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위헌 vs 합헌... 낙태죄, 7년 만의 결론은?

머니투데이 송민경 (변호사)기자, 백지수 기자, 정한결 기자, 배성민 기자, 이미호 기자, 오문영 인턴기자, 최민경 기자, 민승기 기자 | 2019.03.19 06:30

[낙태죄 위헌 vs. 합헌](종합)

편집자주 | '낙태죄의 위헌' 여부가 이르면 이달 늦어도 내달 헌법재판소에서 결정난다. 천주교계를 비롯한 낙태죄 폐지 반대론자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훼손하는 어떤 행위도 용인되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반면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재생산권 등을 위해 낙태죄는 폐지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측의 목소리를 담았다.



헌재, '낙태죄 위헌' 7년 고심 끝 결론은?


[낙태죄 위헌 vs. 합헌]① 헌법불합치 가능성 예전보다 커져

지난 9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린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촉구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낙태죄 위헌결정 촉구' 손피켓을 촬영하고 있다./사진=뉴스1

헌법재판소가 현재 심리 중인 ‘낙태죄 위헌’ 사건에 대해 이르면 이달, 늦어도 내달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예전보다 커졌다고 전망한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형법에 규정된 낙태죄 조항인 269조와 270조가 위헌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 중이다.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 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형법 270조 1항은 의사나 한의사 등이 동의를 얻어 낙태 시술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동의가 없었을 땐 징역 3년 이하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2년 낙태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판단했을 때는 8명의 재판관 가운데 절반인 4명이 위헌 의견을 냈지만 결국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려야 했다. 위헌 결정을 위해 필요한 6명의 재판관 숫자에 미치지 못해서다.

당시 헌재는 낙태죄와 관련 태아의 생명권 보호에 더 큰 무게를 두고 “낙태죄 조항으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위 조항을 통해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합헌 이유를 설명했다.


2012년에서 7년이 지난 지금 헌재는 낙태죄 위헌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까. 2017년 2월 산부인과 의사 A씨가 69회에 걸쳐 낙태수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후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 이번 낙태죄 위헌 판단의 계기다.

헌재의 선고는 더는 미룰 수 없다. 지난해 5월 공개변론까지 열려 이른 시일 내에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던 낙태죄 사건은 결국 해를 넘겼다. 다음 달엔 서기석·조용호 등 두 헌법재판관 임기가 끝난다. 조 재판관은 헌재 공개변론 주심까지 맡은 터다. 재판관이 교체되면 사건 내용 파악과 평의 등 시간이 걸려 또 그만큼 선고가 늦어질 수 있어 이들의 임기가 끝나기 전인 내달 중으로는 선고가 내려질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현재의 낙태죄 규정은 사실상 사문화돼 유명무실하다는 이유로 실효성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며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현행법상 낙태죄 처벌 대상은 '엄마'와 '의사' 뿐이며 '아빠'는 처벌되지 않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종교계 등에선 낙태죄가 폐지될 경우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태아의 생명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정부의 입장은 어떨까. 지난 공개변론에선 여성가족부가 “낙태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지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고 법무부는 합헌 의견을 펼쳤다. 2017년 11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명 이상이 참여하자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도 ‘관련 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등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급기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지난 15일 위헌 의견으로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 당시 재판관들은 모두 물러났다. 새로운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임 재판관들 중 일부는 이미 인사청문회에서 낙태죄 폐지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기 위한 6인이라는 숫자를 모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헌재가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낙태죄'와 같이 국민들의 관심 대상으로 논란이 돼 왔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 헌재는 이미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법불합치란 어떤 조항이 위헌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특정 시점까지는 유효하다고 판단하는 결정이다. 위헌을 선고해 어떤 조항이 바로 효력이 없어진다면 사회적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다. 그 시점 이후로 개정되지 않으면 바로 효력을 잃는다.

낙태죄를 규정한 조항이 헌재의 위헌 결정에 따라 바로 효력이 없어지면 당장 현장에서는 낙태가 허용된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또 형벌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은 ‘소급효’가 있어 기존에 처벌을 받은 이들도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점도 헌재 입장에선 부담이다.

만약 헌재가 시점을 특정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다면 국회는 낙태죄 조항을 헌재 결정의 취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조항을 판단하며 헌재가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과 관련해 이미 국회는 대체복무제 관련 입법을 해야 하는 처지다. 낙태죄 조항도 국회가 개정에 나서게 될지 헌재의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

송민경(변호사) 기자



“낳기 싫어도 지우진 말라"던 국회…어떤 답 낳을까


[낙태죄 위헌 vs. 합헌]②법학 전문가들 "임신 12주 이내 여성 자기결정권 인정해야"

2019년 기준 세계 낙태법 지도. 초록색이 독일·프랑스 등 특정 기간 이내 임부 요청만 있으면 조건 없이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다. 노란색은 일본 등 사회·경제적 이유까지 낙태 사유로 인정하는 국가다. 우리나라는 임부나 태아 등의 건강상 문제 등 제한적인 이유로만 낙태를 할 수 있는 주황색 국가다. /사진=비영리단체 'Center for Reproductive Rigts'가 만든 '세계 낙태법 지도(World Abortion Laws)' 캡처

'낙태'를 형사처벌하는 것이 현실과 괴리됐단 지적이 잇따른다. 형법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가까워 온 가운데 사회적 논의를 할 '민의의 전당' 국회는 잠잠하다.

전문가들은 낙태죄 폐지 여부나 헌재 결정과 관계없이 임신 12주 이내 여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인정하는 법 개정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1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문민정부가 들어선 14대 국회(1992~1996)부터 가장 최근인 20대 국회까지 낙태 범위를 구체화하거나 낙태죄 처벌 논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법안은 10건에 불과했다.

이 법안들은 주로 17대와 18대 국회에서 발의됐는데 회기 중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모두 임기만료 폐기됐다. 17대 국회 이전이나 최근인 19~20대 국회에서 낙태 범위에 대한 논의는 전무했다.

17~18대 국회에서 나온 법안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낙태에 대한 처벌 자체는 인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형법 낙태죄 조항은 그대로 두고 그 예외를 규정한 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낙태 규제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임신한 여성 입장에선 "낳아 키울 형편이 안 돼도 일단 낳으라"고 볼 수 있던 것이 17~18대 국회에서 주된 시각이었다.


장애인의 출산권 보장 명목으로 낙태 허용 범위에서 장애인을 제외하는 법안이 대표적이다. 낙태를 위해 의료진의 상담과 다각적 소견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법안도 낙태 규제 강화법이었다. 의료진 등 전문가 소견이 있어도 임부 건강상 문제는 임신 20주 이내, 성범죄에 의한 임신은 9주 이내에만 낙태를 허용한 법안도 있었다.

국회가 현실과 괴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아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8대 국회 때 홍일표 한나라당 의원(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낙태죄 예외 사유에 '임신 12주 이내'에 한해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 중절을 추가했다. 사회·경제적 이유로도 낙태가 가능한 일본과 비슷한 방향이다.

대신 낙태 허용 기간을 태아의 골격 형성 전인 임신 12주 이전으로 제한했다. 미성년자는 친권자나 후견인 동의하에 낙태할 수 있게 한 조항도 추가했다.

낙태 금지를 강제하는 대신 비혼 출산을 유도한 법안도 있었다. 18대 국회 때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낙태방지 및 출산지원에 관한 법안'을 제출했다. 임신한 여성에게 '희망출산제도'를 통해 해산(출산)급여 등 경제적 지원부터 심지어 입양까지 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이후 국회 논의는 끊겼다. 하지만 국회 안팎의 법 개정 요구는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23만여명이 낙태죄 폐지에 서명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5월 발간한 보고서 '낙태죄에 대한 외국 입법례와 시사점'에서 "강력한 낙태 규제가 위험한 방법으로 낙태하도록 내모는 형국"이라며 "기본권 보장 관점에서 태아의 생명권도 중요하지만 임부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에 대한 배려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입법조사처는 임신 12주 이전 낙태는 처벌 않는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안전한 낙태를 위해 상담제도를 활성화하는 등 낙태 절차를 구체화하거나 낙태 장소나 시술자 등을 상세히 규정해 길을 여는 것이 여성 건강권에 더 도움될 것이라고도 제안했다.

법학자들도 '임신 12주'에 주목했다. 낙태 형사처벌 여부에는 입장이 갈렸지만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낙태죄 유지를 주장한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들도 낙태죄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면서도 "의료계가 말하는 태아 골격 형성 이전인 '12주'까지는 형사 처벌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도 "임신 12주까지는 태아 생명권보다 임부의 결정권이 더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낙태로 처벌하는 것은 폐지해야 한다"면서도 "대신 모자보건법에 태아 성장 시기별로 구체적인 낙태 시술 요건과 절차에 대한 규정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지수 기자



전 세계 낙태죄 현황은? 낙태권도 '남북 격차'


[낙태죄 위헌 vs. 합헌]③유럽·북미, 낙태 허용…아프리카·남미·아시아, 금지 및 제한


북반구 선진국과 남반구 개발도상국 사이의 경제적·정치적 격차를 의미하는 '남북 격차'가 낙태권 보장 여부에도 적용되고 있다. 주로 북반구 국가들이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가운데 남반구 국가들은 낙태를 전면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총 66개국이 가장 엄격한 낙태법을 적용하고 있다. 브라질, 탄자니아 등 주로 남미·아프리카·동남아 일대의 개발도상국 국가들이다. 이들은 낙태를 전면 금지하거나 산모의 생명이 위태한 경우에만 허용한다. 그러나 비영리단체 생식권리센터(CRR)은 "이론적으로 낙태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낙태죄 형사재판 시) 승소한 사례가 적어 사실상 권리행사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칠레, 몰타,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등은 그 어떠한 예외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산모의 생명이 위태하거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을 때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들도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산모의 건강'을 신체적 건강으로 규정하고 있어 낙태가 대부분의 경우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산모의 정신적인 건강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들 역시 대부분이 남미·아프리카·아시아 일대에 속한 국가들이다. 한국, 뉴질랜드, 짐바브웨, 모나코 등 총 59개국이 해당된다.

반면, 영국·일본·핀란드 등 총 13개국은 산모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진단해 낙태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 사실상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하는 국가들로, 산모의 신체적·정신적 건강뿐만 아니라 산모의 나이·경제적 지위·혼인 여부 등을 고려한다.

낙태를 법적으로 전면 허용하며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61개국에 달한다. 주로 유럽·북미 등 북반구의 선진국들이다. 특히 미국,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낙태 금지를 위헌으로 보고 여성의 낙태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주로 착상 후 12주 이내의 낙태는 전면 허용한다. 스페인·오스트리아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태아가 독자적 생존 능력을 갖춘 것으로 해석되는 12주 이후에도 산모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문제가 우려되거나 태아에게 치료불가능한 병이 발견될 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전 세계 낙태죄 현황. 1.초록색: 낙태 전면 허용, 2. 상아색: 산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진단, 조건 충족시 허용 3. 주황색: 산모 생명 및 건강 위험시 허용 4. 빨간색: 전면 금지 또는 산모 생명 위험시 허용<br><br>/사진=생식권리센터(CRR) 홈페이지 갈무리.<br>

정한결 기자



'태아도 생명' 천주교 낙태반대 굳건…여성은 보호


[낙태죄 위헌 vs. 합헌]④염수정 추기경 '태아는 어머니와 독립된 개별인격'…16일 생명대행진 집회도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낙태죄 폐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16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생명대행진코리아 주최 '낙태죄 유지를 위한 청년생명대회'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발언하고 있다. 2019.3.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천주교 등은 낙태죄 폐지를 일관되게 반대하고 있다. ‘태아도 생명’이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염수정 추기경의 국회 강론과 종교단체가 대거 참석하는 집회 등을 통해 일관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만 낙태 후 고통받는 여성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거두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에 대해서는 낙태의 합법화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며 경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신춘미사에서 "인간의 생명성이 가진 존엄성은 다수의 의견으로,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다른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고귀한 가치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낙태죄 폐지 반대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변함없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또 “태아의 생명은 어머니의 생명과는 독립된 개별 인격이며, 태아도 우리와 동일한 생명권을 누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천주교계는 낙태죄 폐지 반대와 더불어 사형제 폐지도 함께 주장하며 신자 의원들에게 생명존중과 국민의 행복을 위한 의정활동에 나서 줄 것을 당부했다.

입법부에 대한 의견 제시와 더불어 낙태죄 관련 의견 제시를 위해 시민들과의 접촉도 늘리고 있다. 지난 16일 생명대행진 코리아 조직위원회(조직위) 주최로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집회가 대표적이다.

집회에 참석한 염수정 추기경은 "인간은 그 자체로 거룩한 존재로 첫 순간부터 인격적 존재로서 고귀하고 존엄하다"며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언제나 극히 부도덕한 행위이며 그 어떤 권위도 이를 합법적으로 권장하거나 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낙태는 갓 생명을 시작한 무고한 아기를 직접적으로 죽이는 일”이라며 "잉태된 생명을 여성과 남성 모두의 동일한 책임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의 책임으로 여김으로써 건강한 출산과 양육을 돕는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효 천주교 주교회의 가정과생명위원회 위원장은 "태아는 산모와는 별개로 존중받아야 할 귀중한 생명"이라며 "태아의 의지와 무관하게 가해지는 낙태는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천주교에서는 최근 사용되고 있는 ‘낙태 반대! 낙태로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자비!’라는 구호가 낙태를 허용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은 오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낙태를 포기하고 생명을 선택한 미혼모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낙태 후 고통받는 여성들에게도 그 손길을 거두지 않지만 낙태죄 위헌 선고와는 별개라는 것.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형법 개정 등을 통한 낙태 합법화가 여성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는 믿음은 ‘잘못된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는 게 천주교 쪽의 일관된 입장이다.

배성민 기자



낙태는 범죄? 달라진 분위기 여성계 "이번에는 바꿔야“


[낙태죄 위헌 vs. 합헌]⑤여성만 처벌 대상으로 하는 낙태죄는 바꿔야 주장...국민감정·여론 완전히 배제못해

세계 여성의 날인3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 반대 기자회견과 낙태죄 위헌 기자회견이 동시에 열리고 있는 모습/뉴스1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합헌 결정이 났던 7년 전과 달리 최근 사회적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미투운동에서 촉발된 여권 권익 신장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헌재 결론에 영향을 미칠 여러 가지 요소 중 최근 정부가 실시한 실태조사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청와대는 23만명이 지지한 '낙태죄 폐지' 청원에 8년만에 실태조사를 재개했다. 입법권은 없지만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관련 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킨 셈이다.

보건복지부 의뢰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월 14일 발표한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75.4%가 낙태죄 처벌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개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3.8%에 불과했다.

개정 이유를 보면 '여성만 처벌하기 때문에'란 응답이 66.2%(복수 응답)로 가장 높았고, 이어 '여성 건강권을 침해해서'라는 응답이 65.5%, '자녀 출산 여부는 기본적으로 개인 선택'이라는 응답이 62.5%를 차지했다.

낙태 폐지가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인 데다 폐지를 찬성하는 쪽이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헌재가 심리과정에서 국민 감정과 여론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15일 헌재에 '낙태는 위헌'이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공식 제출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달 25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낙태한 여성을 형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내기로 하고, 이를 실행했다. 인권위가 낙태와 관련해 의견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합헌을 고집했던 법무부에서도 미묘한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 낙태죄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기본 입장엔 변함이 없지만, 허용범위에 대해서는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6월 청와대 방문 당시 "모자보건법 허용기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엔 헌재 판결을 앞두고 UN 등 국제기구나 국제엠네스티 등에서 법무부를 꾸준히 방문해 낙태와 관련한 세계적인 추세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선진국들도 여성들이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헌법상 낙태를 금지했던 아일랜드가 낙태를 금지한 수정헌법 8조를 개정키로 하는 등 국제적인 추세도 낙태죄 폐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미호 기자, 오문영 인턴기자



낙태죄 판결…과거 헌재와 현 재판관 발언 비교해보니


[낙태죄 위헌 vs. 합헌]⑥신임 헌재 재판관 낙태죄 관련 인사청문회 발언도 주목…'위헌', '헌법불합치' 나오나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2018년 9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모습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심판을 앞두고 지난 2012년 결정 당시 재판관 의견과 신임 헌재 재판관들의 청문회 발언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헌재는 2012년 8월 낙태죄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4 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김종대·민형기·박한철·이정미 재판관은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성장 상태와 관계없이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고 자기결정권의 제한이 생명권 보호보다 중하다고 볼 수 없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반면 이강국·이동흡·목영준·송두환 재판관은 "일정 시점까지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또 이강국 전 헌재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은 "임신 초기 12주까지의 태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독자적 생존능력도 없다"며 "임신기간에 따라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나 위헌 정족수 6명을 채우지 못해 합헌이 유지됐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에 대한 여성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재판관 6명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임 6명 중 인사청문회 등에서 낙태죄에 대해 '위헌'이라거나 바뀔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현직 재판관은 세 명이다. 유남석 헌재소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낙태죄 처벌에 대해 "임신 초기 중절은 전문가들 상담을 거쳐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이은애 재판관 역시 "현재의 낙태 허용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고 말했다. 이영진 재판관도 "입법 정책적으로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는 외국 법 등을 참조해 국민 의사를 모아 결정해야 한다"며 위헌 입장에 섰다.

이석태, 김기영 재판관은 청문회에서 특별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으나 진보성향으로 분류된다. 여성 재판관 2명이 이번 헌법소원 심판 결정을 내린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헌재 내부의 변화와 낙태죄 폐지 여론에 힘입어 헌재가 해당 조항에 수정을 권고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확률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2012년 낙태죄 심판 당시 '진보성향'으로 분류됐던 재판관들 다수가 합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성향'만으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헌재 관계자는 "재판부에서 낙태죄에 관해 심리를 중점적으로 해왔고 국민들의 관심이 많은 사건이라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민경 기자



산부인과 의사들 "산모 건강권도 중요..낙태죄 폐지해야“


[낙태죄 위헌 vs. 합헌]⑦낙태 허용범위, 의료 현실 반영 못해…의사 처벌규정 삭제도 요구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여부 결정을 앞두고 의료계는 '낙태죄를 폐지하고, 낙태수술 허용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은 존중하지만 임산부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여성 건강권 역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형법을 통해 낙태수술을 금지·처벌하고 있다. 모자보건법에서는 일부 허용사유를 규정하고 있지만 △강간이나 준강간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이나 친족 간의 임신 △임산부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 등으로 제한했다.

이를 두고 의료계는 "실제 의료현장을 반영하지 못한 규정"이라고 지적한다. 모자보건법상 허용되는 사유로 진행되는 낙태수술은 실제 의료현장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충훈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출생 후 생존이 힘든 심각한 질병이나 선천성 기형아라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임신중절이 허용되지 않는다"며 "임산부는 정신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수술을 해 줄 병원을 찾아 헤매느라 이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낙태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1000명당 낙태율은 4.8%로 한해 낙태 건수는 5만여건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의료계는 대부분 낙태수술이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이보다 최소 10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들은 연간 60만~70만건 이상의 낙태수술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했다.

이 회장은 "최근 발표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낙태를 하게 된 주된 이유 대부분이 사회·경제적 사유"라며 "피치 못할 사정에 놓여 있는 임산부를 의료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산부인과 의사뿐이다. 위법인 줄 알면서도 수술을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낙태죄가 계속 존치되거나 강화될 경우 오히려 원정 낙태 등 사회적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낙태수술 의사 처벌 규정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그동안 국내에서 낙태죄는 사문화된 것으로 여겼다. 낙태수술 혐의로 기소돼 처벌받는 건수는 연간 10여건에 불과하고, 재판을 받아도 대부분 선고유예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정부가 형법 제270조를 들어 낙태수술한 의사의 면허자격을 정지하는 행정처분규칙을 공포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일부 산부인과 의사단체는 낙태수술을 전면 거부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부인과 개원의는 "현행법을 적용하면 대부분의 산부인과 의사가 범죄자인 셈"이라며 "불법 낙태수술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의사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대부분은 낙태를 허용하고 미국, 영국은 1970년대인 50년 전 낙태 허용 후 의사를 처벌하지 않는다"며 "낙태 허용 여부를 떠나 선의로 행한 의사의 의료행위를 처벌하려고 하는 전근대적인 사고와 규정은 하루빨리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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