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저임금이 설득력을 얻는 길

머니투데이 박재근 대한상공회의소 기업환경조사본부장  | 2019.01.30 04:30
해가 바뀌면서 최저임금 시급 8,350원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지난해보다 10.9% 오른 금액이다.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사업주가 지급해야 하는 최저임금은 1만원을 넘어섰다. 절대 금액으로나 중위임금 대비로나 선진국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제는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더 많이 얘기되고 있다.

머지않아 2020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현재와 같은 최저임금 결정방식이 유지된다면 또다시 경제상황이나 객관적 지표가 아닌 노사 힘겨루기나 외부요인에 의해 최저임금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지불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여전히 두 자리 수 인상을 주장하리라. 기업이나 소상공인은 이미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동결 수준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오를지 예측할 수 없으니 불안감만 커진다.

해마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 왜 그 금액으로 결정됐는지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법은 몇 가지 결정기준을 두고 있다. 근로자 생계비, 유사 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등이다. 문제는 이런 기준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는 데 있다.

실제 최저임금위원회는 2017년에 최저임금을 결정한 후 아무런 산출근거를 내놓지 않았다. 2018년에는 노동계가 표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협상 배려분’이라며 1.2%를 더 얹어주기도 했다. 물론 최저임금법에는 그렇게 할 근거가 전혀 없다. 주는 쪽 입장에서 더 수긍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간 노동계가 표결에 불참했을 때는 이를 이유로 최저임금을 덜 올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공익 각 9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과반수로 결정하는 구조인데, 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최저임금제도 도입 후 32년 동안 단 7번만 합의에 의해 결정됐음이 이를 반증한다. 그밖에 25회 중 노‧사 어느 한쪽이 표결마저 참여하지 않은 경우가 17번이나 된다. 게다가 결국은 공익위원이 제시한 의견대로 인상률이 결정된 경우가 많다. 노사 합의보다 사실상 공익위원 뜻에 좌우됐다는 의미다.


최저임금 결정구조에 이런 구조적 문제가 있었지만 큰 논란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동안 최저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면서 더 이상 지금의 결정구조를 유지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이미 대한상의는 객관적 지표를 반영한 산식(formula)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돼야 하며, 전문가그룹에서 합리적 인상구간을 제시한 후 노사 협의를 통해 합의안을 도출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최근 정부에서도 문제점에 공감해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개편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를 신설하고, 공익위원 선정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국회에도 추천권을 부여하거나 노사에게 교차배제권을 준다는 내용이다. 최저임금의 객관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진일보한 방안으로 보인다.

물론 정부 취지대로 객관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운용의 묘가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 구간설정위원회 위원을 중립적인 인사로 구성하고, 이 위원들이 객관적인 지표를 나침반 삼아 구간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구간설정위원회가 객관적 경제지표가 아닌 그 외 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음을 분명히 해야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개편하는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각계 의견 수렴과 숙의 과정 속에서 잃어버린 최저임금의 신뢰와 설득력을 찾는 방안이 반드시 마련되길 기대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2020년 최저임금 논의에 들어가기 전까지 제도 손질을 마무리하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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