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빚탕감은 포퓰리즘일까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 2019.02.20 04:45

과잉대출과 빌려준 자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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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산위기에 처한 기업은 채권단(또는 법원)의 채무조정을 거친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빚은 탕감하고 만기는 연장, 이자는 깎아준다. 채무조정이 가능한 이유는 기업을 죽이는 것보다 가능하면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나는 빠지겠다”며 채무조정을 거부하는 금융기관은 ‘이기적’이라고 욕을 먹는다. “금융기관의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기업대출에는 적용되는 ‘빌려준 자의 책임’이 유독 개인의 채무재조정에선 잘 작동하지 않는다. ‘안 갚는(사실은 못 갚는) 자의 도덕적 해이’가 부각된다. 지난 18일 정부가 개인채무조정제도 개선안을 발표한 뒤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의 재조정이란 취지보다 ‘빚 탕감’에 초점을 맞춰 “잘 갚는 사람만 바보” “안 갚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 조장”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포퓰리즘’이란 지적도 나온다. 신용평가를 잘못했거나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내준 ‘빌려준 자의 책임’은 거론하지 않는다. 하지만 ‘빌려준 자의 책임’을 묻지 않으면 금융기관의 과잉대출을 통제하기 어렵다. 제조업체가 제품을 더 많이 팔아야 돈을 벌 듯 금융기관은 대출을 많이 해야 한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줘야 이익이 늘어난다. 그래서 금융기관은 태생적으로 과잉대출의 유혹에 놓여있다. 중고차 대출을 하면서 신차 가격까지 한도를 늘려 대출해주는 게 우리 금융기관의 현실이다.

 빚 탕감을 더 많이 해주면 안 갚고 버티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10년 지나면 탕감해준다는데 9년 버틴 사람이 ‘1년만 더’라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잘못 빌려줬다간 최대 90% 탕감해줘야 하니 금융기관은 대출심사를 더 깐깐하게 할 것이다. 돈 빌리기 힘들어졌다는 얘기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허술하게 심사해서 감당할 수 없는 대출을 내주는 게 비정상이다.


 고금리를 부과하거나 무자비한 추심만이 ‘약탈적 대출’이 아니다.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넘어선 과잉대출도 ‘약탈적 대출’의 하나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과잉대출’을 법으로 금지했다. 우리는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일정 비율을 넘는 대출이 부실화돼 채무재조정을 할 경우 은행이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했다. 담보주택의 가치가 대출금액보다 낮아지면 은행이 책임지는 비소구대출도 도입했다. 모두 ‘빌려준 자의 책임’을 제도화시킨 사례들이다. 한국경제의 ‘잠재적 뇌관’이라는 가계부채의 이면엔 ‘과잉대출’ 문제가 있다. 가계부채를 경고하면서 과잉대출한 금융기관의 책임은 왜 자꾸 잊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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