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데이 앳 어 타임’은 1970~80년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시트콤을 리메이크했다. 그러나 중심인물을 백인 가족에서 라틴계 가족으로 바꾸면서 원작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심지어 이 시리즈의 시대적 배경은 현재, 그러니까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다. 시즌 2에서 가족들은 알렉스가 모르는 이들로부터 “벽을 쌓아라”, “너희 나라로 돌아가” 같은 인종차별 발언을 들었음을 알게 되고, 엘레나는 “그 누구신가가 라틴계 전체를 강간범이나 범죄자로 낙인찍고부터 다들 인종차별적 발언을 거침없이 한다.”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땅에서 이민자 또는 라틴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이들은 각자 지나온 시대적 배경과 개인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경험을 한다. 리디아의 마음속에는 몇십 년 전 처음 미국으로 왔을 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었던 기억이 여전히 응어리져 있다. 딸 엘레나는 다문화 쿼터제가 세련된 형태의 차별은 아닌지 고민하지만, 엄마 페넬로페는 비백인 인종으로서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은 누려야 한다고 당연히 믿는다. ‘원데이 앳 어 타임’은 가족이며 같은 인종임에도 인종차별 이슈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으며, 그 안에도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라틴계라는 정체성이 이들의 삶을 압도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리디아와 페넬로페, 엘레나는 여성으로서도 각기 다른 가치관과 견해를 갖고 있으며, 이는 엘레나의 ‘킨세녜라(쿠바 전통 성년식)’ 사건을 통해 첫 번째 시즌부터 명확하게 드러난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쿠바 사회에서 자란 할머니 리디아는 여성이 화장하거나 남성에게 사랑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고, 킨세녜라 역시 여자라면 기쁘게 맞이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페넬로페는 킨세녜라가 성차별적 요소를 품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엄마로서 딸의 성년식을 성대하게 열어주고 싶어 한다. 페미니스트인 엘레나는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라고 공표하는 킨세녜라를 지금 이 시대에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 한다. 이 밖에도 미투 이슈, 종교 문제, 싱글맘의 재혼, 우울증 등 아주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 문제일 수많은 사건 속에서 인물들의 입장은 끊임없이 교차하고, 이들은 서로 대화하며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간다. 그동안 작품은 하나의 카테고리로 뭉뚱그려지던 각기 다른 인간들의 삶이 특정한 이슈 앞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용히 관찰한다.
한 명의 인간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자신의 배경과 위치에 따라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이 다르고, 그렇기에 삶은 언제나 복잡하다. 이것은 다양한 여성과 다양한 인종,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이 미디어에 훨씬 더 많이 등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데이 앳 어 타임’은 그동안 미디어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비백인 여성들을 통해 삶의 복잡성을 피하지 않고 담아내며, 그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더 나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했다. 엘레나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의 아빠는 세 번째 시즌의 마지막화에 이르러 진심으로 엘레나의 용서를 구한다. 페넬로페에게 필요한 건 남편이라고 말했던 리디아는 페넬로페가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 딸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가족들의 응원을 동력 삼은 페넬로페는 그토록 원하던 임상 간호사가 된다. 비슷한 정체성을 공유한 사람이나 심지어 가족이라 하더라도 나와 타인은 절대 같은 사람일 수 없다. 결국 서로의 비슷함과 차이점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타인이 그 자신으로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일만이 필요할 것이다. ‘원데이 앳 어 타임’의 주제곡 가사이자 첫 화 제목처럼, “이게 삶”이므로.
글. 황효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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