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표', 어차피 막을 수 없다면…

머니투데이 임찬영 기자 | 2019.01.18 06:00

[암표의 경제학-②]음지(陰地)에서 양지(陽地)로…"불법 아니라 선택의 기회 주는 것", 매크로 규제가 관건

6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영동대로에서 열린 ‘강남페스티벌 영동대로 케이팝 콘서트’에서 인기 아이돌그룹 워너원(Wanna One)이 화려한 무대를 펼치고 있다. 2018.10.07. (사진=강남구 제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암표 시장은 당연히 존재하는 경제 거래행위며, 이에 대한 규제는 낭비다."

2017년 노벨 경제학 수상자 리처드 탈러의 말이다. 불법인 암표 거래를 당당히 지지하는 말이라 이목을 끌었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모든 사람이 줄서서 기다리는 건, 시간이 남아도는 이들에게만 유리한 일이며, 암표는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최근 암표를 합법화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음지(陰地)에 있는 암표 시장을 어차피 근절할 수 없다면, 아예 합법화 해 양지(陽地)로 이끌어 '재판매 시장'으로 활성화시키자는 것이다.

◇재판매 시장,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제 티켓 재판매 시장 규모가 152억달러(182조3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재판매 시장을 더 이상 '음지'로 머물게 하기에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글로벌 티켓 중개 사이트 '스텁허브'는 2017년 소비자 2000명에게 조사한 설문 결과, 응답자의 30%가 공연 티켓을 구매했지만 일정 때문에 가지 못했고 응답자의 61%는 재판매 티켓을 구매한 경험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재판매 시장의 활성화로, '공석'이 될 뻔한 티켓이 거래를 통해 필요한 이들에게 간 것이다.

◇미국, 영국은 이미 '재판매 시장' 활성화

이는 실제 재판매 시장이 활성화된 미국과 영국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50개 주 가운데 38개 주에서 티켓의 재판매가 합법화되어 '재판매' 시장으로 분류하고 있다. 재판매 사업자에게 '라이센스'를 부여해 자격을 얻은 사람들만 티켓을 재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영국 또한 마찬가지다. 영국 법령으로 티켓 재판매를 합법으로 인정함으로써 티켓 재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재판매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영국 모두 '불법적인 프로그램'을 활용한 티켓 구매에 대해 엄격히 처벌하고 있다. 미국은 2016년 '온라인 티켓 판매법'을 제정을 통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제한했으며 영국도 관련 법률로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티켓 재판매 시장을 원천 차단하기보다는 티켓 구매에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 티켓이 원활히 공급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문제는 '매크로’

그럼에도 '불법 프로그램(매크로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매크로 프로그램은 재판매 시장을 왜곡해 불공정 거래를 촉진시킨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대량으로 취득한 티켓을 통해 재판매 시장 가격을 높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팔리지 않는, 즉 수요가 없는 티켓은 가격이 하락해야 하지만 암표 시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대규모 티켓을 구매한 구매자는 형성된 가격으로 몇 장만 팔아도 이익을 볼 수 있기에 모든 티켓을 판매할 이유가 없다.

이는 결국 공연을 기획하는 기획자에게도, 공연을 보고 싶은 팬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기획자는 매진된 공연임에도 공석을 지켜봐야 하고 팬들은 보고 싶은 공연이었음에도 가격이 너무 비싸 볼 수 없게 된다.

결국 매크로 프로그램이 재판매 시장의 가장 큰 장벽인 셈이다. 이에 대한 규제 없이 재판매 시장을 합법화 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과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매크로 규제 관련 법안을 내놓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계류’ 상태에 머물러있다. 지난 15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매크로 방지법을 2월 국회에서 중점 추진 법안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결국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런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암표와 같은 불공정 거래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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