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통상임금 판결, 쟁점된 ‘신의칙’이란 뭘까

머니투데이 송민경 (변호사) 기자 | 2019.02.22 16:31

[the L] 2013년 대법 전합 판결 이후 사측의 주장으로 자주 사용

강상호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 지부장이 22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아차 근로자 2만70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이 회사에 청구한 1조원대 미지급수당 청구소송 항소심에서도 법원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기업의 재정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수당을 요구하는 게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위반이 아니라는 1심 판단도 그대로 유지됐다.

서울고법 민사1부(부장판사 윤승은)는 기아자동차 근로자 가모씨 등 2만74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기아자동차가 근로자들에게 미지급수당 3125억원(원금 기준)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사측의 주장으로 등장하는 신의칙이란 본래 민법의 추상적 대원칙 가운데 하나다. 어떤 사람이 권리나 의무를 행사할 때 신의를 지켜서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지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해 추가 임금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 추가 임금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신의칙'에 따라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 사건에서도 원래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것이 맞는다면 당연히 법적으로 그 권리가 소멸하지 않은 범위(시효) 안에서 청구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새로운 법리를 내놨다. 사측이 신의칙이라는 대원칙을 주장한다면 법원이 이를 판단해 추가 임금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법리가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신의칙은 본래 제대로 된 법리에 따라 근거를 댈 수 없는 판결에 대한 형식적 근거로 많이 사용돼 왔다. 일반적인 원칙으로 거의 모든 사건에서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다. 변론 중 변호사들이 신의칙을 근거로 들면 다른 판례나 법리를 생각해내지 못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대법원은 사측이 갑작스러운 추가 임금 지급을 위해 많은 돈을 사용하다 부도가 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회사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이런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굳이 신의칙을 끌어와 부족한 근거를 채운 셈이다.

‘통상임금 신의칙’ 법리를 처음 세웠던 판결이 나온 후 구체적으로 신의칙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와 관련해 많은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지난 14일 대법원은 인천 시영운수 사건에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므로 추가 법정수당을 달라는 노동자들의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신의칙을 신중·엄격하게 판단해 적용하라”면서 해당 회사가 △영업이익이 흑자인지 △당기순이익이 발생하고 있는지 △매출액이 증가하고 있는지 △사업이 안정적인지 등을 고려하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은 제시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이번 판결에서도 서울고법은 대법원 법리를 근거로 들어 "제1심 판결을 기초로 피고 회사가 추산한 미지급 법정수당의 규모에 따르더라도 피고 회사의 당기순이익, 매출액, 동원 가능한 자금의 규모(부채비율, 유동비율), 보유하는 현금과 금융상품의 정도, 기업의 계속성과 수익성에 비춰 볼 때 근로자들의 청구로 피고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판단하며 사측의 신의칙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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