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울산·거제 패닉…"빅2 전환 충격 못견딘다"

머니투데이 거제·울산=안정준 기자 | 2019.01.31 17:33

현대重, 대우조선 인수 추진 소식에 "쇼크"…"빅2 전환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31일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정문. 근로자들이 퇴근을 하고 있다./사진=안정준 기자
"쇼크 상태입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31일 오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작업복을 입은 직원은 이같이 말하고 말문을 닫았다. 같은 날 오후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 일을 마치고 나오는 직원들의 입에서는 "어안이 벙벙하다", "대체 지금 왜"라는 말이 나왔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인수 추진에 나섰다는 소식에 울산과 거제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날의 충격 전까지 거제와 울산의 조선소는 2016년 시작된 최악의 불황을 뚫고 나와 재도약을 준비 중이었다.

전일 방문한 대우조선 거제 옥포조선소에는 활기가 넘쳤다. 건조 중인 거대한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19척이 도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작업자들은 조업에 여념이 없었다.

울산 현대미포조선 야드도 마찬가지였다. 선주에게 곧 인도될 LEG(액화에틸렌) 운반선 한 척이 불을 환히 밝히고 정박해 있었다. 4개의 도크에는 PC(석유화학제품)운반선과 로로선(자동차·컨테이너운반선)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30일 대우조선 옥포조선소에서 직원들이 LNG운반선 건조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대우조선은 전 세계 발주된 LNG 운반선의 약 30%를 수주했다./사진=안정준 기자

지난해 세계 1위를 탈환하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한국 조선업계의 기대감은 거제와 울산 현장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구슬땀을 훔쳐내며 "최대한 빨리 배를 만들고 내보내야 다음 일감을 시작한다"는 옥포 조선소 한 직원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이처럼 부활을 준비하던 거제와 울산에 갑작스러운 인수합병 추진 소식은 청천벽력이다.

특히 거제의 충격이 커 보였다. 불황의 기간 '부실의 상징'이라는 오명도 썼지만, 그보다 훨씬 긴 시간 지역경제를 책임진 '대우조선' 로고는 자부심이었다. 직원들은 작업복이 바뀌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보였다. 당장 인수합병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구조조정은 또 다른 생업의 위기이기도 하다.


대우조선과 희비를 함께 한 지역 상권도 마찬가지였다. 거제 고현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호준(54·가명)씨는 "조선경기 회복과 고속철 건설로 무너진 지역경기에 숨통이 트나 했는데,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을 품에 안을 울산도 당장의 생업이 걱정으로 보였다. 한 현대중공업 현장근로자는 "세계 1위를 탈환했다고 하지만, 과거 호황기와 비교하면 수주물량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며 "불투명한 시황 탓에 허리띠를 졸라매 왔는데 대규모 자금이 투입될 인수합병을 시작하면 또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30일 거제 고현시장. 설 대목임에도 시장은 한산했다./사진=안정준 기자

사실 인수합병은 거제와 울산 지역사회 모두 어렴풋이 예견하고 있던 일이기도 하다.

'빅3'(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체제의 '빅2' 재편은 조선경기 불황 심화와 함께 정부와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일감이 한정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조선사 간의 제살 깎기 경쟁이 문제가 된 탓이었다. 특히 2017년 초 대우조선에 대한 2차 지원안이 확정된 후 정부는 대우조선을 작고 단단한 회사로 만든 뒤 2018년 이후 새 주인을 찾는다는 방침을 세웠었다.

그럼에도 거제와 울산의 충격이 큰 까닭은 빅2로의 이행 시점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온 탓이다. 불황의 여진이 여전한데 거대한 조선업 판도 변화에 따른 충격을 또다시 견뎌낼 여력이 부족하다. 울산에서는 "세계 1위 탈환이라는 상징성에만 취해 정부든 회사든 무리하게 빅2 전환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 목소리도 들렸다.

현대중공업 한 근로자는 "장기적으로 빅2 체제로의 전환은 조선업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며 "하지만 지금 인수 추진은 생산 현장과 지역 경제도 감안해 진행되는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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