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종이학은 구미시를 구원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2019.02.21 04:47
종이학을 접어보셨나요?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원할 때 종이학을 접어서 유리병에 넣어놓곤 했습니다. 색색가지 수십, 수백개의 종이학이 빼곡하게 들어차있는 유리병은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에 대한 간절함의 상징이었습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종이학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구미시 이야기입니다.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라인을 유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린이들은 종이학을 접고 어른들은 얼음물을 뒤집어씁니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메카로까지 불리던 구미시의 시민들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구미시는 많이 어렵습니다. 한때 3교대 인력으로 밤낮없이 돌아가던 산업단지는 주요 기업들의 국내·외 이전으로 이제는 썰렁해졌습니다. 구미시는 인구 42만명, 평균 연령 37세, 30대 이하 인구가 총인구의 55%에 이르는 젊고 역동적인 도시지만 실업률은 2018년 8월 5.2%로 전국 4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 십 년간 활력과 성장을 체험했기 때문에 구미시민들이 체감하는 지금의 어려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구미시는 SK하이닉스 유치를 위해 100만㎥ 공장용지 무상임대를 포함한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효과가 있을까요? 불행히도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반도체 산업은 거대한 시설과 첨단 장비도 중요하지만 반도체를 연구, 설계, 양산하는 인력이 더 중요한 산업입니다. 이런 고급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업계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력들을 확보하기 위한 절대 조건이 있습니다.

‘수도권’에 사업장이 있어야 하고 이왕이면 서울 안에서 근무할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단순히 급여가 높다고 지방근무를 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회사가 결정하면 묵묵히 가족과 이별하고 임지로 부임하는 그런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이 생기면 회사에 사표를 내고, 급여가 더 적더라도 서울과 수도권의 다른 직장을 찾게 됩니다. 시대와 세대가 달라졌습니다.

눈을 밖으로 돌려보아도 전 세계 대부분에서 사람들은 대도시로 몰리고 있습니다. 탄탄한 중소기업이 잘 발달해있고 중소규모의 도시들이 중심이 됐던 독일마저 최근에는 청년들은 마이스터로 대표되는 기능인력으로서의 삶 보다는 대학진학과 대도시 거주를 선호하면서 주요 도시의 주택가격과 임대료가 폭등했습니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고학력 인적자본의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새로운 아이디어의 발상과 확산을 가능하게 하는 대도시의 복잡성과 연결망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면접촉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더 대도시로 몰리고 있습니다. 기업 역시 이러한 추세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그동안 지역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많은 정책을 집행해 왔습니다. 지역특화산업육성, 스마트특성화기반구축사업 등 일일이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많은 사업을 진행해왔고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산업육성을 위한 정책과 사업들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활동하는 공간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일자리가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는 전제는 이제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미시가 가지고 있는 산업중심지로서의 경험, 좋은 인프라, 젊은 인구 구조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요소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도록 변화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청년과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해주며, 공감할 수 있는 규칙과 규정에 따른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그런 지역과 공간을 만들어내도록 노력한다면 어린이들이 더 이상 기업유치를 위해 종이학을 접지 않아도, 지금의 어린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구미를 찾는 기업과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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