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걷던 미국인 "미세먼지? 첨 들어본다"

머니투데이 김건휘 인턴기자 | 2019.02.06 06:13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다니는 외국인들… 대부분 미세먼지 개념·심각성 인지 못하는 모습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을 기록했던 지난 23일 서울 경복궁의 모습. 오른쪽은 당시 서울의 대기 현황을 나타내는 그래픽이다./사진=김건휘 인턴기자, 에어코리아
"미세먼지? 그런 건 처음 들어 본다"(Micro dust? I've never heard of that). 전국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이었던 지난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만난 미국인 관광객 토드(37)는 마스크를 벗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를 신기한 눈길로 바라봤다. 마스크를 쓸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그는 "날씨가 특별히 나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일 미세먼지가 도심을 뒤덮으면서 시민들의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대부분 미세먼지의 개념 자체를 모르고 있었지만 해로운 영향 등을 설명해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복을 입고 모여다니는 외국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같은 색깔의 패딩 점퍼를 맞춰 입고 궁 안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한 외국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사진=김건휘 인턴기자
지난달 23일 오전 10시부터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경복궁 입구에서 관광객을 1시간 동안 관찰했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인 흐린 날씨였지만 마스크를 낀 관광객은 채 10명도 볼 수 없었다.

미국인 더글라스(34)는 "얼굴에 뭔가 씌워지는 느낌이 불편하다"라며 마스크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오히려 그는 "한국의 첫 아침을 조깅으로 시작했는데 상쾌하다"고 말했다.

미세먼지를 처음 들어봤다는 그에게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로 호흡기 건강에 좋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마스크를 쓸 생각이 없는지 재차 물었다.

그러나 더글라스는 "내가 온 조지아 주의 애틀랜타와 달리 서울은 햇볕이 잘 든다"라며 "잘 보이지도 않는 먼지를 신경쓰기보다는 야외활동을 즐기겠다"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건강에 민감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서울 중심부에서 마주친 외국인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다. /사진=김건휘 인턴기자
마스크를 낀 사람을 드물게 찾을 수 있었지만 거의 한국인이었다. 고층 건물이 뿌옇게 보일 만큼 미세먼지가 나쁜 날이었다./사진=김건휘 인턴기자
궁 입구를 지키는 경복궁 직원 김모씨는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인 날에도 마스크를 쓰는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가끔가다 마스크를 쓴 중국 관광객들이 있는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미세먼지에 둔감한 것은 관광객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역시 미세먼지에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콘스탄틴 미더호프(22)는 "어차피 1년 이상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라며 "하늘이 노랗게 됐던 날 마스크를 사 봤지만 너무 불편했다"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온 루카스 히어제거(24)는 "안경을 끼는 입장에서 마스크가 너무 불편했다"라며 "발암물질은 잘 와닿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유학생들과 교류가 많은 편이라는 대학생 강윤구씨(27)는 외국인들 사이에 미세먼지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강씨는 스마트폰으로 날아오는 경보를 몇차례 알려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날아오는 발암물질이 섞여 있다는 설명에도 다들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강씨는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건강에 신경쓴다고 생각하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미세먼지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외국인들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이다.

지난해부터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 40여만명은 내국인들과 똑같은 미세먼지 알림 서비스를 영문으로 전달받는다. 그뿐 아니라 행정안전부는 영어와 중국어로 미세먼지 예보를 보내는 ‘이머전시 레디’(Emergency Ready) 앱 등을 통해 외국인들에게도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거리에서 만난 외국인 중 이를 알거나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 송학준 배재대 호텔여가서비스경영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서구권 외국인들은 미세먼지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송 교수는 관광객들 사이에 한국은 아직 환경 문제에서 안전하다는 이미지가 있다고도 했다.

송 교수는 "앞으로 미세먼지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라며 "관광객들이 미세먼지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비한다면 국가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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