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따금씩 찝찝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메이어스 백화점 근처 멜번 번화가 한복판에서 백인 청소년들이 내 머리를 때리고 도망갔을 때 그러했고,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시드니 서큘러키 한 구석에서 호주 원주민(Indigenous Australian 또는 Aborigine·에보리진) 대가족(할머니, 할아버지 등 노인부터 5살 짜리 꼬마들까지)이 옛 복식 그대로 분장을 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돈을 모금하는 모습을 봤을 때도 그랬다.
내가 당했던 일은 아시안에 대한 인종차별임이 명백했다. 그리고 원주민이 제대로된 직업을 갖지 못하고 '구경거리'로 전락해 살아가는 것에도 인종차별이 덧씌워져있는듯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토록 안타까워한건, 이들 모습이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하기 때문이었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사회 다른 구성원들과 잘 융화되지 않으며, 타자화돼 살아가는, 비극적 처지에 놓인 상황 말이다.
지난 26일은 '호주의 날'(Australia day)이었다. 호주는 매년 1월26일을 국경일로 기념한다. 이날은 1788년 아서 필립이 영국 함대에 이주민들을 이끌고 시드니 록스에 상륙해 영국 국기를 게양한 날이다.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이날을 국가적 '개척의 날'로 여겨 각종 행사를 열어 크게 기념해왔다. 이날 호주 곳곳에서는 지역행사, 불꽃 놀이 등은 물론이고 호주식 무료 바베큐 파티까지 열린다. (호주식 바베큐 파티란, 식빵에 구운 소시지를 얹어 머스타드와 케첩을 뿌려주는 음식제공행사를 가리킨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이를 다르게 바라본다. 당시 영국인이 대륙에 살던 최소 75만명의 원주민을 무시하고 호주 대륙을 '주인 없는 땅'으로 선언한 '침략의 날'로 말이다. 이들은 이날 영국 함대가 착륙한 이후 수만 명의 원주민이 질병과 기아·학살 등으로 사망하게 됐다며 이날을 기점으로 고통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녹색당은 최근 '호주의 날'을 바꾸는 것을 올해 최우선적인 과제 중 하나로 선정, 전국적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빅토리아주의 모얼랜드, 야라, 데어빈, 서호주주의 프리맨틀, 뉴사우스웨일스주의 바이런베이 등의 카운슬 의회가 '호주의 날' 기념행사를 다른 날로 바꾼 상태다.
실제 원주민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고려해 이날을 바라보면, '호주의 날'이 아니라 '침략의 날', 나아가 '재앙이 시작된 날'로 불러도 과하지 않다. 원주민들은 영국인들이 1788년 시드니에 정착하기 전 수만년 동안 수렵활동을 하며 살아왔지만, 영국인이 들어온 뒤 90% 가량이 죽었다.
특히 호주 정부가 1915년부터 1969년까지 실시한 '원주민 동화정책'과 '문명화 정책'은 최악 중 최악이었다. 정부는 10만명의 원주민 어린이들을 강제로 부모로부터 떼어놓고 백인 가정 및 선교 기관 등에 위탁했다. 이 어린이들 중 다수가 농장 일꾼으로 전락했고, 또 상당수 어린이들은 신체적, 성적 학대로 고통 받았다. 결국 대부분은 적응하지 못해 마약과 알코올에 의존하게 됐다.
이 같은 여파가 현재까지 남았다. 원주민 인구는 계속 줄어 이젠 약 70만명으로 호주 전체 2400만명의 인구 중 3%만을 차지한다. 이들은 낮은 진학률과 높은 실업률, 그리고 약물중독·자살·폭력 등에 시달리면서 호주 사회의 최하층민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호주 북부와 서부 변두리 대지에 위치한 60여개의 원주민 캠프에서 살고 있는데, 의료혜택 미비 등으로 몸이 성치 않고 평균수명이 다른 이들에 비해 17년 짧다. 원주민 성인의 70%는 난청을 겪고 있으며, 2.5%는 뇌기능 장애가 있다, 어린 시절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제대로 된 처치를 받지 못해 염증을 심하게 앓았거나 임신 기간에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소득문제도 심각하다. 2016년 호주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서호주 지역에서 원주민 가정은 한 주에 398호주달러(약 31만원)을 벌어들였다. 당시 같은 지역 평균 가정의 주당 소득은 1210호주달러(약 96만원)였다. 원주민은 평균 보다 무려 3배 정도 적게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실업 상태도 심각하다. 원주민중 38%는 실업 상태고, 특히 젊은 사람들은 50%나 실업상태다.
교육 상황이 좋지 않으니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2012년 뉴사우스웨일스주정부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원주민 초등학생 3학년의 경우 읽고 쓰는 능력 최저에 미달하는 학생 비율은 40%에 달했다. 이는 비원주민 학생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격차는 학년을 거듭할 수록 더욱 커졌다. 초교 5학년의 경우 원주민의 50%가 최저 기준에 미달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평균 77%가 학업을 수료할 때 원주민은 33%만이 학업을 수료한다.
원주민을 더 미치게 하는 건 이 같은 이미지가 공고화되면서 차별이 해를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빅토리아 톨리-코퍼즈 UN 특별보고관은 "원주민들이 끔찍한 여건 속에서 살고 있으며, 원주민들은 기본적으로 빈곤 때문에 처벌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원주민의 경우 사소한 범법행위로도 투옥된다"며 "매우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호주에선 매일 충격적인 원주민 관련 소식이 나온다.
△원주민 가수 제프리 구루물 유누핀기는 멜번·다윈·시드니 등에서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다수의 택시 승차거부를 당했다. △2016년 원주민 버우 포스터는 퇴근하고 버스를 타려 정류장을 향해 뛰었는데, 경찰이 다짜고짜 그를 곤봉으로 때렸다. 인권 단체에선 "버우의 유일한 죄는 원주민이 버스를 잡으려고 달렸다는 것"이라며 비난했다. △지난 3일부터 11일까지 9일 동안 청소년 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진 아이들은 대부분 12~15세의 원주민이었다. 이중 14살의 나이로 자살한 소녀 로셸 프라이어는 죽기 전 페이스북에 "내가 죽어야만 괴롭힘과 인종차별이 멈출 것"이라고 적었다.
예컨대 고용격차와 원주민 학생의 읽기·쓰기·수리 능력 격차, 학교 출석률 격차, 아동사망률 격차를 10년 후인 2018년 6월까지 절반으로 줄이자거나 고등학교 졸업률 격차를 2020년까지, 원주민과 비원주민간 평균수명 격차를 2031년까지 해소하자는 목표다. 정부는 목표 달성을 위해 지난 10년간 매년 334억 호주달러(약 27조9000억원)를 원주민에 투입해왔다.
하지만 2019년 현재까지, 호주 정부의 노력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원주민들은 주변화된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상황은 점차 심각해져만 가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대체 어디서부터 꼬여 이토록 풀 수 없게 돼버린 것일까. 다음 편에서는 원주민들이 겪어야했던 처참한 역사를 되짚어본 뒤 상대적으로 나은 삶을 살고 있는 뉴질랜드의 마오리족과 비교해 생각해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호주 그리고 에보리진 ②]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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