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를 망하게 할 스타트업 찾습니다"

머니투데이 대담=조성훈 차장, 정리=유승목 기자  | 2019.01.28 11:09

[머투 초대석] 이진성 롯데 액셀러레이터 대표

이진성 롯데 액셀러레이터 대표 겸 미래전략연구소장이 21일 롯데의 스타트업 투자방향과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롯데를 망하게 할 스타트업을 찾습니다"

롯데 액셀러레이터의 운영 모토는 도발적이다. 2016년 설립된 롯데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며 육성하는 CVC(Corporate Venture Capital·벤처 캐피탈)다.

국내 대기업 그룹사가 VC를 설립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액셀러레이팅(창업보육)과 투자를 병행하는 것은 롯데가 유일하다. 실리콘밸리 와이컴비네이터의 한국판이다. 실제 지난해 스타트업 대상 인지도 조사에서 IT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 다음으로 롯데 액셀러레이터가 꼽히기도 했다.

이진성 롯데 액셀러레이터 대표는 지난 3년간 롯데에서 가장 독특하고 이질적인 이 조직을 이끌어왔다. 롯데를 긴장시키고 정신이 번쩍들게할 만큼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게 그의 일이다. 그는 "매번 어떤 스타트업이 새로 등장할 지 기대감이 크다"면서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동시에 롯데도 함께 발전하고 조직문화를 혁신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롯데 액셀러레이터가 운영하는 엘캠프 건물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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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롯데 액셀러레이터 대표 겸 미래전략연구소장 초대석/사진=머니투데이
-롯데는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별도 법인까지 설립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배경이 뭔가.
▶신동빈 회장의 혁신에 대한 깊은 관심이 출발점이다. 2015년 신 회장이 직접 집무실로 호출해 "혁신이 필요하다. 미국 와이컴비네이터같은 회사를 만들어보라"며 벤처캐피털 사업을 권유했다. 당시 "솔직히 못하겠다.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당시 벤처캐피탈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아서였다. 그러나 신 회장은 '100개 중 1~2개만 성공해도 좋으니 시작해보자'고 설득했고 결국 2016년 법인을 설립했다. 신 회장은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에 관심이 있었다. 스타트업의 혁신 속도는 쫓아가기 어려울 만큼 빠르다. 똑똑하고 글로벌 역량을 가진 인재들도 많다. 이러한 점들을 배워 그룹 사업에도 혁신을 불어넣고 나아가 롯데의 조직 문화를 바꿔보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그래서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 발굴에 주안점을 뒀다. 이 과정에서 고용 등 다양한 가치를 창출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도 중요한 동기다.

-스타트업 발굴은 어떻게하나
▶반기마다 선발하는 '엘캠프'(L-CAMP)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2016년부터 시작해 최근 4기를 마쳤다. 설 연휴가 지나면 5기 스타트업이 입주한다. 지난 3년 간 지원서를 제출한 스타트업이 2240여개고 이 중 선발돼 지원을 받은 기업이 약 60여 곳이다. 매번 경쟁률이 40대1에 육박할 정도로 높고 심사에만 20일이 걸릴 정도로 치열한 과정을 거친다.

주목할 점은 발굴기준인데 다른 대기업과 달리, 롯데 그룹의 사업과 연계가능한 스타트업만을 골라 뽑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룹과의 연계부터 염두하고 지원하면 실패한다. 아무 조건없이 아이디어와 잠재력이 있는지만을 본다. 사업 연계 가능성은 그 다음이다. 그동안 지원한 스타트업 중에서 '우리 사업은 롯데랑 연계가 된다'고 어필한 경우가 있었지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스타트업 사이에서 엘캠프의 인기가 높다. 무엇을 지원하는가
▶스타트업 지원이 가장 '빵빵하다'고 자부한다. 엘캠프에 선발된 스타트업에 6개월 간 업무 공간을 무료로 제공한다. 커피부터 복사용지까지 모두 무료다. 서울 강남 테헤란밸리 한복판이라 임대료가 비싸지만 어떤 비용도 받지 않는다. 단순히 공간적 지원에서 그치지 않고 법률, 회계, 심지어 세무 서비스까지 스타트업이 부족한 역량을 채워준다. 팀당 수 천만원씩 들여 SNS 홍보도 돕는다. 아이디어만 가진 소규모 스타트업에게 사무실 월세부터 각종 제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지원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다. 국내에서 이 정도 서비스를 지원하는 곳은 오직 롯데 액셀러레이터 뿐이다. 스타트업과 롯데 계열사의 사업 연계도 주선해준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스타트업이 대기업 팀장 한 번 만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를 통하면 바로 사업 관련성이 있는 계열사 대표와의 미팅이 가능하다. 그룹사 대표들이 롯데 액셀러레이터 이사로 참여한다. 또 성공한 벤처 전문가들을 초빙해 대화기회도 마련한다. 특허, 홍보, 펀딩 등 각 분야의 전문가는 물론 롯데 그룹 내 임원급 전문인력들도 참여한다. 그 결과 올해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가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네이버, 카카오에 이어 '스타트업 활동에 적극적인 기업'으로 뽑혔다. 비보조 인지도에선 카카오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그동안 성과는 어떤가.
▶엘캠프를 졸업한 스타트업들의 가치가 무척 올랐다. 1~3기 스타트업의 경우 총 기업 가치가 현재 4219억원에 달한다. 입주 시점 대비 3.1배나 성장했다. 기업 가치가 10배가 오른 곳도 있다.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대체로 긍정적인 성과를 냈다. 몇몇 스타트업은 롯데 그룹과 함께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 세계 최초로 비가청음파 결제시스템을 만든 '모비두'가 대표적이다. 롯데 멤버스와 연계해 '엘페이'(L.Pay)에 기술을 적용했다. 다른 결제 시스템처럼 앱을 켜지 않아도 결제가 가능하다. 2017년 롯데슈퍼 잠실점부터 시작해 지난해 백화점, 세븐일레븐, 롯데마트 전 점포로 확대했다. 링크플로우라는 회사는 넥밴드 카메라로 CES에서 3년연속으로 주목을 받았고 롯데월드타워, 백화점, 두바이공항 등 현장에서 보안목적으로 사용된다. 롯데캐논에서 생산도 하고 있어 윈윈이다. 보맵, 튜터링, 센스톤 등 성공단계에 접어든 스타트업이 많다.
이진성 롯데 액셀러레이터 대표 /사진=롯데

-롯데미래전략연구소장을 겸임 중이다. 오프라인 유통이 위기인데 대응전략은 뭔가.
▶온라인의 성장으로 오프라인 유통업이 위기를 맞고있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프라인이 가진 강점은 여전하다. 백화점 식당은 사람이 몰리고 명품, 잡화 성장도 나쁘지 않다. 그 동안 업계의 방식이 고객을 끌어들일 만큼 재미가 없지 않았나 싶다. 쇼핑 뿐 아니라 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요소를 찾아 재밌게 꾸민다면 성장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본다.
다만 중소슈퍼 등 소형점포의 경우 리스크가 있다. 규모가 작아 물건을 사는 것 말고 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없다. 온라인 마켓이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차별화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최근 유통업계가 몰두하고 있는 배송전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빠른 배송은 모두 가지고 있는 역량이다. 이제 소비자가 원하는 장소, 원하는 시간에 정확하게 배송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기업들은 과도한 정부규제에 대해 불만이 많은데.
▶ 규제로 인한 어려움이 없지않다. 특히 CVC 전망이 밝지 않다. 벤처캐피털은 금융회사에 속하는데 우리 법상 금융회사는 지주사의 자회사가 될 수 없다. 효율적인 스타트업 지원이나 사업 연계가 어렵다는 얘기다. 다른 대기업들이 CVC에 소극적이거나 아예 해외로 나가는 이유다. 지난해 국회에서 CVC를 금산분리 예외로 하자는 법안이 나왔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벤처지주회사같은 대안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스타트업 육성에 대기업이 더 활동하도록 길을 열어줘야한다. 롯데 액셀러레이터같은 회사가 있으니까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스타트업에 관심 기울이지 않나. 상황은 어렵지만 방법을 찾아서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에 노력할 계획이다.
유통도 마찬가지다. 정부나 기업이나 결국 고용창출과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 생산, 더 나은 소비자 후생 제공, 그리고 지역 발전을 목표로 한다. 이를 두고 마트 영업일수 규제 등 방법적 측면에서 이견이 있다. 그런데 정부는 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해야 고용을 늘릴 수 있는지, 마트와 전통시장 품목이 과연 겹치는지, 미세먼지가 심한 날 소비자는 어떤 쇼핑장소를 택하는지 등 데이터를 제대로 읽어낸다면 해법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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