사람을 대할 때 ‘노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상대방의 ‘문’을 열려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 때문인데, 요즘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두드리고 기다리자’. 하나의 가상의 문을 만들어 열어줄 것인가, 닫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를 다뤄보고 싶었고, 열어주었을 때 보게 되는 앞모습과 보이지 않는 뒷모습은 또 무엇일까를 한 번쯤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안무를 지휘하면서 직접 무용수로도 나서는 그는 ‘움직임’을 최대한 살려, 개방과 폐쇄의 문에서 얻는 관계의 본질과 정의를 관객에게 묻는다.
정 안무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관계’와 ‘불안정’ 2개 키워드를 본다고 했다. 이 요소들을 ‘해결’하기보다 한 발짝 떨어져서 살피고, 이를 체화하며 동행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윤 안무가가 드러내는 키워드는 ‘집착’. 자신의 얘기를 관객에게 쉽게 설명하고 선명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밀어붙이는 경향이 크다.
“상대방에 대한 저의 욕심이나 욕망으로부터 편안하게 가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야 선명해지는 것 같거든요. 밟혀본 땅이 더 단단해진 느낌이라고 할까요?”(정지윤)
“예술가라면 남들이 보는 시선이 아니라, 자신이 보는 시선으로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제 작품엔 때론 자극적 요소가 개입될 수 있고, 주입하려는 억지성도 만날 수 있을 거예요.”(윤나라)
숨겨진 내면의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인지, 역동적 외향의 날카로운 메시지를 꽂을 것인지 스타일은 달라도, 두 사람이 정의하는 춤의 본질은 같다.
“육체성을 가지고 만드는 작업은 언제나 하나로 향해요. 가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죠. 진솔하게 다가서는 ‘몸짓’만이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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