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종업원 35살·야구선수 40살·술집마담 50살…직업마다 다른 '가동연한'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 2019.02.24 16:24

일할 수 있는 나이기준 편차 커…"같은 직종에서도 상이할 수 있어"

지난 21일 대법원은 늘어난 평균수명과 은퇴연령 등을 고려해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60세가 아닌 65세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이 가동연한을 65세로 상향하면서 육체노동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올린 1989년 대법 판례 이후 30년 만에 조정이 이뤄지게 됐다. / 사진제공=뉴스1

'사람이 일할 수 있는 나이'를 의미하는 '가동연한' 기준이 대법원에서 새로 나왔다. 가동연한은 항상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건 아니다. 당사자의 직업이나 건강상태 등의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기준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수영장 익사사고로 사고 당시 4세 아이를 잃은 박모씨가 수영장 운영업체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사망 아동이 65세까지 일할 수 있다는 전제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원심은 이 아동이 60세까지 일할 수 있다는 전제로 손해배상액을 판단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뒤집은 것이다. '가동연한=60세'라는 기준은 1989년 이후 약 30년간 유지돼 왔었다.

이번에 새로 설정된 65세라는 가동연한 기준은 사망한 아동이 나중에 커서 일반 육체노동자로 일한다는 전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손해배상액 산정을 위해서는 △이 아동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택했을 직업에서 얻을 연평균 수입에 △실제 일할 수 있는 기간(가동연한까지의 잔여년수) 등을 곱해야 하는데 어떤 일을 택할지 불확실하니 판단을 위한 기준으로 일단 '육체노동자'를 택한 것이다. 가동연한은 손해배상액 산정을 위한 직종이 확정된 후에 적용되는 문제다.

대법원이 인정한 가동연한은 직업별로 천차만별이다. 1991년 5월 대법원은 다방 종업원으로 근무하다가 사고 차량에 동승해 사망한 피해자의 사건에서 "35세가 될 때까지는 다방종업원으로서, 그 이후에는 도시일용 노동 종사자로서의 수익을 기초로 한 원심의 조치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방종업원으로서의 가동연한은 35세까지'라는 기준이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

같은 해 대법원은 프로야구 투수였던 원고의 손해배상 사건에서 가동연한을 40세까지로 인정했다. 1979년 11월에는 속칭 '가오마담'이라고 불리는 룸살롱 술집의 마담의 가동연한이 50세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이외에도 대법원은 △공무원에 준하는 처우를 받은 민간 보육교사 57세(2001년) △콘크리트 펌프카 조수 60세(1996년) △송전공 60세(1999년) △간호 조무사 60세(1999년) △보험모집인 60세(2009년) △약사 65세(2009년) △의사 65세(1996년) △한의사·치과의사 65세(1997년) △교회 목사 70세(1997년) 등의 기준을 세워왔다.


가동연한은 불변의 확정적 기준인 것은 아니다. 법원은 개개 사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얼마의 연한을 인정할지를 정해왔다. 1997년 3월 대법원은 사고 당시 54세였던 농업종사자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농촌노동자의 고령화 추세, 당사자의 사고 당시 경작 상태 등 사정을 고려해 60세가 아닌 63세의 가동연한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반면 1997년 12월에는 52세 농업인이 사고로 사망한 사건에서 실제 농업인구가 고령화되고 있는 추세 뿐 아니라 피해자가 농한기에는 건설현장에서 근무할 정도로 건강했다는 점 등의 사정을 들어 가동연한을 65세로 봐야 한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같은 직종이라도 개인에 적용되는 가동연한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2016년에는 중국요리집 주인이 알코올성 질환으로 수차 입원치료를 받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가동연한을 60세 밑으로 내려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2008년에는 중증 장애인으로서 기대여명이 비장애인에 비해 60% 수준인 당사자에게 가동연한을 줄여야 한다는 판결이 있었다.

법무법인 바른의 박윤정 변호사는 "가동연한은 개개 사건에 적용되는 하나의 기준점이라는 의미가 있을 뿐"이라며 "절대적인 법적 효과를 가지는 기준이라고 볼 수 없다. 경험칙상 얼마까지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개략의 기준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법원이 상황에 따라 가동연한을 다르게 판단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사고 피해자가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자료 등을 제출해서 법원을 설득할 수 있다면 손해배상액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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