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떼 1000마리'로 시작한 대북 사업, 현대그룹 20년 아픔과 좌절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 2019.03.06 06:40

[소프트 랜딩]현대그룹과 대북 사업의 굴곡진 역사

편집자주 |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지난달 28일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베트남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리자 그동안 남북 경협의 대표주로 주목받았던 현대엘리베이터 주가가 하루 만에 18.5%나 급락했다.

대북 제재의 일환으로 지난 10여년간 중단된 금강산 관광 사업과 2016년 폐쇄된 개성공단 개발사업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재개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누구보다도 당혹스럽고 난처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현대그룹은 남북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민간기업으로서 과감하게 남북 경협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앞장서 추진했던 선구자적인 기업이다. 그러나 20여년전 남북 통일의 열망과 함께 야심차게 추진했던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은 안타깝게도 명맥이 거의 끊어진 상태다.

1998년 1천여 마리의 소떼 방북으로 북한으로 가는 길을 개척했던 故정주영 회장은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공단 사업 등을 전담하는 조직으로 (주)현대아산을 창립했다. 당시 현대아산은 1000억원의 초기 자본금을 시작으로 현대상선(지분 40.0%, 출자금액 1800억원)을 대주주로 한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등 8개 현대그룹 계열사들로부터 2000년까지 5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총자본금 4500억원을 확보했다.

그런데 현대아산의 대북 투자 규모는 총 14억 달러(금강산 사업권 대가 4억9000만 달러, 금강산 관광시설 투자 3억8000만 달러, 7대 SOC 독점 사업권 대가 5억 달러, 개성공업지구 투자 3300만 달러 등)에 달했다. 당시 현대아산의 자본금 4500억원에 비하면 거의 3배가 넘는 금액을 과감히 대북 투자에 쏟아 부은 셈이다.

이러한 과감한 대북 투자로 현대아산은 ‘경제협력사업권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함으로써 전력 및 통신사업, 철도사업, 통천비행장 건설, 임진강 댐, 금강산 수자원 사업, 백두산·묘향산·칠보산 등 명승지 관광사업 등 30년간 북한 7대 SOC사업개발에 대한 독점권을 보유하게 됐다.

그런데 이렇게 공들인 대북 사업이었건만 현대그룹은 수많은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을 이어 고(故) 정몽헌 회장이 대북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두지휘했지만 지속된 적자 누적으로 그룹 자금난이 심화되고 결정적으로 대북송금 비리 사건에 휘말린 끝에 타계하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그룹의 사령탑을 잃은 현대그룹은 지금의 현정은 회장 체제로 서둘러 전환하면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현대그룹은 IMF 외환위기와 '왕자의 난'을 거치고 결국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그룹과 계열 분리가 되면서 축소됐고, 이후 현 회장은 시부들과의 지난한 경영권 싸움에 시달려야 했다.

한편 초기 해상로를 통한 크루즈 관광으로 적자만 누적됐던 금강산 관광 사업은 2003년에 육로 관광이 개시되면서 관광객이 급격히 증가했고, 2007년 관광객은 연간 35만명, 누적 기준으로 200여만명에 이르면서 당시 매출액이 연간 2500억원을 넘었고 적자에서 벗어나 196억원 흑자를 달성할 수 있었다.

게다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개성관광도 시작되고, 이어서 현정은 회장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백두산 관광 사업 합의서를 체결함으로써 대북 사업의 결실을 맺는 듯 했다.


그러나 2008년 7월 북한군의 관광객 총격 사건으로 성업 중이던 금강간 관광은 즉각 중단되고 말았다. 현정은 회장은 2009년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하고 금강산관광 재개 등 5개항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남북 관계가 꼬이면서 결국 사업 재개를 이루지 못했다.

특히 현대그룹은 중단된 대북 사업 재개를 위해 관료 및 친정부 인사를 적극 영입하는 노력을 펼쳤다. 현대그룹은 2008년 이례적으로 통일부 관료 출신인 조건식 차관을 현대아산 사장으로 영입하는가 하면 2010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학 동기인 장경작 당시 롯데그룹 호텔부문 총괄사장을 사장으로 영입했다. 2018년 영입된 배국환 현 대표이사 역시 전 기획재정부 2차관으로 관료 출신이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각고의 노력에도 금강산 관광은 재개되지 못했고, 주력사업을 상실한 현대아산은 소규모 국내 건설, 유통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수차례에 걸친 고통스런 구조조정을 거쳐야 했다. 수년간 남북 경협 사업에 헌신해 온 전문 인력들은 현직을 떠났고 한때 1000여명이었던 임직원은 현재 150여명으로 축소됐다. 그리고 2011년부터 이미 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가 누적 매출 손실액만 약 1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래 현대아산의 최대주주는 현대상선이었다. 하지만 2013년부터 시작된 해운업 장기불황으로 현대상선마저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현대그룹은 현대택배, 현대증권에 이어 현대상선까지 채권단에 넘기면서 결국 자산규모 2조원 대의 중견그룹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게 됐고, 현대상선이 보유했던 현대아산 지분도 전량 현대엘리베이터에 매각했다.

대북 사업의 주체인 현대아산은 비상장주식회사다. 그래서 요즘도 간혹 게시판을 보면 현대아산의 대주주가 현대상선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대아산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최대주주는 현대엘리베이터(보유지분 69.67%)며, 따라서 남북경협 재개시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되는 소위 ‘대장주’로 지목된다.

실제로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4월 1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후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해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 13만6500원으로 최고가를 경신한 바 있다. 그러나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협상이 결렬되면서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도 연일 곤두박질쳐 4일 기준 9만200원 수준까지 하락한 상태다.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정부는 제재의 틀 안에서 미국과의 협의 하에 남북 경협 재개를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으로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고, 하원 의회의 다수를 차지한 민주당이 강경한 대북 정책을 요구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남북 경협의 재개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아 보인다.

돌이켜 보면 대북 사업은 현대그룹에 지난 20여년간 사실상 아픔과 좌절만 가져다 주었다. 대북 사업이 다시 희망으로 변할 때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 지 모를 일이다.

베스트 클릭

  1. 1 "유영재, 선우은숙 친언니 성폭행 직전까지"…증거도 제출
  2. 2 '선우은숙 이혼' 유영재, 노사연 허리 감싸더니…'나쁜 손' 재조명
  3. 3 장윤정♥도경완, 3년 만 70억 차익…'나인원한남' 120억에 팔아
  4. 4 갑자기 '쾅', 피 냄새 진동…"대리기사가 로드킬"
  5. 5 예약 환자만 1900명…"진료 안 해" 분당서울대 교수 4명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