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없는 기자, '육아' 해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19.02.09 06:10

"내가", "아니", "싫어" 병(病)에 걸린 4살, 6살 아이들 돌보니…'엄마' 생각이 났다

편집자주 |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매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늦은 저녁, 주환이(왼쪽, 6살)와 혜령이(4살, 오른쪽)에게, 잠들기 전 책을 읽어줬다. 엄마·아빠에게 "왜왜"하며 속상해하던 아이가,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훌륭한 내용이었다. 아이들이 이리 집중하고 있는 줄 몰랐다. 왠지 아빠 같은 느낌이 든다(개인적인 생각). 아이들 프라이버시를 위해 얼굴을 가렸다. 둘다 정말 사랑스럽다./사진=주환, 혜령 엄마 전모씨
"여기서 아이들과 올라가시겠어요?"


주환이(6살, 가명)·혜령이(4살, 가명) 엄마 전모씨(37)의 말이, '쿵' 하고 심장을 울렸다. 이제 그에게 의지하던 시간도 끝이었다. 어린이 영화 '헬로O봇'을 보러 한 영화관에 가는 길. 기자가 오롯이 두 아이들을 챙겨 영화를 보고, 저녁 식사를 해야했다. "주환아, 삼촌 잘 도와드려. 혜령이 안 잃어버리게 잘하고!" 지하주차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전씨는 영화관 인근에 있을테니, 급하면 SOS(긴급구호신호)를 치라 했다. 그 말이 어찌나 힘이 되던지.

대형 쇼핑몰 인파 속에 뛰어들자, 신경이 곤두섰다. 두 아이의 고사리 손을 꽉 쥐었다. "에스컬레타(에스컬레이터) 타구 갈래요!" 혜령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이들과 함께 탔다. "조심조심, 노란 선 안에 있어야 돼요. 위험해."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당부했다. 혜령이는 "우와아, 올라간다"하며 신나했다. 그러더니 별안간 "앗, 뜨거워"하고 외쳤다. 놀라서 쳐다보니, 손을 유리에 대고 있었다. "거기 만지면 안돼, 손손손, 손 조심하세요"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영화관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왼손을 잡은 주환이는 빨리 가겠다고 끌고, 오른손을 잡은 혜령이는 아장아장 발걸음이 더뎠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다, 주르륵 흘렀다. 5층에 있는 영화관에 겨우 갔더니, 15관(영화 보는 상영관)은 8층이란다. 절망했다. 땀이 찬 오른손이 더운지, 주환이가 손을 자꾸 뺐다. 그리고 물었다. "삼촌은 왜 땀이 많아요?" "그러게, 삼촌은 원래 땀이 많아, 하하." 그랬더니 이 녀석, 이렇게 말했다. "선풍기가 있어야겠어!(고맙다ㅠ)"


영화관에 겨우 도착해 티켓에 있는 좌석 번호를 봤다. 07, 08, 09라 표기돼 있었다. 어느 줄에 있는 7, 8, 9번 좌석인지 당황했다. 아이들에게 "잠깐만 앉아 있어봐" 한 뒤, 부랴부랴 전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숫자 0(영)이 아니라, 영어 O(오)란다. O(오)열에 있는 좌석이었다. 부끄러웠다. '약간 정신이 나가 있구나' 싶었다.
대형 쇼핑몰에서 혜령이의 자그마한 손을 꼭 붙잡고 걸었다. '잃어 버리면 절대 안된다'는 생각에 오감(五感)이 곤두섰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위쪽은 주환이의 귀여운 똥배, 기자와 닮았다./사진=남형도 기자 왼손

'육아의 참맛'을 보고 있었다. 물론 내 아이들은 아녔다. 결혼한 지 만 4년이 돼 가지만, 아직 애가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내랑 둘이 있어도 행복했다. 자유롭게 여행 다니고, 맛집 가고, 즐기는 게 더 좋았다. 친구들 육아 경험담은 묵직하게 가슴을 눌렀다. 누구는 아내와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광해(2012년작)'라 했고, 또 누구는 잠을 못 잤다며 눈이 퀭했다. '아이 낳기 무섭다'는 맘이 컸다. 그래서 차일피일 생각을 계속 미뤘었다. 양가(家) 모두 아이를 낳으란 압박은 안했다. 엄마는 오히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애 안 낳는다"고 했다.(그럼 저는요..)

새해가 되고, 더는 미룰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낳느냐, 마느냐. 어떤 쪽이든 결단이 필요했다. 아이가 없는 삶은 충분히 맛 봤으니, 이젠 육아를 체험해봤으면 했다. 기껏해야 조카들이랑 놀아본 게 전부여서, 온전한 하루가 궁금했다. 그리고 또 하나, 육아의 힘듦을 알고 싶기도 했다. 퇴근도 없고, 고군분투해도 '0원의 노동력'으로 치부되는, 엄마들의 현실을. 그 불안과 고단함과 외로움에 대해. 그러면 아이를 안 낳아 걱정이라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첨엔 홀로 육아를 해보고 싶었으나, 부모 입장에서 불안함이 큰 듯 했다. 당연히 이해가 갔다. 그래서 섭외가 난항이었다. 다행히 나이가 동갑인, 전씨 부부에게 허락을 얻어 주환이·혜령이를 돌보게 됐다. 1월 마지막 날인 31일, 6살 주환이(아들)와 4살 혜령이(딸)와 하루를 같이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이 잠을 깨는 아침 7시30분부터 잠드는 밤 9시40분까지 함께 했다. 대부분 시간은 엄마 전씨의 도움을 받고, 4시간은 기자 홀로 육아를 해봤다.



4살·6살에겐 3가지 병(病)이 있다…"내가"·"아니"·"싫어"




혜령이(위)와 주환이(아래)가 아침밥을 냠냠하고 있다. 기자는 옆에 앉아서 친한척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하루 전날,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아이들 모습이 담긴 전씨의 SNS 링크였다. 들어가보니, '뚱시'랑 '뚱슈니'란 애칭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다. 아내가 부르는 애칭이 '뚱이' 인지라(TMI), 무언가 공감대가 느껴졌다. 다양한 사진 중, '뚱슈니' 혜령이 사진 하나를 봤다. 4가지 버전의, 울고 떼쓰는 모습이었다. 분명 사진인데도, 포효하는 듯 했다. '만병의 근원'이란 해시태그도 달려 있었다. 말만 그렇지, 전씨 SNS엔 온통 애들 사진 뿐이었다. 엄마의 애정과 고통이 함께 느껴졌다.

아침 7시30분, 애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이쯤 일어난다고 했다. 연락하면 지하주차장을 열어준다 했는데, 지상 아무데나 세웠다. 아침이라 한창 바쁠 시간, 애가 없어도 그 정도 짐작은 갔다. 도착하니 현관문 앞 노란색 뽀로O 자전거가 있었다. 이 집이구나 싶었다.

전씨 부부는 이미 깨 있었다. 집안에 들어서자, 색색의 매트 위 장난감들이 나뒹구는 게 보였다. 순간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래져서 쳐다봤다. "삼촌이 오늘 하루 잘 봐주실거야"라고 전씨가 소개했다. 보라색 땡땡이 옷을 입은 혜령이와 감색 옷을 입은 주환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호기심에 빤히 보면서도, 말을 쉬이 하진 못했다. 아직 친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아침 죽을 먹고 있는 아이들 곁에 앉아 이런 저런 말을 건넸다.

전씨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들이 울까 노심초사했다. "애들이 다행히 안 운다"며 "삼촌이 맘에 드는 모양"이라고 했다. 부부는 맞벌이였다. 워킹맘이라고 했다. 전씨 남편 고향은 전남 순천, 전씨 친정 엄마는 일 하고 있어 육아를 도와줄 이도 마땅히 없었다. 그래서 아내가 주로 '독박 육아'를 했다.
주환이가 화장실서 양치질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주환이 아빠가 어떻게 하는지 알려줬다. 붕 뜬 뒷머리를 깜빡하자, 주환이가 "뒷머리도 만져주세요" 했다(기특)./사진=남형도 기자

'미운 4살부터 막무가내 8살까지'란 책이 있던가. 지금 아이들이 딱 그 시기라 했다. 3가지 병(病)을 앓고 있단다. 이름하여 "내가", "아니", "싫어" 병이다. 말문이 트이고, 자립심이 생기면서, 뭔 말을 해도 "싫어", "아니", "내가 할 거야"라 한다는 것. 그래서 환장한단다.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아침밥을 다 먹은 혜령이에게 "물 마실거야?"하고 묻자 "아뇨" 하더니, "안 마실거야?" 하니까 "마실 거에요" 했다. 향후 고난이 예상됐다.

첫 임무는 쉬웠다. 애들 치아 닦아주고 세수 시켜주기. 주환이부터 노란색 키높이 계단에 올랐다. 주황색 칫솔을 들고, 치약을 묻혀 치아 구석구석을 치카치카 닦아줬다. 손바닥보다 훨씬 작은 얼굴에도 구석구석 물을 묻혔다. 시원하게 닦아주면서 "잘생겼네"하며 점수를 땄다. 붕 뜬 머리도 만져줬다. 혜령이는 좀 더 작은 칫솔로 치아를 닦아줬다. "다 닦였어?" "응!" 보글보글 물을 뱉고 화장실을 나왔다. 근데 세수를 까먹었다. 전씨가 "눈곱이 있네"해서 그때 딱 걸렸다. 초보 티가 팍팍 났다.



'불안'과 '씨름'의 연속…아침이 이리 길 줄은




'내 눈높이에 있는 건 다 만질거야' 약국에서 비타민을 만지작. 호기심 많은 혜령이는 '미운 4살'이다. 이들에게 호되게 당한 몇몇 엄마들은 '미친 4살'이라고도 한다./사진=남형도 기자

주환이는 축농증, 혜령인 귀에 염증이 있어 병원에 들렀다가, 각각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간다고 했다. 병원 얘기에 긴장하려 하자, 전씨가 재빨리 "오늘은 주사 맞는 거 아니야"라고 안심시켰다. 아이들은 안심한듯 "주사 안 맞아, 주사 안 맞아"하는 대답이 이어졌다. 엄마는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역시 노련했다.

'시선'이 아이들에게 묶였다. 옷을 입히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며 여실히 느꼈다. 이미 평범한 길이 아녔다, 애들과 함께 하니. 어디로 튈 지 몰랐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간 뒤, 혜령이가 종종 걸음으로 앞을 향해 달려갔다. 순간 놀라서 쫓아갔다. 다행히 차가 없었지만, 혹시라도 있었다면 아찔할 뻔 했다. 한눈을 파는 것도, 사실은 홀가분한 자유였단 걸 그 때 처음 느꼈다. 홀로, 스마트폰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런 게 허용되지 않았다. 뭔가를 하면서도, 아이를 봐야 한다는 것. 소홀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책임이란 것. 그런 무게감이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매순간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잘 타이르듯 얘기해도, 쉬 따르지 않았다. 애들이라 원하는대로 안되는 게 당연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부터, 서로 "내가 버튼을 누르겠다"며 떼를 썼다. 오빠인 주환이가 당연히 빨랐고, 먼저 눌렀다. 그러자 혜령이가 목소릴 높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혜령이를 번쩍 들어 다른 버튼을 누르게 해줬다. 병원에서 나와, 약국에 가선 눈높이에 놓인 비타민을 사겠다고 졸랐다. 전씨가 "집에 있잖아"라고 해도 어림 없었다. 비타민을 사주자, 혜령이가 "이걸로, 저걸로 바꿀래"하며 3번을 바꿨다. "한 번 사면 못 바꾸는거야"라고 일러도, 소용 없었다. 전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일"이라 했다.

그리고 갑자기 드라마 'SKY캐슬'에서 봤던 명대사가 생각났다. "신이 자식을 준 이유는, 네 맘대로 되는 게 없단 걸 알려주기 위함이다"라고. 가끔 길에서 애들을 따끔히 혼내는 부모를 본 적이 있었다. 저렇게까지 엄히 해야하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근데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때도 있는 거였다. 경험한 만큼, 아는 만큼 보이는 거였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유치원에 보낸 뒤에야 한숨을 돌렸다. 시계를 보니, 아침 9시30분쯤. 아이들과 만난 지 불과 2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아침이 무척 길었다. 별로 도움된 것도 없었는데도. 평소엔 이 모든 일을, 엄마 홀로 출근하기 전에 모두 마친다고 했다. 그리고 또 일하러 가는 거였다.



공짜책 얻기…육아는 '비용'도 많이 드는 일




아이들이 떠난 뒤 집 거실 광경. 치워도, 아이들이 오면 도로 똑같은 상태가 된다./사진= 당황한 남형도 기자

전씨는 갈 곳이 있다고 했다. 아는 엄마에게 책을 얻으러 간단다. 이미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의 '나눔'이라 했다. 유아용 그림책, 동화책, 지능발달 놀이교구 등이었다. 전씨는 "돈 주고 사려면 꽤 비싸다"고 했다. 도착하니 커다란 박스 대여섯개가 놓여 있었다. 꽤 묵직한 걸 여러번 날랐다. 전씨가 "마침 오늘 기자님이 와서 다행"이라며 "고생할 뻔 했다"고 했다. 책을 주는 이는 "애 낳으면 다른 것 없고, 돈 잘 벌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 역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참이라, 사교육비가 꽤 든단다.

그랬다. 잠시 육아에서 간과한 게 있었으니, '비용'이었다. 주환이와 혜령이도,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라 그나마 낫단다. 그래도 전씨는 아들 주환이를 위해 자연체험학습, 축구·미술 등을 가르치느라 드는 사교육비가 만만찮다고 했다. 아들이 4살 때까지 강릉에서 살다가, 서울로 왔는데, 환경이 바뀐 탓인지 스트레스가 심했다. 원형 탈모까지 왔었단다. 그래서 이것저것 배우게 했는데, 나아지는 걸 보니 또 못 그만두겠다고. 혜령이도 미술과 자연체험학습을 시킨다고 했다.

전씨 남편 말론 "애 키우는 게 힘들어, 둘다 열심히 벌어야 한다"고 했다. 잘 키우려고 애쓰는 일이, 외려 아이들과 멀어지게 했다. 그 역시 몇 년 전까진, 당직까지 있어 밤낮 없이 일터에 꼼짝 없이 묶여 있었다. 출산 휴가는 커녕, 쓸 수 있는 연차조차 못 썼단다. 지금도 밤 9시에서 10시는 돼야 집에 온다. 전씨는 "자기 자식인데 아빠라고 보고 싶지 않겠냐. 집에서 일터가 5분 거리인데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워킹맘에, 독박 육아까지 치이면서도, 전씨는 남편에게 고맙다고 했다. 애써줘서 그래도 풍족한 육아를 할 수 있는 거라며.

얻어온 귀한 책 박스를, 낑낑 옮겨서 방 한 켠에 내려놓았다. 애들이 떠난 집엔 적막이 감돌았다. 전씨는 정형외과에 다녀 온다고 했다. 엄지 손가락 부위를 보여주며, "여기 힘이 잘 안 들어가고 아프다"고 했다. 육아 후유증인듯 했다.
아이들 방을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남기자. 겨울인데 반팔을 입고 있어, 좀 모자라 보이지만 사실 애들을 위해 25도로 맞춰져 있어 더웠다./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기자는 그새 할 일이 있었다. 욕실에 미끄럼방지 매트를 깔아야 했다. 이사온 지 얼마 안된 집이라, 아직 안 깔려 있었다. 애들이 다칠까 우려돼서 였을터, "걱정말고 맘 편히 다녀오라"고 했다. 주환이와 혜령이가 양치하던 생각이 나서, 매트를 빈틈 없이 꼼꼼히 깔았다. 남는 부분은 가위로 잘랐다. 다 쓴 가위는 가위집에 바로 넣었다. 평소에 없던 습관이었다. 다 깐 뒤엔 장난감 등으로 난장판이 된 집 청소를 했다. 곳곳에 먼지가 보여, 꼼꼼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로 닦았다. 25도로 난방이 맞춰진 탓인지, 땀이 흘렀다. 아이가 없다고, 할 일이 끝난 게 아녔다.



짜장면 먹으며 들은, '엄마 이야기'



짜장면을 먹으며, '엄마의 삶'에 대해 인터뷰했다. 곱배기를 시킬 걸 후회했다. 사진을 보니, 또 먹고 싶다./사진=배고픈 남기자

집안 청소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전씨가 간짜장 한 그릇을 쏜다고 했다. "곱배기 드시겠냐"해서, "살 빼고 있어 그냥 짜장면 먹겠다"고 했다. 젓가락질 몇 번에 다 없어져서, 나중에 후회했다. 평소엔 점심도 잘 안 챙겨 먹는단다. 한 그릇을 시키긴 애매하고 해서, 보통 애들이 아침에 남긴 밥을 먹는다고.

그러면서 전씨 이야길 들었다. '엄마로 사는 삶'이란 뭔지. "혼자 뭔가 결정해야 하고, 이 선택이 괜찮을까 고민하는 게 싶은"게 가장 힘들었단다. 항상 불안하고 맘 졸이는 삶, 짧은 시간이나마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육아에서 가장 편한 날은 어제"란 명언(名言)도 들려줬다. 죽을만큼 힘들었더니, 더 힘든 게 기다리고 있다고.

힘듦의 종류도 시기별로 다르다 했다. 갓난아기 땐 잠 못 자고, 모유 수유를 계속 해야하고, 왜 우는지 모르겠고, 새 가족이 돼 가며 맞춰가는 과정이 힘들고. 기어 다니면 서투르게 하다 다칠까봐, 이유식 시작하면 알러지 올라올까봐, 지금은 자아가 폭발하는 나이라 힘들다고. 100일의 기적이란 말이 있는데, 그때까지 키우면 육아를 내려놓고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라 그렇단다. "하루 종일 울고 토해도, 한 번 웃으면 다 까먹는다"며 "미운데 싫지는 않다. 항상 사랑한다"던 그는 이미 훌륭한 엄마였다.

그래도, 정말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그런 게 아녔다. 이런 것들이었다. 전씨가 10대 때 좋아하던 H.O.T 콘서트에 가고 싶었는데 표를 못 구해 전전긍긍하다, 친구가 구해줘서 다녀왔다는 것.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는 것. 엄마들끼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먹는 게 소원이라 한다는 것(애가 다칠까봐 어릴 땐 아이스만 먹는다고). 동창회에 간 지도 한참돼서 이 인터뷰로 인해, 남자 사람하고 얘기하는 게 무척 오랜만이라는 것. 그가 좋아하는 음악은, 차에서 늘 듣는 만화 노래는 아니란 것. 사회 초년생 땐 직장서 빠릿빠릿하단 소리만 들었는데, 지금은 죄송하단 말만 달고 산다는 것. 아이가 자면, 음량을 1로 하고서라도 SKY캐슬을 맥주 한 잔과 함께 본단 것.
"주환아 어서와" 블러 처리를 했지만, 유치원 버스서 내리며, 삼촌을 보고 웃고 있는 주환이./사진=남형도 기자

엄마이기 이전에 내가 있었고, 육아 때문에 잊거나 참을 뿐이었다. 그때, 누군가 생각이 났다. 하고픈 게 그렇게 많았는데, 육아 때문에 인생 느지막이 뒤로 다 미룬 사람. 60대가 다 돼서야 해볼랬더니, 이제는 무릎이 말썽이라며 쓴 웃음을 짓는 사람. 지금도 집에 갔다가 헤어질 때면, "차 조심하라"며 어릴 때와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 짜장면이 불어서인지, 한꺼번에 들어가서인지, 괜히 목이 멨다.



홀로 애들 돌보기…"왜 그럴까, 어떡하지" 당황만




로봇 영화를 개봉날에 맞춰서 본 건, 한정판 칩을 얻기 위해서였다. 결국 얻어낸 뒤, 기념 사진까지 찍었다. 개인적으론 사자 로봇이 내 취향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오후 4시, 아이들이 유치원·어린이집서 돌아올 시간이었다. 주환이가 유치원 버스서 내렸다. 아침에 봐서 기억한다고, "삼촌!"하며 반가워 했다. 주환이 손을 잡고, 혜령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갔다. 현관 문이 열리자,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빠 왔네" 하고 오해해서, 전씨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기자에게 "결혼 하셨느냐, 20대 같다"고 했다(감사합니다).

애들이 반가워한 순간에, 사실 걱정이 밀려왔다. 저녁에 대형 쇼핑몰서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전씨는 함께 안 간다고 했다. 든든한 지원자가 빠지고, 홀로 애들을 돌본다 생각하니, 맘이 조마조마했다. '아롱이 경력 17년, 똘이 경력 5년(둘다 강아지)' 뿐이라서. 그래도 '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굳게 맘을 먹었다.

정말, 맘처럼 되는 게 거의 없었다. 그리고 말과 행동들이, 뭣 때문인지 헤아리기 힘들었다.

가기 전까지 로봇 만화 영화를 보고 싶다고 신나하던 혜령이는, 막상 상영이 시작되자 180도 달라졌다. 집중해서 잘 보는듯 하더니, 30분 만에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일어섰다가, 앞 좌석에 기댔다가, 눕듯이 기댔다가, 옆 좌석으로 가서 오빠가 보는 걸 막기도 했다. 앉혀 놓으면 계속해서 그걸 반복했다. 앞 좌석 사이에 놓인 팝콘에 손을 뻗어, 먹으려하기도 했다. 그러다 영 못 견디겠는지, 바깥으로 나가겠다고 졸랐다. 어떻게 달래도 소용 없었다. "재미 없어?"하고 물으니 "응, 집에 갈래"라고 했다. 영화 보는 1시간30분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주환이는 정말 재밌게 보고 있어서, 중간에 나올 수도 없었다. '이 영화가 언제 끝날까', 그 생각만 했다. 기억에 남는 영화 대사는 "대중 교통의 힘을 보여주마" 밖에 없었다. 영화는 악당을 다 물리쳐야 끝나는데, 끝날듯 끝날듯 안 끝났다. 겨우 끝나는가 했더니, 마지막에 로봇들끼리 최종 합체를 했다. 겨우 물리치고 끝나는가 싶더니, 이번엔 뜬금 없이 가위바위보 노래를 불렀다. 혜령이와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버텼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영화가 끝나니, 마치 내가 악당들과 싸운 기분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목 말라요"해서 카페에 갔더니 "케이크 사주세요"하고 졸랐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전씨에게 전화했더니 "밥 먹기 전엔 사주면 안된다"고 따끔하게 얘기했다. 그래서 갈비탕을 먹으러 가는데, 혜령이가 "안아줘요"하며 안겼다. 혜령이를 두 손으로 안았더니, 주환이가 자꾸 한눈을 팔아서 불안하게 했다. 별 수 없이 혜령이를 한 손에 안고, 다른 한 손으론 주환이를 잡았다. 그 와중에 로봇 만화 영화를 보면 주는 칩을 받으러 갔다. 한정판이라서 꼭 받아야 된단다. 어딘지 몰라 한참 헤매다가, 칩 3개를 겨우 챙겼다.
영화를 본 뒤,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있는 기자. 애들이 잘 있는지, 불안했던 주환, 혜령 엄마 전모씨가 몰래 사진을 찍어줬다. 기자는 이 당시, 국밥이 식어가는 것도 잊은 채 애들과 밥 먹이기 씨름을 하고 있었다./사진=/사진=주환, 혜령 맘

설상가상으로, 식당 줄이 하필 또 길었다. 기다리는 동안, 앉혀 놓으니 자꾸 줄을 벗어나려 했다. 붙드는 게 일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식당에 들어가, 갈비탕 하나와 국밥 하나를 시켰다. 고기를 썰고 국물을 식힌 뒤 밥을 말았다. 하지만 애들은 밥을 안 먹고 장난만 쳤다. 혜령이는 숟가락을 물컵에 넣으며 좋아하고, 주환인 물컵에 휴지를 적시더니 하나씩 던졌다.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 없었다. 겨우 먹는가 싶더니, 이번엔 갑자기 고기를 빼달라고 했다. 그렇게 씨름하는 새, 내 국밥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입맛도 별로 없었다.

매순간, 뭐가 맞는지, 어떡해야 할 지 잘 몰랐다. 그렇다고 무작정 혼낼 수도 없었다. 아이들이니까, 아무 것도 잘 모를 나이니까. 그런 속상함과 답답함이, 부모들이 느끼는 마음이구나 싶었다. 누구나 다 엄마도, 아빠도 첨이니까. 공공장소서 자기 애 하나 통제 못한다고, 따가운 눈총을 줬던 과거 모습이 생각났다. 아이를 능숙하게 데리고 다니는 부모들이, 새삼 대단하게 보였다. 그들에게도 처음이 있었겠지.



작별 인사…내겐 하루, 엄마에겐 일상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자기 전 놀이를 하고 있다. 뱃살이 다행히 절묘하게 가려진 탓에, 이 사진을 골랐다./사진=주환, 혜령 맘

집에 돌아와서,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삼촌이 씻겨줄까" 했더니, "부끄러워 싫다"며 배시시 웃었다. 애들을 기다리며 그제서야 쇼파에 앉아 한숨 돌렸다. 맘 편히 앉아본 게 첨인 것 같았다. 전씨는 그 와중에도 애들을 씻기느라 한바탕 씨름을 했다. 불호령 몇 번이 떨어지고, 화장실이 쩌렁쩌렁 울리고 나서야 목욕이 끝났다.

다 씻고 넨네코코 잠옷을 입은 혜령이가, "삼촌"하며 달려와 안겼다.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번졌다. "이런 게 육아 고통을 이기는 행복이구나" 싶었다. 책을 2권씩 읽어주기로 했다. "나뭇잎에서 쿨쿨 잠자던 애벌레가 깨어났어요. 아, 잘잤다. 세상 구경이나 해볼까?" 백만년만에 백설공주도 정독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골똘히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일순간 아빠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성우처럼 한껏 목소리에 힘을 줘 동화톤으로 읽었다.
"빠이빠이빠" 혜령이의 마지막 인사. 손짓이 역동적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마지막으로 장난감 놀이도 했다. 주환이는 공룡을 잔뜩 꺼내와서 같이 싸우자고 했다. 혜령이는 아침을 만든다며, 장난감 가스레인지를 켜더니 "얘들아, 아침밥 먹자. 히히히"하며 웃었다. 바닥에 놓인 공룡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더니 삼촌도 먹으라고 건넸다. "이거 앗 뜨거워. 소금 뿌어야 대(뿌려야 돼). 당근이야, 먹어바(봐)."

밤 9시45분, 헤어질 시간이 됐다. 전씨가 "이제 아가들은 잘 시간"이라고 하자, 주환이가 "조금만 더 놀면 안돼요?"라고 했다. 혜령이는 "나 놀거라구요! 나 놀거라구!"하며 목소릴 높였다. "삼촌도 삼촌 집에 가서, 짝꿍이랑 넨네코코 하셔야 돼"하자 두 아이는 "으으응"하며 겨우 납득했다. 혜령이와 "빠이빠이빠" 하며 인사를 나눴다. 주환이는 방 안에 들어간 채 "안녕히 계세요"라고 했다. 바깥에 나오진 않았다. 전씨는 "애가 헤어지기 싫어서 그런 것 같다"고 웃었다.

애들과 헤어진 뒤, 현관문을 닫고 나와 그런 생각을 했다. 내겐 하루지만, 엄마는 내일도 계속 되겠구나. 하루라서 '좋은 삼촌'일 수 있었지만, 매일 본다면 그러지 못하겠구나 하고.
혜령이가 아끼는 공룡 오뚝이(왼쪽)와 주환이 애장품인 '장난감 칩(오른쪽)'. 헤어지기 전 아이들이 준 선물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헤어지는 길, 주머니에 고이 넣어온 아이들의 마지막 선물. 주환이가 아끼는 장난감 칩과, 혜령이가 좋아하는 공룡 오뚝이였다. 이걸 주면 좋아하리라 생각한 동심(童心)에, 마음 한 켠이 시큰해졌다. 전씨는 "애들이 자기 걸 주는 건, 정말 좋아해서 주는 것"이라며 "잘해주셔서 정(情)이 든 것 같다. 버럭하는 사람 밖에 없어서"라고 했다. 혜령인 다음날 하원 길에, "삼촌 어딨냐"며 찾다가 울기까지 했단다.

이런 게 '육아의 행복'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날 하루는 참 고됐다, 솔직히 돌아가기 싫을 만큼.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홀가분 했던 게 사실이다. 아직 아이가 없음이 감사하기도 했다. 기사를 새벽까지 쓰며 마감하는 날이 있었어도, 끝이 있단 생각에 견딜만 했다. 육아처럼 막막한 기분은 아녔다. 그날 밤, 하늘을 날며 연기를 쏘며 적을 무찌르는 꿈까지 꿨다. 평소 꿈도 잘 안 꾸는데.

그 대단한 걸, 엄마들이 해내고 있다. 모성(母性)이란 좋은 말로, 감내할 수준이 아녔다. 옴짝달싹 못해 몸도 힘들지만, 맘이 더 힘들단다. 아이를 잘 키워야한단 무게감, '내가 좋은 엄마일까'하는 불안을 홀로 떠맡는 게. 배 아파 출산하면 끝인줄 알았더니, 진짜 지옥이 시작이었단다. 화장실 볼 일 볼 때도 아이를 들쳐 업고 들어간단다. 밤잠은 고사하고, 맘 놓고 아플 수도 없다고. 경력은 끊기고, 집안에 고립된 채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다고.

그나마 알아주는 게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란다. 남편은 돈 버느라 바쁘고, 나이든 세대는 "너만 애 낳냐, 다 그리 키웠다" 한다고. 어쩌다 이들과 커피라도 한 잔 하며 속을 풀면, 어떤 이들은 "남편 버는 돈으로 편히 놀고 있냐"고 한단다. 누구는 '맘충(蟲)'이라고도 한다. 싸늘하고 따가운 시선에 두 번, 세 번 상처 받는단다.

다시 1월31일, 생애 첫 육아를 했던 날.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지하 주차장에 내려왔었다. 아이들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돼 차마 멀리 떠나지도 못한, 엄마 마음이었다. 그에게 애들이 달려가는데, '구원자'처럼 보였다. "얼마나 힘드셨어요, 고생 많으셨어요"하고 전씨가 건넨, 그 한 마디에, 맘이 울컥했다. 그냥 따뜻한 말 한 마디 해주면 어떨까. 정말 고생 많다고. 그 힘듦에, 무조건 이해하고, 많이 공감(共感)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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