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목(同想異目)]행동주의 펀드의 흥행코드

머니투데이 이진우 더벨 편집국장 | 2019.03.06 04:32
16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역대 한국영화 매출 1위의 흥행신화를 써내려가는 ‘극한직업’. ‘수원 왕갈비 통닭’이란 기발한 소재와 “매 신(scene) 웃기겠다는 각오로 임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흥행코드는 단연 ‘코믹’이다. 그 흔한 신파 없이 ‘웃음’에 충실하면서 과장된 몸짓과 음악까지 섞어 관객의 눈치를 살핀다. 그러면서도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 다 목숨 걸고 일한다”는 대사에선 자영업을 하는 이웃·친척이 오버랩되고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유행어를 낳은 주인공에게선 후배에게 치이고 실적에 목매는 고단한 조직생활의 흔적이 묻어나온다.
 
전문가들 역시 팍팍한 현실 속에 시원한 웃음으로 현실을 잊게 해주는 것이 흥행의 가장 큰 비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겨울방학 및 설 명절이란 시기적 절묘함, 경쟁작의 부재, 대형 배급사의 막강한 영향력 등의 ‘기계적’ 요인 분석도 뒤따른다. 일반 대중의 반응도 엇비슷하다.
 
그런데 “정치색이 배제된, 이념적 덧칠이 없는 영화여서 편하게 즐겼다”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스크린에 걸린 국내 영화 중엔 일제·분단(냉전)·군부 및 과거 정권 등 유독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한, 피아(彼我)가 분명한 무거운 주제가 생각보다 많았다. 지금 영화로 다시 보니 ‘진짜 나쁜 놈(세력)이었구나’란 생각이 들게 하는.
 
이런 영화들은 대중에게 ‘팩트체크’의 강박감을 주고 어떤 현상이나 세력을 없어져야 할 구시대적 유물로 생각하게 만든다. 요즘처럼 이념, 정치적으로 양분화한 사회에서는 ‘적폐’를 가리는 도구로도 쓰인다. 팩트와 영화적 요소가 적절히 가미된 ‘청산 대상’을 등장시킨다. 그 자체가 피곤하고 스트레스다. 내편, 네편이 갈라져 팩트도 해석도 제각각이다. 정치, 언론, 법조계에 이르기까지 같은 현상, 판단, 결과를 놓고도 들이대는 잣대가 첨예하게 갈린다.

 
재계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그 연장선에 놓인 지 오래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둘러싼 논란, 주주행동주의 펀드의 등장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극단을 달린다. 왜 한진그룹을 첫 타깃으로 삼았을까. 주주권을 행사하면서 ‘국민’의 이름까지 빌려야 했을까. 주주를 위해서일까, 펀드 투자자를 위해서일까. 주주권 행사가 기업엔 절대악(惡)이고, 일반주주와 국민들에게는 절대선(善)일까. 꼬리를 무는 의문점마다 해석도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오너일가의 갑질논란으로 온 국민의 미움을 받는 한진그룹은 흥행 요소가 충분하다. 흥행성을 지녔으니 홍보 효과는 크지만 앞서 말한 시대적 요소가 배경에 깔리고 정치·이념적 색깔이 덧씌워지면 관객들에게 피로감을 준다. 내편, 네편이 갈라지는 순간 당초 생산적 의도, 논의는 사라지고 상흔만 남는다. ‘기업가치 제고와 주가부양’이란 본연의 역할이 부각돼야 하는데 이미 정치·사회적으로 ‘기업 길들이기, 경영권 빼앗기’ 등의 논란이 제기되는 순간 위험성이 커진다.
 
그 와중에 만에 하나 적폐청산 대열에 동참하거나 동원된다는 오해라도 산다면, 이해상충·도덕성 논란에 휘말리거나 공격과 방어의 논리가 궁색하다면 당초 취지는 퇴색된다. 경영참여냐 경영간섭이냐는 논란이 격화하고 관전자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행동주의 펀드의 ‘행동’이 사실상 본격화한 올 주총시즌, 흥행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기(氣)싸움을 관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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