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호주에서 수업을 들을 때의 일이었다. 인도 출신 교수님은 어느 날 수업에서 '인도의 딸'(India's Daughter) BBC 다큐멘터리를 언급하며 말을 꺼냈다. (☞"성폭행 싫으면 밤에 다니지 마"… '강간의 왕국' 오명 쓴 나라 [이재은의 그 나라, 인도 그리고 성차별 ①] 참고) "다들 2012년 12월의 '델리 여대생 버스 강간 사건', 알고 있죠? 이에 대한 다큐멘터리형 영화가 있는데, 인도 정부의 태도가 정말 참혹합니다."
그가 분노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델리 여대생 버스 강간 사건'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들, 가해자들, 가해자 측 변호사 등을 두루 취재해 담은 영화는 사실 그대로를 담았다 △인도 여성은 이처럼 인권 사각적인 현실에 놓여있다 △그런데 이렇게 사실만을 담을 영화를, 인도 정부는 '반성'은 못 할 망정 '상영 금지'해서 현실을 덮어버리려한다 등이다.
인도 정부는 2015년 3월, 영화가 만들어지자마자 인도 대법원에 상영금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BBC에도 "이 영화가 방영되거나 온라인에 게시되지 않기를 요청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물론 BBC는 예정대로 방영했지만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인도 여성들은 성폭력이 13분30초에 한 번 꼴로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대체 인도는 왜 '성폭행이 빈번한 위험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게된 것일까.
인도에서 이처럼 여성혐오가 만연해진 이유로는, 힌두교를 꼽을 수 있다. 인도는 13억 인구의 약 80%인 10억여명이 힌두교 신자다. 힌두교라는 종교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은, 대부분 인도인들이 여성을 생각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힌두교에선 무려 3~4억명의 신을 숭상하는데, 여신 다수도 선망한다. 이중 여신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정숙하고 자애로운 여성상과, 강렬한 성적 매력을 가진 여성상이다.
인도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신이자 '번성함' '복지' '부와 행운' 등을 상징하는 락슈미의 경우, 전자에 해당한다. 락슈미는 남신(남편인 비슈누)의 지배 하, 남편을 주인으로 받들며 충실하게 순종한다. 주로 상층 카스트 부인들이 락슈미를 숭상해 락슈미의 덕목을 그대로 따른다.
힌두에서 결혼이 중시돼온 이유는 또 있다. 여성을 '오염 가능성이 있는 열등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힌두라는 종교적 의례에선 정결함(우월함)과 오염·더러움(열등함)은 구분된다. 이때 월경과 출산 등을 담당하는 여성은 오염이 가능한 열등한 존재로 인식됐다. 이에 따라 여성은 초경이 시작되기 전, 즉 오염되기 전 서둘러 '결혼'이라는 통제수단에 속해야하는 존재로 여겨져왔다.
고대 인도의 법률가들도 여성을 이렇게 바라봤다. 여성은 본래 사악하며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고, 오염 가능성이 있는 열등한 존재이며, 부모의 감시를 피해 임신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이다. 이게 마누법전(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 인도의 사상, 제도를 집대성해 정비된 힌두법전)에 "여성의 결혼 적령기는 8~12살이다. 30살 남성은 서둘러 마음에 드는 12살 여자를, 24살 남자는 8살 여자를 취하라. 그렇지 않으면 다르마(의무)를 수행하기 곤란하다"는 문구가 실린 이유다.
마누법전의 가르침에 따라 종교를 엄격히 따르는 높은 카스트 층(브라만, 크샤트리아 등의 순서로)을 중심으로 조혼(유아혼)이 성행했다. 낮은 카스트에서는 상대적인 평등상이 이뤄지고, 남편과의 역할교환도 이뤄졌지만 이들의 산스트리트화과정(높은 카스트 모방)을 통해 다른 계층에도 퍼졌다. 인도 전역에서 조혼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1881년 인구 기록에 따르면 벵갈 지역에서 10세 소녀의 14%는 결혼을 했거나 이미 과부였으며, 봄베이 지역 10세 소녀 10%가 결혼했고, 4.5%는 과부였다. 1921년 인구 기록에 따르면 여성 1000명 중 14명이 5세 이하에 결혼했고, 111명이 10세 이하에, 437명이 15세 이하에 결혼했다.
이후 인도 사회운동가들은 조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마하트마 간디(본인도 7살에 약혼을 하고 13살에 결혼했다)는 "사띠(사망한 남편과 함께 과부가 된 여성을 생화장하는 풍습) 등으로 여성 조혼 풍습은 어린 소녀들의 사망률을 높인다"며 조혼 풍습의 폐지를 주장했다. 이에 1955년 힌두결혼법률은 15세 미만 여성의 결혼을 금지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조혼 풍습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인도 여성 중 20%는 15세 이전에 결혼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조혼 풍습은 젊은 여성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지난해 9월 영국 의학 전문지 랜싯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자살하는 여성 중 36.6%가 인도 여성이다.
랜싯은 폭력을 조장하는 가부장 문화가 팽배한 인도에서 조혼이 인도 여성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주요 원인이라고 해석했다. 즉 자살한 인도 여성 대다수는 35세 미만의 기혼자였는데, 조혼을 종용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 인도 여성은 어린 나이에 결혼한 뒤 가정 폭력 등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에 시달린다. 여기에 여성이 재정적으로 홀로 설 수 없는 현실이 더해지며 여성은 자살로 내몰린다.
힌두교 여성관은 조혼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여성억압적 관습을 파생했다. 지참금 문화다. 힌두교는 여성을 종교적 선물로 간주해 남성에게 '선물'로 딸을 증여한다. 이 경우 딸은 생리를 시작하기 전이어야한다. 신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가의 의상과 보석, 가재도구, 현금 등도 함꼐 보내진다. 이 같은 지참금 문화가 반드시 해야하는 의무가 되면서, 딸의 출산을 재앙으로 만들었다. 가난한 집안에선 딸이 태어나는 걸 두려워해 '여아 낙태'를 자행했고, 태어날 경우에도 지참금 걱정에 '여아살해'가 이뤄진다.
1800년대 후반 라즈뿌뜨 친족집단들 사이에서 여아 수는 남아의 25~30%에 불과했다. 최근까지 이 같은 경향이 이어져 2015년 기준 매일 2000명 이상의 여아가 낙태되고 있다. 마네카 간디 당시 인도 여성·아동발달부 장관은 "매일 2000명의 여아가 자궁 속에서 살해된다"며 "일부는 태어나자마자 베개에 눌려 질식사 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즉 낙태를 포함 한해 600만건의 여아살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2011년 기준 30년간 1200만명의 인도 여아가 낙태된 것으로 집계된다,
2011년 기준 인도 남아 1000명당 여아 비율은 914, 2014년 기준 여아 비율은 900이다. 주로 북부 인도일 수록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많은데, 2014년 남부 케랄라주는 가장 높은 967명, 북부 라자스탄주는 861명, 모디 총리의 출신지이자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많은 구자라트주는 854명, 뉴델리 인근 하리아나주의 경우는 831명으로 인도 최악의 성비 불균형을 보인다.
이처럼 여성혐오가 만연하니 페미사이드(Female(여성)과 homicide(살해)가 결합된 단어·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어야하는 '여성혐오 살해')가 만연해졌고, 불균형한 성비를 낳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살해가 공공연히 이뤄졌고, 성폭력의 연장선상에서 강간, 고문 등이 발생했으며 가족관계 안에서 아동성학대, 가정폭력 등도 빈번해졌다.
여성이 '2등 시민'으로 간주되고, 여성의 삶은 가정에서 남편을 보조하고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게 책무라고만 여겨지는 인도에선 당연히 여성 교육과 고용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2011년 인구 통계조사 결과 인도의 여성문해율은 65.46%로 세계 평균인 79.7%에 비해 현저히 낮다. 2014년 기준 인도 여성이 일하는 비율은 27%에 그친다. 인도 젊은 여성 5000만명 이상은 경제활동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인도여성들의 삶이 그래도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들의 취업에 대한 높아진 의지가 이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2008년 1월 인디안 익스프레스(The Indian Express)가 인도 20개주 40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발표에 따르면, 여성의 74%가 여성 취업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이 경향은 교육받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는데, 이들의 90%이상이 여성 취업에 동의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분석엔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여성교육률과 여성고용률이 높아져봤자, 이게 여성인권 향상과는 관련이 없다는 지적이다. 힌두근본주의 세력이 여성의 경제적 활동을 반대하지 않는 건, 이들이 여성인권 향상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기회주의적 측면에서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즉 물질적 소득을 위해 경쟁하는 시장경제 체제 아래에서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밖에서 수입을 올리고 동시에 가사일도 기꺼이 충실히 하라는, 매우 가부장적 접근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기사를 봤다. "인도 페이스북 사용자 중 여성 비율은 24%로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남성의 4분의 1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인도 여성은 현실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차별받고 있다는 것.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삶을 처참하게 유지한 채로는 인도의 엄청난 성장 동력도 스퍼트를 내기 힘들지 모른다. 인도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문헌
인도여성(신화와 현실),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김주희·김우조·류경희
인도 힌두권 여성 선교를 위한 선교 이해, 협성대, 곽계선
인도의 빈곤과 소득분배, 경상대학교 해외지역연구센터, 박종수
☞[이재은의 그 나라, 호주 그리고 에보리진 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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